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에 대해 실손보험이 있더라도 치료비의 최대 95%를 본인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또 불필요한 병행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며 비급여와 급여 진료의 병행이 어려워진다. 대신 중증·희귀질환 고가의약품이나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의 급여 전환을 확대해 꼭 필요한 치료에 대한 수혜는 커질 전망이다.
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실손의료보험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의개특위는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의료개혁 2차 실행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의개특위는 비급여 시장의 팽창을 유인하는 원인을 실손보험의 과도한 보장과 미약한 심사체계라고 진단했다. 특히 가격이나 진료기준, 사용여부 등을 시장 자율에 맡겨 의료기관별 가격 편차를 유발했다고 봤다. 가장 빈번하게 청구되는 비급여 항목인 도수치료의 경우 산재보험 수가는 3만6080원이지만,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비는 최고 28만원까지 청구되기도 했다.
이어 병원이나 의원 중심으로 비급여 비중이 높고, 미용성형·치과, 검진, 예방접종 등 선택 비급여 비중이 지속 증가한다고 우려했다. 의개특위에 따르면 종별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급은 10%미만인 반면, 병원(29.2%)이나 의원(19.7%)은 비중이 높다. 또 비급여 유형 중 선택비급여 비중이 2017년에는 42.8%였으나 2022년에는 53.4%로 급증했다.
의개특위는 이처럼 지나치게 남발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 강화 목적으로, 관리급여로 전환해 진료기준이나 가격 등을 설정해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비급여 보고 등 모니터링으로 진료비나 진료량, 가격 편차가 크고 증가율이 높은 비급여 항목을 대상으로 먼저 적용한다. 본인부담률은 90~9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어 급여와 비급여 병행 필요성이 낮고 남용 우려가 높은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한다. 예를 들어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급여 진료를 함께 하면 모두 본인이 비급여로 부담하게 된다.
다만 병행진료 급여 제한으로 불이익을 받는 환자가 없도록 의학적 필요가 있다면 급여를 인정할 수 있게 하는 별도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비급여 재평가를 거쳐 사용 목적과 대상 등을 명확히 하는 한편 재평가 후 안전성과 유효성이 부족한 항목은 퇴출한다. 아울러 의료기관마다 다르게 사용 중인 일부 비급여 항목의 명칭을 표준화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5세대 실손보험의 본인부담률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먼저 급여의료비의 자기부담률을 일반질환자와 중증질환자로 구분해 차등화한다. 중증질환자는 암, 뇌혈관·심장질환, 희귀난치성질환, 중증화상·외상 등 국민건강보험법상 산정특례 등록자를 일컫는다.
기존에는 건보 본인부담률에 실손의 평균 자기부담률 20%를 적용했으나 이를 없애 환자 부담률을 높였다. 외래진료 시 의료기관 종류에 따라 건보 본인부담률은 30~60% 정도다. 실손보험에서 자기부담률도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최종적으로 환자의 부담은 9~36%선에 이른다.
아울러 그동안 보장 대상에서 제외됐던 임신·출산 급여비를 신규 보장하기로 했다. 또 비급여 진료를 보장하는 특약의 경우 중증 질병·상해와 비중증으로 구분해 출시 시기를 다르게 한다. 비중증의 경우 비급여 관리장치를 구축해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출시를 일정기간 미뤘기 때문이다. 의개특위는 비중증 비급여 특약은 내년 6월 이후 출시할 것을 검토 중이다.
비중증·비급여 진료 특약은 보장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축소하고, 자기부담률을 50%까지 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보험금 지급 분쟁이 빈번한 비급여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에 분쟁 조정기준 신설로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다.
또 새로운 과잉 비중증·비급여 출현 시 분쟁조정기준을 지속적으로 추가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5세대 실손보험은 중증 중심으로 설계하는 한편, 실손보험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1∼2세대 초기 가입자에게 일정 보상금을 주고 전환을 유도하는 재매입도 추진할 예정이다.
의개특위는 "실손보험으로 인한 의료남용과 시장교란을 개혁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겠다"며 "소수 가입자의 불필요한 비중증·비급여 이용을 차단해 국민의 보험료 공정성 제고 및 부담 감소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