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카파도키아 기암괴석을 닮았다
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기사입니다. <기자말>
[신예진 기자]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더위가 지속되는 날씨, 튀르키예(터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다. 어느덧 세계여행 중반에 접어든 여행자를 반기는 듯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기암괴석이 인사한다.
카파도키아 작은 마을 괴레메(Göreme)에서 여행자 커뮤니티 '카우치서핑'을 통해 호스트 Latifa(이하 라티파)와 만났다. 그는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Love Valley(이하 사랑의 골짜기)에 가자고 제안하면서, 본인의 직장인 보석 가게에 와보라고 나를 초대한다.
"라티파! 보석 가게 교통편이 없는데, 보통 어떻게 가?"
"히치하이크해서 와!"
자전거 대여 같은 답변을 예상한 나는 당당하게 '히치하이크'를 말하는 그에게 놀란다. 작은 마을 괴레메에선 여행자도 아무렇지 않게 태워주는 듯, 그의 말을 따라 시도해보니 손쉽게 히치하이크에 성공한다.
▲ 카파도키아 Love Valley(사랑의 골짜기) Love Valley(사랑의 골짜기)에 다다르니 풍화작용으로 드러난 기암괴석은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난쟁이가 나올 것만 같은 동화 속의 한 장면이다. |
ⓒ 신예진 |
환상적인 동화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의 골짜기가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낀다. 이후에도 기암괴석은 여행 내내 라티파와 잊지 못할 이야기를 함께했다.
▲ 카파도키아 러브밸리에서 라티파와 함께 두툼한 입술과 커다란 입으로 미소짓는 라티파는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인도네시아 관광객을 상대로 보석 판매를 한다. 올해 30살인 그는 원래 2년 전, 유럽에서 일을 하려고 했지만, 비자문제로 인해 잠시 터키에 머물러 있다. 그는 지금도 유럽 비자 신청을 꾸준히 하며 유럽에서 일하는 걸 계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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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한 순간이 지금을 만들었어. 튀르키예에서 제안이 왔을 때 동시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제의를 받았는데, 나는 튀르키예가 더 끌렸지."
튀르키예 서부 항구도시인 이즈미르(İzmir)에 도착한 라티파는 보모(nanny)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날이 주어진 보모 일은 그에게 어떠한 자유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카파도키아로 옮겨 보석 가게에서 일을 구했다. 관광객이 보석을 사는 것에 따라 월급을 받고 관광객이 없는 날에는 월급이 없다. 급등하고 급락하는 불안정한 터키(튀르키예) 시장에서 그의 불안정한 삶은 더욱 요동친다.
"불안정해도, 여행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이 삶이 난 좋아. 내가 후회하는 한 가지는 이 삶을 일찍 시작하지 않은 거야."
▲ 카파도키아 야경을 배경으로 라티파와 함께 그가 주는 깜짝선물을 기대하며 눈을 뜨니 수많은 기암괴석과 마을이 밝히는 풍경이 드러난다. 노란색 전등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 괴레메 마을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 온 듯하며, 동화 속에 온 듯한 기분에 감탄사를 남발하며 호들갑을 떤다. 편안한 행복과 황홀한 행복을 사이로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나에게 라티파는 미소 짓는다. |
ⓒ 신예진 |
어느덧 카파도키아에 어둠이 찾아온다. 우린 괴레메 중심가 야경을 보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을 하나씩 올라가니 조금씩 기암괴석과 마을이 밝히는 풍경이 드러난다. 노란색 전등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 괴레메 마을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 온 듯한 기분에 감탄사를 남발하며 호들갑을 떤다. 편안한 행복과 황홀한 행복 사이로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나에게 라티파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이것도 한 달 동안 보면 아무렇지 않게 되더라."
황홀한 야경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라티파는 슈퍼마켓에서 사 온 과자를 꺼내 자리를 잡는다. 그에게 나는 말했다.
