신입생이 3·4학년 수업 들었다…노벨상 한강, 남다른 연대 시절

정영재 2024. 10.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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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선배 유성호 교수가 본‘문학도 한강’


EBS가 1996년 10월 2일 방영한 문학기행에 등장하는 한강. 27세였던 그는 자신의 소설 『여수의 사랑』에 나오는 장소들을 답사한다. [사진 EBS]
“언제나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말해야 하는 것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깊이를 통해서만 은은하게 표현하는 기막힌 절제력을 가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뭇 생명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가장 자신에게 알맞은 문장으로 기록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문학도(文學徒) 한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선배의 말이다. 연세대 국문과 84학번인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5년 후배인 한강과 오랜 문학적 교류를 이어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열흘이 지났지만 ‘한강 신드롬’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강 작가의 문학수업과 문학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SUNDAY가 유 교수를 초대했다. 연구년을 맞아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유 교수는 이메일 질문지에 성실한 답을 담아 보내왔다.

유성호 교수는 한강 작가의 연세대 국문과 5년 선배로 문학적 교류를 이어왔다. [사진 유성호]

Q : 최근 한 인터뷰에서 “1초 만에 한승원 딸인 줄 알아봤다”고 했는데.
A : “89년 2월 어느 날, 국문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나는 석사과정 중이었고 국문과 조교였다. 대학원 후배가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딸이 들어왔다고 귀띔해주었다. 신입생 6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한승원 선생은 영화로 만들어진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원작자로, 88년 『해변의 길손』이라는 빼어난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수상 작품집을 통해 그분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아버지 얼굴을 빼닮은 딸을 별 어려움 없이 찾아냈다. 그만큼 두 분은 많이 닮았다. 특히 눈매가. 작품으로 봐도 두 분은 장편 지향이고, 신화와 환상을 작품의 내적 요소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진 점이 공통적이다. 무엇보다 다른 데 눈길 돌리지 않고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는 균질성과 지속성을 가진 점이 동일하다.”
『채식주의자』의 원천은 식물적 상상력

Q : 한강이 자작시를 대학원 조교를 하던 유 교수 사물함에 넣어두기도 했다던데.
A : “그는 처음에 소설이 아닌 시를 썼다. 문학 하는 선배여서 그랬는지 그는 원고지에 정서한 시편들을 가끔씩 보여주었다. 인문관 1층 사물함에 그만의 호흡을 담은 시편을 넣어주곤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는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이 주류이던 시대라 내 눈에는 그의 다소 환상적이고 내면적인 목소리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글씨는 언제나 정연했고, 내가 무슨 반응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지만, 오랜만에 국문과에 시인이 태어날 거라고 응원했던 것 같다.”

학생 시절 한강이 부친 한승원 작가(오른쪽), 모친 임감오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한승원]

한강은 4학년이던 92년 연세문화상 시 부문인 윤동주 문학상을 받았다. 학보 ‘연세춘추’에 수상작 ‘편지’가 실렸다. ‘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궁금했습니다’로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부치는 서신 형식이었다.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가슴 타는 꿈 속에/어둠은 빛이 되고/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같은 격정을 담은 작품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정현종 국문과 교수는 “굿판의 무당의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그러한 불과 같은 열정의 덩어리는 무슨 선명한 조각과 또 달리, 앞으로 빚어질 어떤 모습들이 풍부히 들어 있는 에너지로 보인다. 능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 잠재력이 꽃피기를 기대해본다”고 뽑은 느낌을 밝혔다.

정현종 교수는 한강의 ‘시문학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자주 읽히는 시 ‘섬’(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을 지은 정 시인은 ‘방문객’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등 보석 같은 시를 썼다. 89년 1학년이었던 한강은 3, 4학년이 주로 듣는 정 교수의 ‘시창작론’을 수강했다. 연세대 국문과 84학번인 한 동문은 “전역하고 복학해서 3학년 때 시창작론을 들었는데 1학년이 들어와서 의아하고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강은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준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종 선생도 최근 통화에서 “그 수업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했다. 한강은 워낙 조용한 학생이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작품을 발표했던 것 같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유 교수는 “30여 년 전 ‘학생 한강’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대작가 한강’의 원형이었다”고 했다.

