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가계 여유 없는 노인 88%…70세까지 일해"[인생3막 인터뷰]

박유진 2024. 10. 1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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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화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 교수

"일본에서는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며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의 제조업 분야에서는 시니어들의 축적된 지혜와 경험이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거든요. 한국의 임금피크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역직 정년'이라고 해요. 일본 정부는 기업이 직원을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 이상의 직원도 원한다면 70세까지 고용될 수 있게 노력하도록 기업에 요구합니다."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 경영학부 신미화 교수(66)는 38년째 일본에서 거주하며 시니어 라이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일본 은퇴자들의 삶을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를 취재하며, 노후의 주요 고민인 건강, 외로움, 경제적 문제를 '일'을 통해 해결하는 일본 시니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원래 글로벌 기업의 경영 혁신을 연구했지만, 3년 전 대학 행사에서 마주한 두 은퇴 교수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연구 주제를 전환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에서는 경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일본 노인들의 생활상과 실제 연금 활용 사례들을 소개하고 시니어 전문 매거진 등에 기고하는 등 한·일 양국 노인의 생활상을 균형감 있게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신 교수는 100세 시대를 맞아 65세 이후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의 실버 산업과 시니어 비즈니스에 주목하며, 은퇴 후에도 활발히 일하는 개인과 단체, 시니어를 고용하는 기업, 시니어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을 폭넓게 취재했다. 또한 일본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재생시키기 위한 시니어 프로젝트에도 관여했다.

-일본에서 교수직을 얻은 계기가 궁금하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상업고등학교에서 5년 동안 교사로 일했다. 너무 미국으로 유학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지원받을 수 없었던 차에,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국비 유학생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일본으로 떠났다. 1986년 4월에 일본으로 가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투자 컨설팅 회사 IR재팬홀딩스에 취직했다.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미국에도 잠깐 어학연수를 하러 갔다. 그런데 돌아오니까 일본에선 버블경제는 꺼진 데다 아이도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마이너스로 작용해 재취직이 안 되더라. 남편이 도와줘서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한글 교실을 운영하면서 시간강사로 일하다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에 교수로 취직하게 됐다. 50이 넘어서야 교수가 된 거다.

-본래 전공이 글로벌 기업 경영 혁신인데, 실버 산업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내가 아무리 글로벌 기업의 경영 혁신을 연구하더라도, 일본은 이미 혁신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실버 산업은 유일하게 성장하는 분야였고, 이에 따라 연구 주제를 일본의 실버 산업과 시니어 비즈니스로 전환하게 됐다.

-일본 은퇴자들의 삶에서 특징적인 점이 있다면.

▲일본 은퇴자들은 '일'을 통해 노후의 주요 고민을 해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현의 '우키하의 보물'이라는 회사는 70대에서 88세 사이의 할머니들과 젊은 직원들이 함께 전통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할머니 신문'을 발행하여 할머니들의 지혜를 젊은 세대와 공유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야마구치현의 '에티컬 뱀부'는 50대 여성이 할아버지들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는 대나무 숯을 활용해 천연 세제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하고 있으며, 환경 보호와 지역 사회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은퇴 후에도 의미 있는 일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일본 시니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은 연금 제도 개혁이 노인들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고..

▲20년 전 고이즈미 총리의 연금 개혁 이후, 일본의 연금 제도는 큰 변화를 겪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보험료 인상, 급여액 억제 등의 조치로 인해 실질적인 수령액이 줄어들었다. 현재 일본의 연금 보험료율은 18.3%로, 9%인 한국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80대 이상의 일본인들은 개혁 이전의 연금 제도를 적용받아 비교적 풍족한 연금을 받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일본 노인들이 연금 걱정 없이 지내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80대 이하의 일본 시니어들은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40세부터는 개호보험료도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개호보험은 한국의 장기요양보험과 비슷하다. 65세부터 이용 가능하며, 지역이나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전국 평균으로는 월 6014엔(약 5만4000원)을 납부하지만, 소득이 높은 사람은 월 20만원 정도를 납부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일본 시니어들이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내각부의 2023년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가계에 전혀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응답한 일본 노인은 12%에 불과하며, 나머지 88%는 "가계에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일본에도 시니어 근로 유도 시스템이 마련돼있나.

▲일본에서는 공익형 사업의 일환으로 소일거리를 매칭해주는 '실버인재센터'라는 제도가 있다. 한국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비슷하다. 다만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회비를 내고 일자리를 찾는 방식인데, 하루 3~4시간 정도 일하며, 월평균 8일에서 10일 정도 일한다. 월수입은 3만~5만엔(한화 약 27만~45만원) 정도이며, 회비는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연간 1000~3000엔(한화 약 1만~2만7000원) 정도 된다. 청소나 주차 관리 같은 단순 노동 업무도 있지만, 통·번역처럼 전문 능력을 요하는 일도 있다.

-지금의 한국과 비교했을 때 특징지을 수 있는 일본의 고령 문화는 무엇이 있을까.

▲일본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신체가 건강하다면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여전히 일주일에 6일씩 일하고 있는 101세의 군마현 중국 요리점 주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일하는 고령자들이 사회에서 존경받으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또, 하루에 1000엔(한화 약 9000원)으로 생활하는 노인의 삶을 다룬 에세이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자립적이고 절약하는 노인의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일본 사회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시니어가 자신의 생활 수준에 맞춰 검소하게 생활하며, 절약을 미덕으로 여긴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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