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베일 벗은 ‘호프’…나홍진 “피가 그리웠다” 말한 까닭

나원정 2026. 5. 1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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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호프' 현지 인터뷰
나홍진 "칸 경쟁 온 것만도 영광"
황정민 "'곡성' 땐 감독 불안해 보여,
'호프' 땐 달랐죠. 감독상 탔으면"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이 18일(현지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프랑스 남부도시 칸 해변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칸영화제 경쟁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좋아요. 영광스럽습니다.”(나홍진 감독) " 추적극(‘추격자’,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범죄 느와르(‘황해’, 칸 주목할만한 시선 초청), 미스터리 공포(‘곡성’, 칸 비경쟁 부문 초청) 등 장르 변주의 대가 나홍진(52) 감독이 4번째 장편영화 ‘호프’로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전작 3편이 모두 칸에 초청된 끝에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뭣이 중한디”란 명대사를 낳은 ‘곡성’이 오컬트 소재로 687만 관객을 동원한 게 벌써 10년 전이다. 18일(현지시간) 오후 영화제가 한창인 프랑스 칸 마제스틱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는 것조차 낯설다”며 새삼 세월을 절감했다. 그사이 구상했던 스릴러 한편이 불발됐고, 팬데믹이 닥쳤다. ‘호프’ 시나리오를 매만지며 영화의 청사진을 그려갔다.


"'호프' 제겐 너무 착한 영화, 피(血) 그리웠죠"


전날 칸에서 베일 벗은 ‘호프’는 어수룩한 인간들과 비극적인 외계인들의 잘못된 만남을 그렸다. 영어로 ‘희망(Hope)’이란 뜻의 제목부터, 염세적이었던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등장인물 각각이 바라지만, 다다르지 못한 염원을 반영했다. 나 감독 스스로도 이날 앞서 ‘호프’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지나치게 착하다”면서 “진심으로 피가 그립다”고 말했을 정도다.
배경은 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외딴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에게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무리가 괴이하게 죽은 황소 사체를 신고한다. 호랑이 짓인가, 하는 의심도 잠시. 범석은 마을 주민들을 발톱으로 찢고 내던져 죽이는 괴생명체를 발견한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불시착한 외계인들이다. 두려움에 휩싸인 주민들은 말과 자동차를 달리며 외계인 사냥에 나선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나 감독이 ‘호프’ 시나리오를 쓸 즈음부터 세계 곳곳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엄청난 폭력이 무자비하게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 불길함이 있었다”고 그는 부연했다. 전작과 차별화한 범죄 영화에 대한 궁리가 범죄와 폭력, 우리 사회 문제의 근원에 대한 고민으로 뻗어 나갔다. 인간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우주로, 외계인으로 생각이 확장됐다.
영화 '호프'의 스틸 컷. 미지의 존재의 시선에서 포착된 마을 사람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로 속사정 모른 채 명분 없이 죽고 죽이는 외계인과 주민들의 모습 통해 “세상의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주제를 담고자 했다. ‘착한 영화’라 명명한 것도 “어떤 사건에도 안타고니스트(적대자)는 없다”고 말하는 영화여서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다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란 설정”이라 설명한 그는 “(전작 때처럼) 특정 인물을 어떻게든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적었다”고 말했다.
DMZ 마을을 무대로 한 까닭은 남북한 분단의 상징이란 역사적 이유보단 고립된 공간의 개념이 더 컸다.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작고 초라하고 낮은 공간의 느낌. 그런 곳의 이야기가 온 우주적으로 확장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외계인 CG 영화지만, 원시적 액션 구현


‘호프’는 그의 전작들처럼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대신, 당장의 생존을 향해 질주한다. CGI(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지만, 그 외 장면은 “지극히 원시적인 영화”를 의도했다. 예컨대 모든 말[馬] 액션은 더미(실제를 본뜬 모형) 없이 실제 말을 타고 찍었다. 대부분 액션을 최대한 주연 배우들이 소화했다. 황정민은 물론, 촬영 전 무릎 수술을 받은 조인성조차 달리고 또 달렸다. 나 감독은 “전통적이고 아주 오래전 본듯한 그런 액션 장면들을 바랐다. 배우들도 위험성 높은 액션을 시도했다. 외계인 디자인도 약간 레트로(복고적)하게 구상했다”고 밝혔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18일 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 팔레 데 페스티발에서 경쟁부문 진출작 ‘호프’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뉴스1
죽고 죽이는 촌극이 반복되는 사이 외계인과 공명하는 인간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주제적 순간보단 총격에 살갗이 터지는 액션 스펙터클의 인상이 더 강하다. 실제 전라도 해남의 한 마을을 주민들의 양해로 통째로 빌려 초토화된 모습으로 꾸몄다는 극 중 호포항 마을 모습도 세트 촬영에선 느끼기 힘든 생동감을 준다. 제주도, 합천, 루마니아에서도 일부 마을 장면을 촬영했다.

가디언 "K열풍 심화시킬 만한 오락성"


다만, 방대한 설정 중 극히 일부만을 압축적으로 그린 외계인 왕족의 이야기는 CG의 완성도만큼 완결성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홍콩 매체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어설픈 설정과 조악한 CG”라고 혹평했지만, 미국 매체 데드라인은 “할리우드의 어떤 SF보다 뛰어나다”고, 영국 매체 가디언은 “전세계적인 K 열풍을 심화시킬 만큼 오락성이 빼어나다”고 ‘호프’를 평가했다.
영화 '호프'의 스틸 컷. 경찰차에서 무언가를 향해 발포하고 있는 성애(정호연).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올해 칸영화제 일정을 함께한 ‘호프’ 배우들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알리샤 비칸데르는 외계인 분량이 대폭 축소됐음에도 나 감독의 전작을 모두 보며 대담한 연출, 뚜렷한 세계관에 매료됐다고 팬심을 드러냈다. 조인성은 완벽한 하늘빛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고, 숨소리 하나까지 필요하면 다시 녹음하는 나홍진표 완벽주의에 감탄했다. 극중 영웅적 경찰 성애 역의 정호연은 5개월 이상 총기 및 웨이트트레이닝, 카체이싱 테크닉을 익힌 과정을 뿌듯하게 소개했다.


황정민 "나홍진 감독상 탔으면"


황정민은 외계인을 상대한 장면마다 허공을 보고 맨땅에 헤딩하듯 연기했다면서도 “첫 SF, 첫 괴수물이 설렜다”고 했다. 또 ‘곡성’ 때 나 감독을 “불안해하고 쫓기는 듯했다”고 돌아보며, “‘호프’ 촬영 현장에선 더 여유 있고 행복하게 찍었다”고 돌아봤다. 황정민도 ‘곡성’ 이후 두 번째로 함께한 나홍진 감독을 통해 처음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다. 그는 이날 취재진에게 “당연히 경쟁이니까 뭐라도 하나 (상을) 타가면 좋겠다”면서 특히 “감독상을 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프’는 오는 23일 칸영화제 폐막까지 일정을 마친 뒤 올여름 국내 극장가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판은 칸 공개 버전 이후로도 CG 등 후반 작업을 추가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나 감독은 후속작 제작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후의 이야기를 써 놓은 것도 있고 제작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프’ 그 자체로도 완벽한 완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호프'의 배우 조인성(왼쪽부터)과 정호연, 황정민, 나홍진 감독이 18일(현지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프랑스 남부도시 칸 해변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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