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생활 청산 후 음악 시작, 연 20억 수입 작곡가

조회 134,3062024. 12. 24.

용감한 형제 (본명 강동철)은 1979년생으로 국내 탑 작곡가이자 연예 기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겸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강렬한 후크송으로 음악 트렌드를 유행시킨 히트곡 메이커로서 빅뱅의 '거짓말', '마지막 인사'로 시작해 씨스타 '나 혼자', 손담비 '미쳤어', 포미닛 '이름이 뭐예요?' 등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돌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기본 10억부터 시작해 히트곡이 많이 나온 한 해에는 20억 이상의 저작권료를 기록하기도 했다는 용감한 형제는 현재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곡만 해도 400여 곡 이상의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어마어마한 저작권료를 받는 스타 작곡가로 활동하는 그는 한때 폭력전과 12범의 조폭으로 어두운 생활을 하며 방황했던 시절을 고백한 바 있다.

어린 시절 우등생이었던 용감한 형제는 성장하면서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크게 방황하기 시작해 학교에서의 일진 생활부터 당시 유명한 조직폭력 소속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폭력과 자해, 문신까지 너무나도 거친 삶을 살았던 그는 결국 17살의 나이에 2달 반이라는 구치소 수감생활과 2년 6개월의 보호관찰을 받기도 했다.

용감한 형제는 어느 날 종업원이 들려준 '사이프러스 힐'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삶에 후회를 느끼고 조폭 생활을 청산한 다음날 바로 음악을 시작했다. 당시 악보도 볼 줄 모르던 그는 무작정 낙원상가에서 음악 장비를 구하면서부터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작곡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생활비가 없어 굶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간 그는 1998년 현대방송에서 주최한 오디션에서 싱어송라이터 부분 금상을 수상 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가수 준비로 들어간 YG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전향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한 방송에 출연해 용감한 형제는 탈선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가장 후회한다고 밝혔다. 그는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나 분노 이런 걸 싸움하고 이런 걸 풀다 보니까 구속도 되고 잘못 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며 "계속 구덩이에 발을 집어넣으니까 계속 깊숙이 들어가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폭 생활이 너무 끔찍해서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작곡을 시작한 이후로 그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용감한 형제는 탈선했던 시절을 가장 후회하면서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험난한 과거사를 지나 현재는 꾸준히 새벽기도를 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제작자로서 목표를 이룬 후엔 다른 건 은퇴해도 된다"라며 자신의 전재산을 20년 걸쳐 환원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하며, 수년 째 꾸준히 노숙자와 저소득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과 물품을 나누는 등 다양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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