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지막 피난처'가 끓고 있다... 베테랑 다이버의 호소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산호군락지는 해조류가 사라지고 열대 경산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수온 상승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올여름에는 6주 연속 이어진 고수온 현상으로 곳곳에서 녹아내린 산호가 발견됐다. 국가유산청은 천연기념물 지정 20년 만에 보호구역 축소를 검토 중이다. <기자말>
[박성준 기자]
▲ 배를 타고 서귀포 앞바다를 조사중인 파란 탐사대 |
ⓒ 파란탐사대 윤상훈 |
제주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 왕국 시절에는 탐라국으로 고려시대에는 '멀고 험한 섬'이라는 의미인 원악도(遠惡島)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섭라, 탐모라, 탁라 등 여러 이름을 거쳐 1105년 지금의 제주라는 명칭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많은 이름이 있었지만, 그 뜻은 대부분 육지의 관점을 담고 있다.
▲ 산호 삼각지대. 제주는 아시아태평양 산호 군락지의 북방한계선 |
ⓒ 폼페이해양환경연구소 |
'바다의 열대우림'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전 세계 산호의 76% 이상이 서식하며 3000종 이상의 어류가 산호초 사이에 깃들어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주 바다는 수심과 계절에 따라 극명하게 변하는 해류의 영향으로 따뜻한 바다에 사는 경산호부터 차가운 바다에 사는 연산호까지 다양한 종류의 산호가 균형을 이루며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 제주연산호군락지 보호구역 지정 현황(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절대보전지역 제외) |
ⓒ KDPA |
이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관리하고 있는 제도는 2004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아래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다. 섶섬, 문섬, 범섬과 송악산 일대 약 90㎢가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해양생물 서식지를 대상으로 지정한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파란 해양보호구역탐사대는 7월 18일부터 8월 18일까지 한 달간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에서 수중조사를 진행했다. 섶섬, 문섬, 범섬, 송악산 인근 주요 군락지에서 각각 2회씩 총 8회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바닷속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국내 최대 연산호 서식지이자 6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다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 8월 서귀포(중문) 표층수온 변화 그래프 |
ⓒ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환경 관측시스템 |
범섬 수중조사를 위해 법환포구로 이동하는 길, 안내를 맡은 이계준 다이버는 바다를 열탕이라 표현했다. 올여름 제주 바다는 27년째 다이빙 샵을 운영하는 베테랑 다이버도 처음 경험하는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8월 한 달간 서귀포 바다에서 일평균 표층수온이 30℃를 넘어선 날은 총 21일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8월 15일은 평균수온 30℃가 열흘 연속 이어지던 날이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제주에서 8월 평균수온이 30℃를 넘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돌연 열탕으로 변해버린 바다에서 산호는 무사할까.
▲ 8월 15일 범섬에서 발견된 녹아내린 산호. 바닥에 폴립이 탈락해 떨어져 있다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 8월 15일 범섬에서 발견된 큰수지맨드라미. 기부가 녹은 형태로 쳐져 있다. 폴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왼쪽 밤수지맨드라미도 쳐져있다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 8월 24일 범섬에서 발견된 백화현상이 발생한 경산호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수온이 내려가면 다시 회복되지만, 고수온이 자주, 길게 발생하면 영양분이 부족해진 산호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경산호에서 백화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제주 바다가 열대 산호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규모 산호 백화 피해 발생 당시 고수온 경보 지도. 점차 고수온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
ⓒ 미국 해양대기청 NOAA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김태훈 연구원은 제주바다가 열대 산호의 마지막 서식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수온 상승 추세가 이어진다면 2050년 안에 산호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에 열대 경산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들이 기존 서식지인 동남아시아 바다에서 살기 어려워지면서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가 산호에게는 최후의 피난처로 환경 변화에 맞춘 보호 정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뒤로 숨는 책임자
산호에게 닥친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을 보호하는 제도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지난 5월 28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천연기념물 제주연안 연산호군락 자연유산 지정 구역 적정성 검토'라는 이름의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용역 취지를 묻는 질문에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로 연산호의 수가 줄어들면서 산호가 서식하지 않는 위치까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불편을 주고 있다는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연구를 통해 자연유산 범위에 대해 재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 어느 때보다 실효성 있는 보호 정책이 절실한 시점에 보호구역을 줄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인 것이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훼손된 강정 등대 연산호 군락지(2008년) |
ⓒ 녹색연합 |
▲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훼손된 강정 등대 연산호 군락지(2015년) |
ⓒ 녹색연합 |
▲ 관광잠수함 운영으로 훼손된 문섬 연산호 군락지 |
ⓒ 녹색연합 |
▲ 서귀포항 남방파제 해양레저체험센터 건설 현장. 멸종위기종 해송 서식지 |
ⓒ 파란탐사대 박성준 |
이와 더불어 서귀포 관광잠수함은 23년간 문섬 연산호 군락지를 훼손하며 운영됐으며, 문섬과 범섬 산호들은 버려진 낚싯줄과 그물에 걸려 잘려나갔다. 훼손이 발생한 공간은 모두 보호구역이 3개 이상 중첩 지정된, 국가유산청에서 조사를 통해 핵심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놓은 공간들이다.
