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소몰다 45세에 수능…'올림픽 군수'가 된 만학도의 근성

박진호 2022. 11. 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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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지자체장을 만나다]

「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은 최근 취임 100일이 지났다.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등 자치단체장은 4년간 펼칠 주요 사업의 틀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살림살이 계획을 듣고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행정의 주민 밀착도가 훨씬 높은 시장·군수·구청장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소를 팔아 택시를 산 심재국 평창군수가 6년간 몰았던 택시. 사진 평창군


올림픽기 힘차게 흔들자 ‘함성’ 가득


2018년 2월 25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2018평창겨울올림픽' 폐막식장. 심재국(66·국민의힘) 평창군수가 올림픽기를 흔들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4만 관중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생을 평창에서 살아온 심 군수가 전 세계에 ‘올림픽 군수’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심 군수는 “올림픽기를 흔드는데 평창 브랜드와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진 것 같아 울컥했다”며 “제 손을 떠난 올림픽기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을 거쳐 중국 베이징(北京) 천지닝 시장에게 전달되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 군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중·고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45세에 수능시험을 본 만학도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했지만, 관동대 경영학과와 이 대학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근성의 소유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달 14일 강원 평창군청 군수실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평창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심재국 군수. 사진 평창군
소를 팔아 택시를 산 심재국 평창군수는 6년간 택시 기사 생활을 했다. 사진 평창군


소 판 돈으로 택시 사 ‘6년간’ 택시 운전


8남매(2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심 군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열두살 때부터 친척 집 논밭에 나가 소를 몰며 농사일을 도왔다. 중학생 땐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는데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또래 친구들과 마주치면 황급히 지게를 내려놓고 산속에 숨어 친구들이 지나가길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심 군수는 “내 또래 사람들은 누구나 유년시절을 어렵고 힘들게 살아서 새삼스러운 것도 없지만 8남매 가운데 장남인 나에게 젊은 시절은 유달리 혹독하게 느껴졌다”며 “학교에서 주는 구호품으로 먹거리를 해결했고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복을 염색해 입으며 산으로 들로 소 풀을 베러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산판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소를 사 키웠다. 소를 판 돈으로 택시를 사 6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돈을 모았다. 심 군수는 “당시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나 어린 학생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료로 태워줬다”며 “이들을 목적지에 내려주고 나면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2000년 강원 평창군 용평면 체육회장으로 취임하는 심재국 평창군수 모습. 사진 평창군
1994년 강원 평창군 용평라이온스클럽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심재국 평창군수. 사진 평창군


마을 ‘이장’하다 ‘군의원’ 출마


심 군수는 바쁜 와중에도 당귀나 채소 농사를 짓고 아내와 식당을 운영하는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돈이 조금씩 모이자 마을 이장을 맡은 그는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용평면 체육회장 등으로 활동하던 중 주변 권유로 군의원에 출마했다. 이후 재선에 성공하며 군의장까지 됐다.

심 군수는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와도 같이 굴곡진 삶’이라고 표현했다. 세 차례 치른 평창군수 선거에서도 이러한 그의 삶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평창군수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던 2018년 2월 열린 평창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후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왕기 후보에게 24표 차로 낙선했다.

심 군수는 4년 동안 절치부심한 끝에 지난 6.1지방선거에 재도전했다. 국민의힘 평창군수 후보로 출마해 여유 있는 표차로 당선됐다. 4년 만에 치른 리턴매치에서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2018년 2월 25일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심재국 평창군수가 올림픽기를 흔들고 있다. 왼쪽엔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중국 베이징 천지닝 시장이 서 있는 모습. 사진 평창군
2018년 2월 25일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심재국 평창군수가 올림픽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평창군


2024 청소년올림픽대회 준비 한창


심 군수는 2018평창겨울올림픽 성공 개최 이후 또 다른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2024 강원겨울청소년올림픽대회가 2024년 1월 19일~2월 1일 평창과 강릉·정선·횡성 일대에서 열린다. 겨울청소년올림픽은 2012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시작으로 2016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2020년 스위스 로잔까지 3차례 열렸다. 2024년 대회가 4회째로 스케이팅·아이스하키·컬링·스키·바이애슬론·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15개 종목이 치러진다. 이번 대회에는 70여 개국 29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심 군수는 지난달 14일 평창군청 군수실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2018평창겨울올림픽은 4년 전 막을 내렸지만, 평창군민에게 올림픽은 현재이자 미래”라며 “평창올림픽에 이어 청소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심 군수는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도 내놨다. 그는 “지역 화폐 발행,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지원 등으로 골목상권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공공기관과 기업 유치를 통해 많은 일자리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018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심재국 평창군수. 사진 평창군


“농민이 걱정 없는 평창 만들 것”


심 군수는 또 농민이 걱정 없이 농사짓는 평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영농자재를 반값에 지원하고 지역별 특화 농작물 생산기반을 구축해 걱정 없이 농사짓고, 고소득을 올리는 농촌을 만들겠다”라고 했다.

심 군수는 이어 산림수도 평창의 강점을 살려 산악관광과 지역문화예술을 접목한 체류형 관광산업도 육성할 계획이다. 그는 대관령 산악관광지, 가리왕산 권역 숲 체험장, 남부권 생태체험공간 등을 만들기로 했다. 이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육백마지기 등 관광자원과 리조트·펜션 등을 연계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올림픽 유산을 활용해 해외 관광객도 유치할 생각이다.

심 군수는 “초심을 잃지 않고, 네편 내 편 가르지 않고, 군민과 똘똘 뭉쳐 평창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며 “군민 모두 평창에 사는 것이 행복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창=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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