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홍윤희 기자]
불과 3주도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신빙성은 없지만 꽤 잘 맞는다는 도박 사이트들도 트럼프에 베팅하고 있다.
전국 지지율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선거인단의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는 터라 전국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 경합주의 향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 17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제79회 알프레드 E. 스미스 기념재단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네브래스카는 5명의 선거인단 중 2명은 지역별로 득표율이 높은 후보에게 1명씩 배정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치른다. 네브래스카는 전반적으로 공화당세가 세지만 도시 지역(조지 소로스의 고향인 오마하 등)에서는 해리스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도 지난 선거 때 네브래스카에서 1명의 선거인단을 얻었다.
여기에 메인주에서 트럼프가 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정확히 동률을 이뤄 '불확정 선거'가 된다. 이런 동률 시나리오는 이뿐 아니라 경합주 향방에 따라 2가지 경우가 더 있다.
이렇게 선거인단 수에서 동점을 이룬 경우에는 수정헌법 12조에 따라 상원에서 부통령을 결정하고 하원에서 대통령을 결정한다. 하원에서는 각 주 대표단이 1표씩 행사하는데 26표 이상을 얻으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이러한 규정은 공화당에 유리하다.
선거인 숫자는 각 주 인구에 비례해 책정되는 반면 의회 대표단은 인구와 관계없이 주당 1표를 받는다. 정식 주는 아니지만 선거인단에 포함된 워싱턴DC는 민주당 성향인데 이 대표단 투표에서는 빠진다.
공화당이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 주를 비교적 많이 장악하고 있다. 2024년 현재 공화당은 26개 주에서 우위다. 민주당은 22개 주에서 우위에 있고 2개 주(미네소타, 노스캐롤라이나)는 민주-공화당이 반반으로 갈려 있다.
어찌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 이런 제도를 도입한 건 대체 언제였을까? 1800년 토머스 제퍼슨과 존 애덤스가 대결한 선거에서 발생한 문제(대선을 통해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의회가 36차례나 투표해 결국 제퍼슨을 선출했다) 때문에 수정헌법까지 도입해 만든 제도다. 이후 1800년대에 수정헌법 12조가 두 번 발동된 뒤로는 쓰인 적이 없다.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 벌어진다면 미국 정치에 대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 17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의 레쉬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현재는 민주당이 단 1석 차로 상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다음 회기에는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에서 예측하고 있다. 공화당 우위 주인 웨스트버지니아에서 꾸준히 당선되어 왔던 민주당 상원의원 조 맨친이 출마하지 않았고, 몬태나에서도 공화당이 상원 의석 1개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원은 현재 공화당이 4석 우위인 상황으로 100년 만에 가장 적은 의석 차이다. 하원 선거 결과도 아직 어느 당이 우세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2020년 대선에서 진 트럼프는 당시 끊임없이 불복 액션을 취했다. 경합주 선거 결과 무효소송(60여 개)을 벌였고 재검표(조지아, 위스콘신)를 요구했다. 경합주 의원들을 불러 대선 결과와 다르게 선거인단 투표를 하라고 회유하고(미시간) 근소한 차이로 진 조지아의 경우 주 선거위원회 공무원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렇게 트럼프가 승복하지 않은 결과 2021년 1월 7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당시에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었는데도 이런 개입이 발생했다.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해리스가 이기더라도 트럼프가 문제 삼는 주의 결과를 인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일부 주의 선거 결과를 승인하지 않으면? '시나리오 1'과 마찬가지로 각 주 의회 대표단에 1표씩 주는 식으로 대통령이 정해진다.
현재 하원 다수당 다툼에서 눈여겨볼 지역은 뉴욕과 캘리포니아다. '뼛속까지 파란' 민주당 안전지대 같지만,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의 아성에 흠이 가고 있다.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에 불리할 수 있다는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이 의외로 선전했는데 이 지역에서만큼은 달랐다.
당시 전국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임신 중지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각 주에서 알아서 하라고 판단한 보수 우위 대법원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였다. 보수 대법관 3명을 임명한 트럼프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과 캘리포니아는 달랐다. 그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인플레이션과 범죄를 지목했다. 이들 주는 전반적으로 생활비가 높아 인플레이션과 범죄율 증가에 민감하다. 반면 임신중단권 이슈는 타 주에 비해 영향력이 낮다. 따라서 '민주당 성향 주' 일부 선거구의 하원의원 선거 결과가 내년 대선 결과 승인 과정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 2024년 미 의회 주별 대표단의 다수당 분포 |
ⓒ 밸럿피디아 |
이런 분위기 탓에 미정부는 1월 6일 선거인단 투표 집계와 의회 승인 과정을 '국가 특별안보 이슈'로 정하고 잔뜩 긴장 중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진다면 불복한다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퓨리서치가 지난 10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질 경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응답자가 무려 74%에 달했다. 반면 해리스의 불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27%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4년 전 대선 불복은 미국 경제에도 손실도 입혔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2021년 의사당 폭동으로 야기된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 5억 달러에 달한다고 봤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위기와 경제 타격은 서로 맞닿아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그의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인 경제 발전은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함께 노벨 경제학상 수상한 사이먼 존슨 교수도 트럼프 대선 불복에 우려를 표했다. 존슨 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제도가 위협받고 있다"며 "이번 대선은 미국 민주주의에 가장 심각한 압박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수많은 거짓말과 무수히 많은 민·형사 기소에도 대통령에 재선된다는 사실이 지지자를 비롯한 사회에 미칠 총체적 영향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를 쓴 앤 애플바움은 진실 왜곡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확산을 지적했다. 애플바움이 만난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선거유세에서 바이든의 말 더듬기를 조롱하는 유세를 봤음에도 그런 사실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거나 녹화본을 보여주면 오히려 '조작 아니냐'며 진실을 부정했다.
일반 지지자뿐 아니다. 15일 공화당의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는 트럼프가 한 "내부의 적이 중국 같은 외부 적보다 나쁘다"란 발언이 결국 정적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한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사람들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려 한다"며 회피했다.
'미국의 권위주의'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소련 출신 영국 언론인 피터 포메란체프는 "(트럼프의 입에서) 진실은 더이상 정보와 분석이 아닌 주장과 편들기가 되어버린다"며 밴스 부통령 후보가 트럼프의 허풍과 거짓말을 '지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밴스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 설이 "만들어낸 이야기 아니냐"는 CNN 앵커의 질문에 "맞다, 미국 국민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에 주목을 끌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고 당당히 답했다. 포메란체프는 "'대안 진실'을 진실로 인식하는 현상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흔하다"고 못 박는다.
최근 행사차 한국을 방문한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신뢰라고 하는 건 사회공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분열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고 진실의 개념을 바꾸는 정치가 가져오는 경제적 파장이 어떨지, 11월 5일 미 대선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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