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파산 현실로⑤] 문제는 '변동성'…국내 금융권도 대응력 키워야
우리나라는 당장 충격파 크지 않겠지만
대출의 질 균열 조짐…선제적 관리해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동안 뇌리에서 사라졌던 은행 파산이란 단어가 다시 현실로 등장했다. 미국에서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폐쇄가 불거질 수 있다는 후문이 시장에 퍼진 지 불과 이틀 만에 소문은 사실이 됐다. 아직 지구 반대편에서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떠올리기 싫은 10여년 전 그 날의 위기도 이렇게 다가왔다. 금융시장이 맞닥뜨린 위기의 현주소과 아픔의 재현을 막기 위한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 본다.<편집자주>
미국에서 잇따른 은행 파산으로 국내 금융권의 경각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수은행의 취약점을 드러내며 폐쇄가 결정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아직 전통적인 사업 구조를 갖고 있어 당장 여파가 크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지만, 금리 인상의 여파로 대출의 질에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불거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은행권의 건전성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리스크 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SVB 파산의 배경으로는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에 의존해 사업을 지속해 온 편중된 포트폴리오가 꼽힌다. 미국 내에 다양한 특수은행들이 있지만, 벤처기업의 여·수신을 중심으로 한 영업을 통해 20위권 내 대형은행에 이름을 올린 SVB의 사례는 현지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벤처업계의 유동성 가뭄은 SVB에게 치명타일 수밖에 없었다. 주요 예금주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해 가기 시작하자, 특정 고객에 쏠려 있던 재무 구조의 단점히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우 예금과 대출에서 모두 가계와 기업 고객을 고르게 보유하고 있다. SVB와 같은 파산 사태가 당장 우리나라에서는 벌어지기 힘들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다.
또 국내 은행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기간 동안 늘어난 유동성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지 않고 주로 대출에 활용한 만큼,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을 이용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였던 SVB와는 자금 운용 방식이 아예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들의 수신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2243조5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07조4000억원 늘었다.
하지만 이번 SVB 사태와 별개로, 최근 들어 우리 은행권에서도 위기감이 확산돼 온 게 사실이다. 은행권 대출이 눈 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상태에서 연체율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 신한은행 제외)의 지난 1월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전년 동월(0.04%) 대비 2배 이상 높아졌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신호탄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은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이런 와중 터져 나온 미국 은행들의 파산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면서, 건전성 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대출 연체율이 나빠지고 있는 와중 새로운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에 국내 금융당국도 시장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SVB 폐쇄 직후 "금융시스템을 재점검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필요 시에는 신속한 시장안정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및 대출 연체율 등 자산건전성과 자본적정성을 점검하고, 위기 국면에도 문제가 없는 수준의 유동성과 손실 흡수능력을 갖춰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SVB 사태는 특수한 영업 구조가 발단이 된 만큼, 국내 금융권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결국 금융시장의 최대 악재는 불확실성이란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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