보호구역 지정 이후 20년간 이어진 훼손 문제에도 관리당국 중 어느 한 곳도 문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거나 해결책을 제시한 바 없다. 제주도는 연산호 서식지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한 이후 5년 만에 주 서식지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환경부는 해군에서 제출한 허술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동의해주었고, 그 결과로 강정 앞바다 연산호 군락지가 사라졌다. 해양수산부는 멸종위기종 해송 서식지에 레저체험센터를 건설하며 추가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국가유산청은 관광잠수함, 낚시, 어업 등 군락지 이용을 아무런 지침이나 보호조치 없이 방치해왔다.
산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지금 제주바다 산호의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 가지 원인으로 갑자기 확 많은 수가 절멸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김태훈 연구원은 산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산호가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가해지는 인위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수온 상승으로 인한 변화를 단기간에 막아 낼 방법은 없지만, 육상 오염수, 낚시 어업 쓰레기 등 위험 요인을 감소시킬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산호 보호 정책의 핵심이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산호 복원력 회복'에 있다고 말한다. 산호 삼각지대를 인접하고 있는 6개 국가는 산호 보호를 위한 협력을 약속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보호구역을 대폭 확장하고 산호초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낚시와 어업 방식을 개선했다.
▲ 서귀포에서 만난 김병일 다이버 |
ⓒ 파란탐사대 김화용 |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이버들이었다. 김 다이버는 2014년부터 베테랑 다이버 10여 명을 모아 '문섬47'이라는 팀을 만들어 수중 정화작업을 해왔다. 그는 연산호군락지에서 건져낸 쓰레기만 해도 수백 톤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더 많은 사람이 책임의식을 갖고 바다를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딱 한 번만 바다에 들어가 보자고, 내가 다 준비하고 안내하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예예 대답만 하고 코빼기도 안 비치지."
김 다이버는 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이 바뀔 때마다 매번 사무실을 찾아가 함께 바다에 들어가 보기를 제안해 왔지만 그를 따라 바다로 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 명이라도 가봤다면 분명 바다의 모습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한 번이라도 바다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바다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며 한숨 쉬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생태계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최초로 보호구역을 지정한 기관은 환경부도 해양수산부도 산림청도 아닌 국가유산청이다. 1966년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를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등재했다. 그 이전에 홍도, 설악산 등이 지정된 바 있었지만, 이는 보다 경관 보전을 목적으로 지정한 것으로 특정 동물군의 서식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낙동강 철새 서식지 등재를 제안한 사람은 조류학자 원병오 교수였다. 지역의 노거수나 진돗개와 같은 문화적 특이성과 고유성을 근거로만 자연물을 평가하는 천연기념물 지정기준으로 보면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해 서식지를 지정보호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급진적이었다.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름의 삶을 가진 존재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포함시키고자 했던 시도라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지도 바다와 산호의 관점에서 이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지정되고 지켜온 공간이다. 세계유산본부의 연구 용역은 빠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1월쯤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진 해양환경을 고려해 해양보호구역 관리 방안을 재정비하는 국내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연구가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 이를 바탕으로 관리당국이 어떤 보호정책을 마련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참고 문헌]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수산관리단(2021). 문섬 등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제3차 관리기본계획(2022~2026).
서귀포신문(2020.04.21). 제주와 유배, 그리고 이어도. URL: https://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10
성한아(2021). 한국자연생태계의 일원이 된 야생동물: 자연환경보전정책의 등장과
보전 조류학 연구, 1956-199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2009).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산호 분포조사 통합보고서.
해양수산부(2019). 제2차 해양생태계 보전 관리 기본계획.
한겨레(2024.05.26.). 제주 서귀포 연산호 군락 자연유산 구역 검토. URL: https://www.hani.co.kr/arti/area/jeju/1142071.html
NOAA(2024.05.21). How does 2023-24 global coral bleaching compare to past events? URL: https://www.climate.gov/news-features/featured-images/how-does-2023-24-global-coral-bleaching-compare-past-event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투데이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박성준씨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입니다. 해양생태계 보전과 보호지역 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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