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난 풀 치트키’…빌 게이츠가 韓 조선 택한 이유

22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전날 테라파워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Kemmerer) 1호기 실증 단지에 들어갈 원자로 주기기 핵심 설비 공급과 관련한 기본합의(F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양사가 실제 장비를 어떻게 제작하고 공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HD현대와 테라파워의 관계는 지난 2022년 3000만 달러 지분 투자로 시작된 뒤, 2024년 원통형 원자로 용기 공급 계약, 2025년 전략적 협약으로 이어지며 진전돼 왔다. 이번 합의와 발맞춰 현대건설 역시 테라파워와 SMR 건설을 위한 EPC(설계·조달·시공) 협약을 맺으며 범현대가 차원의 지원 사격에 나섰다.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 협력에서 핵심 벤더로 부상한 배경에는 조선업에서 축적한 압도적 제조 역량이 자리 잡고 있다. 수만 톤 단위의 선박을 건조하며 쌓아온 대형 블록 조립 기술, 특수강 용접, 엄격한 비파괴 검사 역량은 원자로 주기기 제작에 요구되는 핵심 기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특히 극한의 해상 환경을 견뎌야 하는 해양 플랜트의 설계 및 제작 경험은 mm 단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미국 원자력품질보증(ASME NQA-1) 기준을 충족하는 기반이 됐다.
이번 협력은 HD현대가 추진해 온 에너지 신사업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CES 2024에서 정기선 당시 수석부회장은 미래 비전의 하나로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사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후 HD현대는 친환경 선박뿐 아니라 SMR과 해양 원자력을 중장기 성장축으로 검토해 왔고, 테라파워와의 협력은 그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인 성과다.
업계는 이번 합의가 HD현대의 기술 레퍼런스를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원자력 설비는 진입장벽이 높아 벤더로 등록되는 것만으로도 높은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 HD현대는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통해 원전 분야에서의 제조 경험을 축적하고, 향후 다른 에너지 인프라 사업으로 연결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테라파워가 와이오밍주에서 추진 중인 케머러 실증은 미국 내 차세대 원전 상용화의 시험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유연한 전원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특히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차세대 전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 대신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로, 원자로와 결합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활용해 전력 수요에 따라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술이 장기적으로 전력망 안정성과 산업용 전력 대응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육상 실증로의 성공적인 부품 납품으로 얻은 기술 신뢰도는, HD현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위 원전’ 시장으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HD현대는 앞서 2023년 국제 해상 원자력 협의기구 NEMO 설립에도 참여하며 해상 원자력 표준 논의에 발을 들였다. 주민 수용성, 인허가 지연 등 기존 원전 건설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FNPP 시장으로 글로벌 시장이 시선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FNPP와 원자력 추진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테라파워의 육상 실증로를 통해 깐깐한 글로벌 원전 공급망 검증을 통과하는 것이 필수적인 선결 과제이다. HD현대는 테라파워의 핵심 원자로 기술을 자사 조선·해양 플랜트 설계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바다 위 해상 원전 플랫폼을 통째로 수출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자격을 확보하게 된다.
HD현대 관계자는 “원자력 추진선이나 해상 원자력 사업 분야에서도 테라파워뿐 아니라 서던컴퍼니 등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번 와이오밍 육상 실증로 주기기 공급 계약은 향후 해상 원자력 분야까지 사업 기회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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