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 선 사람들에게 조용히 위로를 보내는 책
[장세희 기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교양서의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며 살아가는지를 묻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이 책은 "물고기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에서 출발해, 질서와 안정에 집착하는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고, 그 집착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깊이 있게 보여준다.
책의 주요 인물은 19세기 미국의 저명한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그는 수천 종의 물고기를 수집하고 분류하며 자연은 합리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가진 체계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학문적 목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정확히 제자리에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복적인 붕괴의 연속이었다.
화재와 지진으로 연구 표본이 사라지고, 개인적인 비극과 도덕적 결함이 겹치며, 그가 믿어온 '질서의 세계'는 계속해서 흔들린다. 저자는 조던의 삶을 단순한 전기적 서술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신념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질문을 던진다. '질서에 대한 확신은 과연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눈을 가리는가?' 조던은 끝까지 자신의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우생학과 같은 위험한 사상에 동조하며 많은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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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곰출판 |
"자연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나뉘어 있지 않다."
이 문장은 과학적 사실이면서 동시에 인생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삶에서도 명확한 정답과 구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도달하는 결론이다.
"질서가 없다는 사실이 반드시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정서적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한 의미나 목적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 실패와 혼돈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며, 그 안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전달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전기, 에세이를 넘나들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세계관을 점검하게 만든다. 세상이 질서정연하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우리는 불안해지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이 책은 혼란을 제거해주지 않는다. 대신 혼란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결국 이 책은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미를 잃었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조용한 위로다. 질서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저자가 될 수 있다. <물고기는 없다>는 그 사실을 오래도록 잊히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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