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는 힘들다, 팀으로 가자'…수소차 동맹 모으는 정의선
독자 노선으로 시장 개척 한계…수소차 브랜드 늘려 저변 확대
수소연료전지자동차(수소차) 시장 개척의 선봉을 자처하던 현대자동차그룹이 ‘독자 노선’을 버리고 ‘동맹 체제’ 구축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의 완성차 브랜드들을 잇달아 만나 수소차 시장 개척에 함께 나서줄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내달 방한하는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그룹 회장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오 회장은 내달 27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현대차와 토요타가 공동 개최하는 레이싱 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 예정이며, 대회 공동개최를 계기로 정 회장과 만나 양사간 진일보된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과 아키오 회장의 회동은 글로벌 수소차 시장을 이끄는 두 축인 현대차그룹과 토요타 수장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최근 현대차그룹이 수소차 시장 상용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번 회동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수소차 시장 활성화를 위한 양사간 협력’이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현대차는 내년 5월 신형 2세대 넥쏘 풀체인지 모델 출시를 계기로 수소차 저변 확대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신형 넥쏘에는 2.5세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이 탑재되며, 기존 1세대 넥쏘의 1회 충전 주행거리인 609km를 크게 상회하는 성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풀체인지 모델인 만큼 디자인과 편의사양 등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 ‘2024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10년간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해 5조7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특히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경쟁 관계였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현대차의 수소차 시장 개척 전략 중 하나로 읽힌다.
앞서 정의선 회장은 추석 연휴 전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으로 주요 전략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며 생산 비용 절감, 효율성 증대 및 다양한 제품군을 고객에게 신속히 제공하기 위한 방안 등을 모색한다는 내용이다.
양사의 잠재적인 협력 분야는 승용‧상용 차량, 내연 기관, 친환경 에너지, 전기 및 수소 기술의 공동 개발 및 생산까지 광범위하다. 구체적인 협력 모델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주로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 분야에서의 협력에서 시너지가 예상된다.
현대차로서는 픽업트럭과 풀사이즈 SUV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시장에서 강력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GM 산하 쉐보레, 캐딜락, GMC, 뷰익 등에 수소연료전지를 공급해 수소차 브랜드에 합류시킨다면 시장 개척에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유럽에서의 우군도 확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순방 일정의 일환으로 지난 20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 포럼’에서 스코다 그룹 산하 스코다 일렉트릭과 ‘수소 경제와 지속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체코 순방에 동행해 비즈니스 포럼에도 함께한 정 회장이 윤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한 ‘이벤트’라는 지적도 있지만, 최근 현대차그룹의 상황을 보면 ‘수소차 동맹 확대’의 일환이라는 시각에 더 무게가 실린다.
스코다는 그 자체로도 중부 유럽 시장에서 18.5%를 점유하는 영향력 있는 브랜드이자, 세계 2위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스코다와의 협력관계가 폭스바겐그룹 산하 다른 브랜드로까지 확대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스코다의 친환경차 사업을 전담하는 스코다 일렉트릭과 앞으로 수소 연료전지 기술의 발전과 친환경 차량 시장의 확대,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의 수소 사회 조기 전환에 협력키로 했다. 특히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활용한 스코다 일렉트릭의 모빌리티 확대도 추진키로 해 조만간 스코다 브랜드를 단 넥쏘의 형제차가 유럽 시장에 판매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수소차 분야에서 GM, 스코다에 이어 토요타까지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 손잡는 것은, 시장 저변을 확대해 수소차 시장을 여는 데 있어 독자 노선으로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소차 판매 대수는 지난 2020년 9483대에서 2022년 2만704대로 빠른 성장을 보이는 듯 했으나 지난해 1만6413대로 다시 내려앉았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5621대에 머물며 본격적인 시장 개막은 요원한 상태다.
현대차그룹과 토요타 ‘투톱’이 각각 한 개의 모델만 내놓고 규모가 한정된 내수 시장 위주로 공략하는 구도로는 시장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해 수소의 생산과 유통, 인프라 운영 등 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지만, 결국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최전방 완성차 업체들이 시장 저변을 넓혀줘야 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 공급망의 후방에 위치한 업체들은 전방의 수소차 수요가 일정부분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투자에 나설 수 있다”면서 “결국 완성차 업체들이 수소차 시장을 제대로 만들어야 수소 생태계가 선순환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력이나 양산 노하우에서 우위에 있는 현대차그룹과 토요타는 수소차 시장이 열렸을 때의 과실을 경쟁사들과 나누는 게 아쉽겠지만, 개별 업체들이 시장을 여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면서 “경쟁사와 기술을 공유하더라도 우선은 다양한 수소차가 시장에 공급될 여건을 마련해 시장 저변부터 넓히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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