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원 체코 원전 따냈다
7월 17일 저녁 8시 5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체코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됐다”며 책상을 내리쳤다고 합니다. 곧이어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브리핑을 통해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이 TV 생중계로 온 국민에게 전해졌습니다. 성 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사업비 24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원전 수출의 의의와 그간 윤 대통령이 각종 외교무대에서 펼쳤던 원전 세일즈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원전 산업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시간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환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체코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체코 내각의 발표를 지켜보던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가 “한국”을 호명한 순간 “만세”를 불렀습니다. 안 장관은 치열했던 수주전을 치른 직원들을 격려하고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서울 중구 방사선보건원에 마련된 한국수력원자력 비상상황실에서도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체코 내각의 발표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황주호 사장과 한수원 직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같은 시간 체코 현지 주체코 한국대사관도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체코 정부가 7월 17일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급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계획을 확정하고 한수원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피알라 체코 총리는 이날 “한수원이 경쟁업체보다 가격과 체코 기업 참여 등 모든 기준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수원은 한전기술,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과 ‘팀코리아’로 수주전에 뛰어들어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최종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번 체코 원전 건설 사업비 규모는 24조 원으로 추산되며 2036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2029년 공사가 시작됩니다.
역대 최대 규모 원전 수출이자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쾌거입니다. 이번 수주 성공으로 상업용 원전 본산지인 유럽에 우리 원전을 수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됐습니다. 특히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정상 차원의 세일즈 외교와 팀코리아의 전략적 수주 노력 등 민·관의 총력전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7월 18일 안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체코 원전 수주’ 관련 브리핑에서 “해외 원전사업은 국가 대항전이자 국가 총력전”이라며 “2022년 3월 체코 원전 입찰이 개시될 당시만 해도 유럽의 각축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팀코리아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한수원과 원전 협력업체, 원자력 학계와 연구기관, 정부 부처 및 지원기관들이 모두 나서 전력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또 “안정적인 원전정책으로의 전환과 윤 대통령이 주도한 정상차원의 세일즈 외교는 발주국의 신뢰를 이끌어낸 핵심 원동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 후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사업 수주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런 세일즈 외교 전략이 주효했습니다.
정상 외교·비밀 특사… 투 트랙 전략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2년 6월 피알라 체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유엔총회를 비롯한 여러 외교무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전 세일즈 외교를 펼쳐왔습니다.
7월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는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만나 막판 수주전을 펼쳤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체코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사업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UAE 바라카 원전을 보고 판단해달라”며 원전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2009년 이명박정부 당시 우리나라가 수주한 UAE 바라카 원전사업이 납기 준수나 건설 비용 등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또 당시 UAE에는 원전 전문가가 3명뿐이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2000명으로 늘었다는 설명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기술 이전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체코 정부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물밑에선 보다 치밀한 수주전이 펼쳐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같은 기간 안 장관을 ‘비밀 특사’로 체코로 보냈습니다. 안 장관은 내각회의를 주재하는 피알라 총리를 만나 ‘원전 협력에 그치지 않고 산업 협력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담긴 윤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안 장관은 올해 4월 이후에만 세 차례 체코를 방문해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체코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체코는 7월 17일 세계 2위 원전 대국인 프랑스가 아닌 한국을 신규 원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체코 정부는 공식 발표에 앞서 한국 측에 ‘핫라인’을 통해 먼저 결과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온타임 위딘버짓’ 전략
체코 원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뭉친 ‘팀코리아’는 체코 정부에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보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체코와 가까운 프랑스가 유리하지만 한국은 지난 수십 년째 꾸준하게 원전을 건설·가동·유지하고 있는 점과 원전 수주 후에도 말을 바꾸지 않고 반드시 기간과 예산을 지키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바로 ‘온타임 위딘버짓(on time & withi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적기 시공)’ 전략입니다.
팀코리아는 정해진 예산으로 공사 기간을 정확히 준수하는 것으로 세계에 익히 정평이 나 있습니다. ‘공기 지연’은 곧 추가 비용 발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같은 대형사업 수주전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이 됩니다. 실제로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UAE 바라카 1∼4호기, 국내 새울 2호기, 신한울 1·2호기, 새울 3·4호기 등 최대 9기의 원전을 동시에 적기 건설한 경험도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핀란드에 지은 올킬루오토 3호기가 예정보다 13년 늦게 전력을 생산했고 2007년에 짓기 시작한 자국 내 플라망빌 원전은 아직도 완공되지 못했습니다.
높은 기술력 대비 저렴한 가격도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한수원이 이번 수주전에 내세운 ‘APR1000’ 모델의 가장 큰 경쟁력은 건설 단가입니다. 건설 단가가 9조 원 안팎인 APR1000은 15조~16조 원으로 예상되는 프랑스의 ‘EPR1200’ 모델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조사 결과를 봐도 2021년 기준 한국의 원전 건설단가는 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미국(5833달러), 프랑스(7931달러) 등 경쟁국보다 확연히 낮은 수준입니다.