Q : 시로 출발해 소설로 영역을 확장한 게 5·18, 4·3 등 거대서사를 담기에 시라는 그릇이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였을까.
A :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강은 시도 꾸준히 썼다. 그 점에서 시에서 소설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시에 걸맞은 말들은 시로, 소설로 담아야 할 이야기는 소설로 병행해왔다고 생각된다. 다만 소설에서 역사를 담아내는 방식은 시와 떨어져 있지 않다. 그는 역사의 트라우마가 형성되는 과정을 재현하지 않고 그 사건의 현장·장면·순간·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상처를 위무하고 치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설이 원래 속도감과 명료성을 가져야 하는데 한강의 문장은 그와 역주행하여 함축성과 느릿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역사의 트라우마’와 맞서는 ‘시적 산문’의 경지에 그의 소설은 이르렀고,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러한 점을 평가하였다. ‘시인 한강’이 언제나 소설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Q : ‘역사적 트라우마’와 ‘시적 산문’이라는 주제어는 늘 한강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
A : “사실 ‘역사’와 ‘시적 산문’은 조화롭게 결속하기 힘든 것들이다. 심지어 서로 충돌하기까지 하는 기율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소설은 최대한 ‘시’에 근접하면서, 한국의 굵직한 근대사 경험을 아름다운 문장에 초대한다. 그러면서 한강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예술성을 생성한다. 그의 문장은 독백이든, 대화든, 묘사나 서술이든, 물샐 틈 없는 목소리를 통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된다. 그 안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역사 현장과 그 너머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오며, 고통과 위안, 폭력과 치유가 함께 발견되고 적정한 표현을 얻는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편재하는 폭력에 대한 증언과 그 대안적 사유로 충일하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걸린 축하 플래카드. [뉴스1]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5월 방영된 KBS ‘TV, 책을 보다-2016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을 만나다’에서 소개됐다. 당시 한강은 진행자인 가수 김창완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책을 읽어 내려가던 김창완이 “안 읽겠다. 뒤로 가면 너무 끔찍하다”고 말한 장면이 최근 재소환돼 화제가 됐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유 교수는 ‘동물적 욕망과 일상의 폭력에 맞서는 식물의 상상력’이라고 정리했다.

이념 편향에 갇혀 노벨상 작가 흠집 내
“이 작품은 함축적인 문체와 밀도 있는 구성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면서도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에 결합시켜 ‘섬뜩한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여성 수난사를 기존 소설처럼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 피해라는 단선적 질서로 표현하지 않고, ‘육식/채식’이라는 프레임으로 그 역사를 썼다. 소설 안에서 육식과 채식은 1차적으로는 아버지가 강요한 질서와 주인공이 이에 저항하면서 대안으로 내세운 성향을 함의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남성적·동물적 욕망과 채식으로 상징되는 여성적·식물적 부드러움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환기한다. 이는 전쟁이나 기후 위기 같은 인류사적 과제에 대하여 식물적 상상력을 원천으로 하는 한강 특유의 관점과 지향이 착색된 셈이다.”

Q :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나.
A : “충분한 습작 시간, 끝없는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이 한강만의 문장을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어디 다른 지름길이 있었겠는가.”

Q : 5·18과 4·3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도 흠집을 내려 하는데.
A : “한강의 소설은 어떤 역사서나 정치적 연설보다 역사를 바라보고 그 상처에 공감하도록 이끄는 흡인력을 발휘했다.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증명한 것이다. 혹여 다른 입장이 있으면, 다른 입장이 반영된 작품을 평가하면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흠집 내는 것은 얼마나 이념 편향에 갇혀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영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언어미학의 부활로 연결될 수 있을지 물었다. 유 교수가 답했다.

“단기적으로는 한강 개인에 대한 관심의 폭주가 예상되고, 중기적으로는 제한적이지만 첨단의 영상시대에 모처럼 활자시대의 귀환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문학에 종사하는 이들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문학 지망생 배출이나 인문학에 대한 예우도 점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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