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선한 의도만으로 약자를 지킬 수 있을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소액대출 금리를 연 36%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달랐다. 금융회사가 위험 대비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자 대출을 꺼렸고, 저신용 차주들은 불법 온라인 대출이나 고금리 사금융으로 내몰렸다. 선의로 출발한 제도가 오히려 약자를 더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논란을 낳았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고신용자의 대출금리를 조금 높여 저신용자의 부담을 낮추자"라고 제안했다.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을 돕겠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문제는 선한 의도가 곧 좋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사의 '리스크 비용'을 간과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차주별로 금리를 다르게 책정하는 것은 폭리를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도 위험을 반영한 '리스크 프리미엄' 때문이다. 대출금리는 자금조달 비용, 운영 비용, 리스크 프리미엄, 마진으로 구성된다. 신용도가 낮을수록 리스크 프리미엄이 커지고 금리도 올라간다. 이는 금융이 작동하는 합리적 구조다.
리스크 프리미엄을 무시한 금리 규제는 부작용을 낳는다. 금융사는 위험이 큰 차주에게 대출을 내줄 유인을 잃고, 저신용자들은 제도권에서 밀려나 불법 대출로 향한다. 혹은 금융사가 수수료를 높여 비용을 전가할 수도 있다. '서민을 돕겠다'는 정책이 되레 서민을 옥죄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통령은 "초우량 고객에게 초저금리로 많이 빌려주는데, 거기에 0.1%만 보태서 저신용자들이 더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없겠느냐"라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고신용자들이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도는 경제적 '신분증'과 같다. 신용점수는 금융 거래 이력을 반영하는 지표이며 이력이 안정적이면 낮은 금리를, 위험이 크면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확률적 리스크에 따른 합리적 분류다. 자동차 보험에서 사고 이력이 많은 운전자의 보험료가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약자를 보호하려면 신용평가 체계를 고도화하고 맞춤형 보증제도, 정책금융을 강화해야 한다. 신용 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영세 자영업자에게는 대안 신용평가를 도입해 문턱을 낮추고, 불가피하게 위험이 큰 집단에는 정부 보증을 통해 금융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책은 의지가 아니라 설계와 실행에서 성패가 갈린다. "약자를 돕겠다"는 구호가 실제로 힘을 가지려면 금융 시장의 작동 원리를 배제하지 않은 토대 위에서 세밀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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