그 결과 200명에 가까운 체코 전문가는 한수원이 EDF보다 모든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각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한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시공 단가 경쟁력은 물론 시공 역량, 기술 이전 공약 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팀코리아, 전방위 지원
체코 정부와의 신뢰를 쌓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체코 산업부 고위직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자리에 오전 6시 30분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우리는 오전 5시 30분부터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 일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좀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황 사장은 2022년 8월 취임 이후 총 일곱 차례 체코를 방문해 주요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원전 건설 역량과 사업참여 의지를 피력해왔습니다. 한수원은 원전 건설 예정 지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아이스하키팀 후원을 통한 스포츠 마케팅도 해왔습니다.
팀코리아 소속 대우건설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역할도 적지 않았습니다. 팀코리아 일원인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도 같은 달 체코 현지에서 ‘한·체코 원전건설 포럼’을 열고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소개했습니다. 백 사장은 원전이 들어설 예정인 두코바니 지역을 찾아 현지 지역민 고용과 지역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대우건설은 지난 5월 체코 프라하 현지에서 ‘체코·한국 원전건설 포럼’을 개최해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알렸고 두산에너빌리티를 보유한 두산그룹은 같은 달 체코 현지에서 원전사업 수주 지원행사인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열었습니다. 이를 통해 체코 원전은 한국 기업과 체코 기업이 함께 짓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한국형 원자로 노형인 ‘APR1000’에서 숫자 1000은 설비용량이 1000메가와트(㎿) 라는 뜻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공급 노형인 APR1400보다 설비용량은 작지만 설계수명, 가동률 등은 동일합니다.
윤 대통령, 체코 원전 특사단 파견
“원전 수주 감사 친서… 후속조치 방안도 논의”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3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체코 원전 특사로 파견했습니다. 특사단은 24조 원 규모의 원전 수주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감사 친서를 전달하고 양국 간 핫라인 구축 등 후속조치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성 실장과 안 장관으로 구성된 대통령 특사단이 1박 3일 일정으로 체코를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정 대변인은 “특사단은 1박 3일 일정으로 체코에 방문해 페트로 피알라 총리와 요제프 시켈라 산업부 장관을 만나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한 대통령의 감사 친서를 전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 간 핫라인 구축 등 후속조치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윤 대통령의 친서에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팀코리아’를 선정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과 양국 협력 방안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체코 총리 면담에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 실무진 3명이 동행했습니다. 이번 면담에서는 원전 외에 다른 양국 간 협력 방안도 논의됐습니다.
체코 원전 수주 외신 반응
“한수원 제안 압도적” “정상외교 성과” 보도 이어져
체코 정부가 7월 17일 24조 원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했다는 소식은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실은 7월 18일 미국 AP통신·블룸버그통신, 프랑스 AFP통신, 영국 로이터통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한국의 원전 수주 소식을 보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주요 외신들은 특히 한수원의 제안이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에 비해 압도적이었고 ‘팀코리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끈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이번 성과를 거두게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외신들은 한수원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유와 관련,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7월 17일 우선협상대상자 발표에서 “한수원의 제안이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고 언급했다고 전했습니다.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은 “낙찰자(한수원)는 프로젝트 비용 및 전체 일정 관리 측면에서 더욱 안정적인 보장을 제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두코바니 원전 주변 지역인 트르제비치 상공회의소는 한수원에 대해 “원전 건설 계약의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최상의 실적을 가졌고 지역사회와의 협력에 적극적”이란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트르제비치 시장도 그간 한수원의 지역 공헌 활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수원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한수원이 체코 중앙정부뿐 아니라 두코바니 원전 건설부지 주변 지역인 트르제비치에서 8년 동안 지역 공헌 사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지역사회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전했습니다.
외신들은 윤 대통령의 친원전 정책과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에도 주목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원자력 산업 부흥 정책으로 원전 산업 경쟁력이 향상됐고 또 원전 수출을 위해 노력해온 것이 이번 원전 수주에 기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7월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체코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에 대해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호소하며 세일즈 외교를 펼쳤습니다.
한·체코 26년 만에 운수권 확대 합의
‘원전 수주’ 체코 하늘길 넓어진다
한국과 체코를 오가는 하늘길이 26년 만에 확대됩니다. 국토교통부는 7월 17~18일 체코 프라하에서 한·체코 항공회담을 열고 양국 간 운수권을 주 4회에서 주 7회로 늘리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7월 19일 밝혔습니다. 운수권은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에 배분하는 운항 권리로 정부 간 협의로 규모가 결정됩니다. 한국과 체코 간 운수권은 1998년 이래 주 4회로 유지되다가 26년 만에 주 7회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체코에는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 기업 100여 곳이 진출해 있습니다. 체코 신규 원전 2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때를 같이해 열린 이번 항공회담은 팀코리아 ‘산업협력 패키지’의 일환으로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지원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습니다.
양국 항공사 간 편명공유(코드셰어)도 허용해 여행객 편의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프라하를 경유한 유럽 내 제3국으로 이동하더라도 국적사를 통해 일괄 발권하거나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항공편 증대는 항공사 신청 이후 결정됩니다. 현재는 우리 측 항공사만 주 4회 운항하고 있습니다. 체코 측 항공사는 2013년부터 7년간 운항하다가 2020년 코로나19 이후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번 운수권 증대를 계기로 양국 항공부문의 협력뿐 아니라 원전 협력을 매개로 한 제반 경제협력 및 문화·인적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유망 협력 사업을 적극 발굴해 한수원과 발주사 간 계약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팀코리아로서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