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풍 주사 맞으러 간 딸 덕분에... "준비된 할머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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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숙 기자]
"어어! 이게 뭐지?"
"왜, 어디 다쳤어?"
방 정리를 하던 딸이 갑자기 욕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갔더니 세면대에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뭐가 있었나 봐. 상자가 너무 커서 발밑이 안 보였어."
피가 보이는 데도, 딸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물로 상처를 씻어 냈다.
딸은 어려서부터 웬만큼 아파서는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넘어져 다쳐도 열이 펄펄 끓어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두 돌을 좀 넘긴 때였다. 혼자서 블록을 가지고 신나게 놀던 아이가, "엄마, 추워"라고 하길래 열을 재 보니, 39도가 훌쩍 넘어 40도에 육박했다. 깜짝 놀란 나는 아이를 업고 동네 소아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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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에게 큰 상처를 준 슬랩 롤러(Slap Roller) 슬랩 롤러는 도자기를 만들기 전 흙덩이를 고르게 펴주는 역할을 한다. |
| ⓒ 김효숙 |
남편은 쇠에 찔렸으니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딸은 별일 아니라며 소독하고 약 바르면 된다고 맞섰다. 남편은 피가 나는 딸의 발가락을 보더니 상처가 덧나기 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난리였다. 딸은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질병관리청에 접속해서 회원가입을 하고 예방접종 이력을 찾아보았다. 딸은 최근에 주사를 맞은 것 같다고 우겼지만, 2007년 이후로는 접종 기록이 없었다.
딸은 스마트폰으로 파상풍에 관해 알아보더니 그 부분이 녹슬지는 않았지만, 주사를 맞는 게 마음 편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무서운 파상풍균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파상풍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는 흙에 있는데 피부나 점막의 상처로 들어가서 발생한다. 녹슨 못에 찔리거나 동물에게 물려도 감염될 수 있으며 상처가 나거나 피어싱이나 문신을 통해서 또는 곤충에 쏘였을 때도 감염될 수 있다. 파상풍균에 감염되면 두통이나 미열, 오한 등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육이 뻣뻣해지거나 호흡이 곤란해져 사망할 수도 있다.
만약의 경우이긴 하지만 파상풍균은 생각보다 무서운 녀석이었다. 그러니 태어나 두 달부터 두 달 간격으로 세 번,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 한 번, 아이가 입학할 무렵에 또 한 번 그리고 중학교 다닐 때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도 끝이 아니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도우미는 성인이 되고 나서 10년마다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딸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평소처럼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우리 모녀가 일주일에 딱 한 번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딸은 상처를 앞세워 슬렁슬렁하려고 했지만, 강사님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상체 운동을 하면 된다면서 한 시간 내내 기구에 앉아 팔과 어깨 배를 이리저리 비틀고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진땀을 한 사발은 빼고 나서야 운동이 끝났다. 우리는 괜히 국물부터 마셨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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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계절 문전성시를 이루는 우리 동네 소아청소년과 딸과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간 동네 소아청소년과 |
| ⓒ 김효숙 |
딸 덕분에 언제 할머니가 되어도 걱정이 없다!
진료실에서 차트를 보던 선생님은 우리 모녀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두 분은 어떤 일로 같이 파상풍 주사를 맞으려고 하시나요?"
딸이 어제 쇠로 된 물건을 밟아 피가 났다고 하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녹이 슬었나요? 상처는 얼마나 깊은가요?"
딸의 상처를 본 선생님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감돌았다. 그 순간 잔뜩 힘이 들어갔던 내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갔다. 의사 선생님은 파상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진짜로 녹슨 못에 발바닥을 찔리거나 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 다음엔 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곤 나를 쳐다보았다.
"전 딸이 오기 싫다고 할까 봐 같이 왔어요. 예방 차원으로 좋을 것도 같고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웃으면서 잘 왔다고 했다. 한 번 맞으면 10년 동안은 지저분한 흙이나 녹슨 못,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물려서 상처가 생겨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요즘엔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들이 많은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삿바늘이 어깨에 들어갈 때 따끔했지만 독감 주사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붙여주는 귀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동그란 스티커를 붙여주며 오늘 하루만 술 마시지 말고, 샤워도 참으라고 했다. 10년 동안 마음 편히 살 수 있다는 데 그 정도쯤이야 참아줄 수 있다.
한 사람에 5만 원씩 1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지만 뿌듯했다. 남들보다 먼저 혜택이 아주 많은 보험을 들어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내 딸이나 아들은 아직 결혼 예정은 없지만 언제 어느 때 손주가 생겨도 덥석 안아줄 수 있겠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딸내미 덕에 준비된 할머니가 되었다.
내 주변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도 많고, 자식이 결혼한다고 연락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때문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반려동물과 건강하고 즐겁게 살려면 그리고 귀여운 손주를 안아주려면 파상풍 주사부터 맞는 게 순서라고 친구들에게 빨리 알려주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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