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의 맛없는 음식 담당 조보아, 그의 마지막 눈물
[오마이뉴스 양형석 기자]
하차를 앞둔 MC를 마지막까지 알차게 부려 먹었다. 거제도 지세포항편을 끝으로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에서 하차하게 된 배우 조보아 이야기다.
조보아는 27일 방송된 '거제도 지세포항' 편의 마지막 회차에서 장사를 하느라 한 번도 가족여행을 간 적이 없는 도시락집 사장을 위해 김성주, 앤디와 함께 도시락집 장사에 투입됐다. 하지만 실전 장사 경험이 취약한 조보아, 김성주, 앤디는 기대와 달리 실수를 연발했고 급기야 '전설의 알바' 백종원이 장사에 투입됐다(그리고 '장사의 전설' 백종원은 언제나처럼 복잡한 상황을 깔끔하게 수습했다).
서산시 해미 읍성편부터 <골목식당>에 투입될 새 여성 MC는 지난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편에서 연예인 도전자로 출연했던 정인선으로 결정됐다. 물론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편에 깜짝 등장해 활약을 펼친 정인선은 <골목식당>의 새 안방마님으로 잘 적응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정인선이 <골목식당>에 완전히 녹아들기 전까지 '맛없슐랭' 조보아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조보아가 지난 1년 간 <골목식당>에서 남긴 족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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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한 장면. 출연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조보아의 공감능력은 백종원도,김성주에게도 없는 특화된 재능(?)이었다. |
| ⓒ SBS |
1990년대까지만 해도 쇼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진행자는 노련한 남자 MC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실제로 KBS 신입 아나운서의 필수코스라고 불렸던 KBS 1TV <가족오락관>에서 여성 MC는 허참 옆에서 대본을 읽으며 게임 진행 방식을 소개하거나 "몇 대 몇?"을 함께 외치는 게 역할의 전부였다. 김청, 조용원, 김희애 등 라이징 스타들이 거쳐 간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도 여성 MC들은 이덕화가 "부탁해요"를 외치면 옆에서 리액션을 하는 게 주 역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3월 <골목식당> '공덕동 소담길' 편부터 '인턴 MC' 김세정에 이어 합류한 조보아 역시 초반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한정돼 있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 시절부터 호흡을 맞춘 백종원과 김성주가 워낙 노련하고 유쾌하게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담길 편 출연자들은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거나(라오스식 칼국수) 장사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들(김치찌개, 생태탕, 쭈꾸미)이었기에 '초보MC'가 끼어들 틈은 더욱 없었다.
하지만 조보아는 5월부터 방송된 해방촌 신흥시장편부터 '리액션 기계'의 역할을 넘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찾으며 <골목식당> 안에 녹아 들기 시작했다. 신흥시장 편에서는 장사에 능한 출연자(횟집)와 함께 요식업 경력이 일천한 20대 사장들이 운영하는 원 테이블 식당이 등장했다. 맛보다는 비주얼을 중시한 요리에 백종원은 "폐업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혹평했고 원 테이블의 두 사장은 백종원이 남긴 음식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이때 상황실에서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조보아는 가게로 내려가 1991년생 동갑내기 사장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줬다. 유쾌하고 노련한 진행자 김성주나 성공한 사업가 백종원이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조보아는 신흥시장 편이 방송되는 내내 원 테이블 식당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사장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했다. 조보아에게 '공감요정'이라는 첫 번째 캐릭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조보아는 신흥시장편 이후에도 '공감요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대전 청년구단 편에서는 홀마스터로 변신해 홀서빙을 도맡아 했고 성내동 만화거리 편에서는 장사를 포기하려 한 분식집 사장과 멸치 손질 등을 함께 하며 끊임 없이 용기를 줬다. 심지어 시청자들이 경악했던 홍은동 포방터 시장 편 홍탁집에서도 홍탁집 아들을 무장해제시키며 '공감요정'의 위용(?)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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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한 장면. 조보아는 단 일주일 연습으로 1년이 넘는 경력의 타코야키 사장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
| ⓒ SBS 화면캡처 |
조보아가 '공감요정'으로서 출연자들과 소통하며 <골목식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조보아가 실질적으로 프로그램에서 하는 일은 크게 없었다. 실제로 조보아는 방송에서 "친구들은 <골목식당>에서 제가 백종원 아저씨에게 '다녀오세요'만 하고 있다고 놀린다"고 고백했다. 그는 제작진에게 "조금 더 능동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고 이는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편의 타코야키 대결로 이어졌다.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의 타코야키 사장은 타코야키 한 판을 만드는 데 20분이나 걸릴 정도로 숙련되지 못한 기술을 지적 받았다. 그리고 백종원은 타코야키 사장의 미숙한 실력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조보아와 타코야키 대결을 시켰다. 조보아는 양 손을 사용해 쉴새 없이 타코야키를 굴리며 어설픈 기술에도 한 손으로 한 번에 뒤집으려 했던 타코야키집 사장보다 더욱 성의 있게 타코야키를 만들었다(조보아는 시식대결에서도 4-3으로 승리를 거뒀다).
