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 제도가 현장 위험 못 따라가면 참사 반복"

고창남 2026. 5. 29. 15: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토목학회 긴급 입장문 발표... 토목 해체설계 의무화·전문감리 신설 등 5대 개혁 촉구

[고창남 기자]

 지난 5월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져 공사관계자 3명이 사망하는 등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29일 오전 붕괴사고가 발생한 서소문 고가차도를 철거하는 현장.
ⓒ 권우성
최근 발생한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의 파문이 가라 앉지 않는 가운데, 이번 사고의 원인이 대한민국 인프라 해체 공사 전반에 고착화된 부실한 기술 기준, 엉터리 감리 체계, 그리고 고질적인 저가 발주 관행이 결합해 발생한 '구조적 공백'의 결과물이라는 전문가 단체의 지적이 나왔다.

국내 토목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단체인 대한토목학회(회장 한승헌)는 사고 이튿날인 5월 27일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여 정부와 국회를 향해 '노후 인프라 해체공사 안전관리 체계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5대 제도 개선안을 긴급 촉구하고 나섰다.

"이상 징후 발견됐는데... 안전확보 원칙에서 반드시 재검토해야"

대한토목학회는 "철도 횡단 구간의 마지막 거더(교량을 떠받치는 보)들을 개별 인양하기 위해 바닥판을 종방향으로 절단하는 과정에서 2.9cm의 단차가 발견되어 공사를 중단했고, 수 시간이 경과한 오후 2시 이후 안전점검을 진행하는 도중 붕괴가 발생했다"고 사고 경위를 짚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검토해야 할 기술적 문제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철거 단계별 구조 거동의 변화에 대한 사전해석이 공학적으로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검토되어야 한다"고 했다. 학회는 "교량 해체는 단순히 시공의 역순이 아니다"라며 공학적 사전 해석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바닥판을 자르고 거더를 들어 올릴 때마다 하중이 전달되는 경로와 지지 조건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단계별 안정성을 엄밀히 계산하고 임시 지지 구조물(서포트)을 선행 설치했어야 했다는 것이 학회 측의 기술적 분석이다.

학회는 "노후 PSC(Pre-stressed Concrete, 교량 빔속에 강선을 넣어 양쪽에서 당긴후 고정시키는 공법) 거더의 실제 내력 파악 문제"도 거론했다. 1966년 준공된 서소문 고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콘크리트 내부의 핵심 강선이 부식되거나 피로 파단으로 이미 제 기능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학회 측은 "강선 파단은 외부에서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데, "철거 중 노후 PSC 거더의 거동에 관한 실증 데이터는 국내외 모두 미축적 상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를 국가 연구과제로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회는 특히 '단차 발견 이후의 대응 절차'를 심각한 문제로 지목했다. "구조물 이상 징후 발견 후 별도 지지대 보강 없이 안전점검 인력이 현장에 투입된 것은 안전확보 선행 원칙에 비추어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붕괴 위험 구조물에 대한 점검은 로봇·드론·3D 스캐닝 등 비접촉 원격 기술을 활용하는 절차로 전환되어야 한다. 붕괴 징후가 있는 현장에 사람을 투입하는 것은 사전 안전조치(지지대 보강 등)가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에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물만 보호하는 반쪽짜리 법안... 토목 해체의 '3대 구조적 공백'

대한토목학회는 세 가지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학회가 꼽은 첫 번째 공백은 '해체설계' 선행 의무의 부재다. 학회는 "현행 건축물관리법은 건축물 해체 시 해체계획서 작성과 기술자 검토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서소문 고가차도와 같은 토목 구조물 해체에는 이에 상응하는 선행 해체설계 의무가 없다"며, "건축물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교량·고가차도 해체에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사전 설계 의무가 적용되는 것은 명백한 제도적 역설"이라고 꼬집었다.

두 번째로는 '적정 공사비 산정 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제도적으로 해체설계 의무가 없다 보니 공사비를 깎아내리는 저가 발주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학회는 "59년이나 된 D등급 교량, 특히 평소 시민의 왕래가 잦은 서울역 인근 철도 인접구간, 야간 철거라는 고위험 작업에 적정 공사비가 반영되었는지는 이번 조사의 핵심 쟁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세 번째 공백으로는 '토목 구조물 해체 감리의 전문성 부재'를 지목했다.

"전국 노후 교량 수천 개, 이번이 안전 정비할 마지막 기회"

대한토목학회는 전국에 서소문 고가차도와 유사한 노후 교량이 수천 개에 달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제2의 서소문 참사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즉각 수용해야 할 '5대 제도 개선안'을 강력히 요구했다.

학회가 제시한 개혁안의 첫번째는 토목 구조물 해체공사 발주 시 단계별 구조안전성 검토와 임시 지지 계획을 필수 내용으로 하는 '해체설계 선행 용역'의 법제화 및 의무화 요구다. 학회는 이러한 해체설계 결과를 공사비 산정의 근거로 삼도록 표준품셈을 정비하고, 고위험 해체공사의 적정 공사비를 보장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두 번째 과제로 꼽았다.

이와 함께 건축과 토목으로 이원화된 해체 감리체계를 통합 정비하고, 토목 구조물 해체 전담 감리자격 기준을 신설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건축물 해체에는 해체 전담 감리가 배치되는 반면, 토목 구조물 해체는 신축 공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건설사업관리가 적용된다. 토목 구조물 해체 감리에 요구되는 전문인력의 자격 기준 자체가 없다"며, "이와 같은 이원화 구조가 D등급 교량 해체의 특수 위험을 관리하지 못하는 감리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술적 대응 프로토콜과 전문가 보호 대책도 개혁안에 포함됐다. 학회는 붕괴 등 이상 징후 발견 시 즉각적인 접근 차단 조치와 더불어 드론·로봇 등 비접촉 원격점검을 우선 적용하는 프로토콜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사고처럼 공적 안전점검에 초빙된 민간 전문가가 직무 수행 중 피해를 입은 경우, 그에 상응하는 법적 보호와 보상 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마지막 개혁 요구사항으로 덧붙였다.

대한토목학회 한승헌 회장은 "제도가 현장의 위험을 따라가지 못하면 이번 서소문 사고와 같은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도심 인프라들의 해체 수요가 이제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시기"라며, "대한민국이 인프라 노후화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만큼, 이번 참사를 안전 제도를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