"생각해 보면 바다는 한 달 넘게 봐도 지겹지 않잖아. 기암괴석들, 이 돌덩이들이 질리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움직이지 않아서일까? 나도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 이 동화 속 풍경에 쉽게 질리겠지. 그래서 단풍이 들고, 꽃이 피고, 푸르른 잎으로 변하고, 흰 눈을 맞이하나 봐.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자연이 말하는 거지."
괴레메 마을에 가득한 노란 불빛이 이룬 야경, 그런 불빛을 비추는 보름달 아래에서 기암괴석을 바라본다. 견고하고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기암괴석이지만, 언제나 머물러있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연함을 가진 기암괴석들을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 카파도키아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에 석양이 찾아왔다. 거리는 조금씩 어두운 공기를 맞이한다. 라티파와 나는 전망대에 앉아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기암괴석 사이로 자리잡은 마을은 돌멩이 처럼 단단하게 보인다. |
ⓒ 신예진 |
견고하게 우뚝 솟은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은 마을을 떠나는 날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마을에 석양이 찾아오고, 거리는 부스스 어스름을 내는 저녁 어스름 공기를 마신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몰을 바라보면서 라티파는 말을 꺼낸다.
"사실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는 남자 친구 때문이야."
기암괴석에 흥미를 잃은 그가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를 남몰래 궁금해했던 찰나, 놀란 눈으로 라티파를 바라본다. 그는 이즈미르에서 일할 당시 카파도키아를 여행하며 만난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남자 친구의 제안으로 카파도키아의 삶을 시작했고, 남자 친구 집에서 살며 직장을 구하다 집을 옮겨 지금까지 왔단다.
"남자 친구는 처음과 달리 많이 변했어. 일 때문에 바쁘다며 어느 순간 나와 보내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었지. 그는 결혼에 대한 확신도 없고, 나도 그와의 결혼에 확신이 없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힌다. 그의 눈빛에서 남모르게 쌓인 고민으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진다. 라티파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묻는다.
"라티파, 사랑을 하며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소통이야. 말로 소통을 주고받아야지 서로 오해도 안 생기고 더 진한 사랑을 할 수 있잖아."
남자 친구와 영어로 소통하지만, 영어 말하기에는 능숙하지 않은 그. 그렇게 조금씩 단절돼간 관계에서 얻은 대답일까,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그의 외로움을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멍하니 마을 풍경을 보며 그가 가져왔을 감정을 생각한다. 나는 말했다.
"라티파, 결혼도, 직장도, 지금 하는 연애도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그렇기에 인생이 재밌는 거 같아. 불확실한 덕분에 우리만의 확실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거잖아.
불확실한 인생에서 '나'를 잃지 않으면 되는거야. 가장 중요한 건 돈도, 남자 친구도, 직장도 아니고 '나' 자신이잖아. 넌 지금 네 삶에 대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걸."
▲ 일몰의 지평선이 카파도키아 기암괴석을 감싸며 일몰의 지평선이 카파도키아 기암괴석을 감싸고있다. 나는 알고 있다. 다음에 괴레메를 다시 찾아와도 이들은 묵묵히 이곳에 있을 거란 것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 속에서도 묵묵히 견고하게 본인을 지켜내는 기암괴석을 보며,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내 안의 나를 투영한다. |
ⓒ 신예진 |
나는 알고 있다. 다음에 카파도키아를 다시 찾아와도 기암괴석은 묵묵히 이곳에 있을 거란 것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 속에서 굳건하게 본인을 지켜내는 기암괴석을 보며, 견고해지는 내 안의 나를 투영해본다.
그건 비바람이 모질게 내려도 여기 기암괴석처럼 꿋꿋하게 서 있을 것이다. 앞서 꿈을 찾아 대륙을 넘고 사랑을 찾아 환경을 바꿨지만,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라티파의 삶처럼 말이다. 카파도키아의 일몰은 머무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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