조보아의 남다른 손재주는 청파동 하숙골목 편에서도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조보아는 드라마 촬영 도중 틈틈이 연습한 실력으로 개업 3개월의 고로케집 사장과 꽈배기 만들기 대결을 펼쳤다. 10개를 만드는데 1분31초가 걸린 조보아는 약 2초 차이로 패했지만 고로케집 사장보다 더욱 먹음직스러운 모양의 꽈배기를 만들어 백종원을 놀라게 했다. 만약 고로케집이 솔루션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면 조보아는 고로케집 사장의 '꽈배기 스승'이 됐을지 모른다.
물론 조보아의 '금손'도 회기동 벽화골목편에서는 체면을 구겼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고기굽기를 전담한다는 조보아는 자신 있게 신메뉴 고추장 양념 목살 굽기에 도전했지만 겉은 태우고 속은 전혀 익히지 못한 어설픈 솜씨를 선보였다(물론 이는 그만큼 고추장 양념구이를 굽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다). 조보아는 그동안 손재주가 좋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했기에 조보아의 '인간적인' 실수는 많은 시청자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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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한 장면. <골목식당>에서 조보아가 맛 보는 음식은 백종원의 깊은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
| ⓒ SBS |
백종원이 아무리 평생 요리만 연구하면서 살아온 최고의 전문가라지만 50대 남성인 백종원이 전 세대의 입맛을 대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백종원은 본인의 입맛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20대 여성의 입맛과 감성을 알아보기 위해 상황실의 조보아를 호출한다. 그럴 때마다 조보아는 살짝 놀라면서도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생체실험(?)에 참여한다. <골목식당>의 마스코트 '맛없슐랭'이 활약하는 순서다.
백종원이 해방촌 신흥시장 편에서 조보아에게 난해한 과일 월남쌈을 맛보게 할 때만 해도 조보아와 맛없는 음식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였다. 하지만 백종원은 뚝섬 골목의 샐러드에 이어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의 돼지고기 말이를 통해 조보아에게 기어코 음식을 뱉게 만들었다(물론 솔루션을 받기 전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예의 바른 조보아는 그 악명 높은 고기 말이를 김성주에게 배달해 전설의 '3콤보 뱉기 그랜드슬램'을 완성시켰다.
이후에도 조보아는 성내동 만화골목의 중식당, 홍은동 포방터시장의 쭈꾸미 같은 솔루션을 받기 전 맛 없는 음식들만 골라서 시식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조보아에게 '맛없슐랭'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줬다. <골목식당> 제작진 역시 포방터 시장편에서 자막을 통해 "백종원이 조보아를 호출하는 건 안 좋은 쪽으로 레전드(?) 음식이 나오는 경우"라며 조보아를 <골목식당> 공식 '맛없슐랭'이라고 못 박았다.
조보아의 '맛없슐랭' 캐릭터는 방송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조보아는 <골목식당> 최초로 주방점검 면제를 받은 돈까스 집에서 홀서빙을 끝내고 김성주와 함께 시식의 기회를 얻었다. 치즈카츠와 새우카츠카레를 먹은 조보아는 '맛없슐랭'의 설움을 날리는 CF 같은 우아한 먹방을 선보였다. 이에 <골목식당> 제작진은 조보아가 돈까스를 먹는 동안 우아한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깔며 오랜 설움 끝에 '맛있슐랭'으로 거듭난 조보아를 치하(?)했다.
<골목식당>의 활력소가 됐던 조보아의 하차는 시청자와 제작진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몹시 아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눈물을 보이며 "배우로서의 연기 인생은 물론 사람으로서도 제게 날개를 달아주셨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보아는 드라마 <시크릿>을 통해 배우로서 안방극장에 다시 복귀할 예정이다.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그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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