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브로드웨이에 등장한 한국어, 뮤지컬 K팝

뉴욕=조슬기나 2022. 11. 2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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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_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서클인더스퀘어시어터에서 진행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K팝 프리뷰 공연에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너는 할 수 있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뮤지컬 'K팝(KPOP)'이 드디어 미국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토요일 밤인 19일(현지시간) 타임스스퀘어 인근 서클인더스퀘어 시어터에서 울려 퍼진 첫 넘버(노래)는 '디스 이즈 마이 코리아', 한글 제목은 '우리 이야기'다.

이미 지난 3월 뉴욕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일찌감치 현지 취재 열기를 확인한 터라, K팝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이날 극장을 가득 채운 현지 관객들의 모습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것은 예상보다 더 많은 노래와 대사가 영어와 한국어로 번갈아 진행됐다는 점이었다. 플레이빌에도 한글로 제작진과 출연진을 소개한 페이지가 별도로 마련됐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한국어 가사를 넣는 것, 이는 뮤지컬 K팝을 통해 '브로드웨이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작곡가'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헬렌 박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헬렌 박은 지난 17일 롯데뉴욕팰리스 호텔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영화 '기생충'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언어 장벽을 넘어선 작품, 최대한 한국적인 것을 당당하게 표현했을 때 다른 문화의 사람들도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용기가 생겼다"며 "그래서 가사를 한국어 반, 영어 반씩 쓰고, 대사에도 한국어를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현지시간)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진행된 한국 매체 대상 간담회에 참석한 (사진 왼쪽부터)보형, 민, 케빈 우, 루나, 작곡가 헬렌 박.

뮤지컬 K팝은 슈퍼스타 무이, 갓 데뷔한 보이그룹 F8, 데뷔를 앞둔 걸그룹 RTMIS 등 K팝 아티스트들이 브로드웨이에서의 하룻밤 특별한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주며 이들의 꿈과 경쟁,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이달 27일 정식 초연을 앞두고 현재 프리뷰 공연을 진행 중이다.

이 작품은 2017년 소극장 중심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주요 상을 휩쓸며 이미 검증 받았다. 하지만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 데뷔를 앞두고 절반 가량을 새로운 노래로 채우는 등 대대적 변화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미국 관객들이 무엇을 좋아할 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K팝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어떤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것이 음악제작을 담당한 헬렌 박의 설명이다.

뮤지컬 K팝 출연진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확인된다. 걸그룹 f(x)의 메인보컬로 지난 3월 현지 기자회견에서 브로드웨이 데뷔를 알렸던 루나뿐만 아니라 그룹 스피카 출신이자 솔로·듀오로 활동한 보형(김보형), 미쓰에이 출신인 민(이민영), 보이그룹 유키스 출신이자 미국에서도 솔로 앨범을 낸 케빈 우 등 과거 K팝 아이돌 육성시스템을 실제로 겪어낸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뮤지컬 K팝 내에 실제 자신들이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 후까지 겪었던 여러 경험이 담겨있다고 입을 모았다.

보형은 "실제로 겪은 일이 많았다. 옛날 생각이 난다"며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민 역시 "어렸을 때 몰랐던 점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울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미쓰에이 이후 걸그룹을 할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하고 있다"면서 "무대에 서는 게 매일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루나는 "모든 아이돌이 이 작품 내 경험을 했을 것"이라며 "무이 캐릭터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많이 극복했다. 하루하루 위로를 받는다.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브로드웨이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헬렌 박은 "케이팝 아이돌을 멀리서 봤을 땐 완벽한 실력, 외모, 화려함부터 떠오르지만, 이들도 하나의 커뮤니티고 나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나약함을 가지고 있고 기뻐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빈 우는 "교포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브로드웨이 무대는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케이팝이 이거다'라고 하기보다는, 누구나 공감되는 이야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음악의 힘, 열정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아직 프리뷰 공연 기간이지만 현지 관객들의 호응도 하나, 둘 확인되고 있다. 19일 공연 현장에서는 K팝을 즐겨듣는 글로벌 K팝 팬뿐 아니라, K팝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브로드웨이를 사랑하는 고연령대의 현지인들도 다수 확인됐다. 올 연말 브로드웨이에 올라온 라인업 중 원작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 뮤지컬은 뮤지컬 K팝뿐인 덕에 오랜 뮤덕들의 관심까지 집중된 여파다.

K팝에 익숙하지 않은 듯, 한국어 대사가 길어질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한 중년 남성은 '무이' 역할을 맡은 루나가 1막 마지막에 '슈퍼스타'를 열창하자 "정말 잘한다"고 감탄을 표했다. 이 남성은 2막 마지막 곡에선 누구보다 크게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뮤지컬 K팝을 통해 출연진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음악의 힘과 열정(케빈 우)"이 통했던 셈이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일부 한국 출신 관객들은 뮤지컬 K팝이 잘되길 바라는 만큼, 조심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전반적인 스타일링이 진짜 오리지널 케이팝보단, 미국 팝에서 바라본 케이팝 같다", "해외 관객들이 이 공연만으로 케이팝이 이거구나라고 판단할까 우려되기도 한다"고 조심스레 입을 뗀 이들은 "K팝을 소재로 한 뮤지컬 K팝이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지 언론들도 K팝의 브로드웨이 정복기를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7년 (뮤지컬 K팝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당시에는 미국인 상당수가 K팝이라고 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만 떠올렸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스트레이키즈를 비롯한 K팝 아이돌이 미국 음악차트에서 밥먹듯이 1위를 차지하고 NBC방송의 아메리칸송콘테스트에선 K팝 아티스트인 알렉사가 오클라호마 대표로 나와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시어터가이드 역시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을 언급하며 "최근 몇년간 한국의 팝스타들은 헐리우드 스타만큼 누구나 쉽게 알아보는 대상이다. 케이팝이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등장한 것은 어쩌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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