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섬식정류장·양문형버스 도입, 반갑지 않다

김순애 2024. 10. 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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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대중교통 시험장 된 제주도... 도민과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 실패하기 마련

[김순애 기자]

수많은 정책들의 시험장, 제주도

적지 않은 정치인, 행정가들이 제주도를 새로운 정책의 시험장으로 곧잘 활용해왔다. 제주도는 2006년 전국 최초로 특별자치도가 되어 개발 관련 각종 행정 규제가 완화되는가 하면 2009년에는 전국 최초로 제주도에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구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2년 CFI2030 계획 발표 후 2013년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며 전기차 민간 보급을 시작했다. 2017년에 전국 최초로 상업용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준공하는가 하면 2023년에는 그린수소 버스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국 최초로 섬식 정류장, 양문형 버스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제주도가 대중교통의 시험장이 된 것이다.
▲ 섬식 BRT정류장 모형 제주도가 토론회에 전시한 섬식정류장 모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는 10일 진행된 '대중교통정책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섬식 정류장과 양문형 버스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S-BRT(Super Bus Rapid Transit)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전국 최초 도입이다.

BRT(간선급행버스체계)는 버스 전용차로, 편리한 환승시설, 교차로에서의 버스우선통행 등의 사항을 갖추어 급행으로 버스를 운행하는 것으로 이미 서울, 대전, 세종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제주 역시 2017년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BRT 도입을 선언했다.

제주도는 버스준공영제 도입과 함께 버스전용차로 개설을 계획했고 2018년 중앙로 2.7km와 제주공항 0.8km에 중앙버스차로를 지정했다. 중앙버스차로 개설 후 구간의 대중교통 평균속도는 13.2km에서 18.8km로 증가했고 대중교통 이용자의 66.8%가 버스전용차로 확대에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2018년 이후로 더 이상 버스전용차로를 확대하지 않았고 준공영제 도입과 함께 약속한 버스환승센터 건립 등도 흐지부지되었다. 버스의 정시성, 편리성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 정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2016년 14.7%였던 제주의 버스수송분담률은 2023년 11.6%까지 떨어졌다.

수송분담률에서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준공영제 예산에 대한 각종 비판이 이어졌고 제주도는 2022년에야 제주중앙버스차로제(BRT) 2단계 공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중앙버스차로제 2단계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충분한 공론의 과정 없이 기존 가로수를 뽑아내며 공사를 하자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게다가 이 공사가 기존의 인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과 제주도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에 제주도는 기존 가로수를 유지하고 인도를 축소하지 않는 방식을 모색한다며 공사를 중단했다.
▲ 가로수를 뽑고 성급하게 공사 진행했다가 중단 후 심은 묘목 2022년 제주도가 중앙버스차로제 2단계 사업을 진행하다가 시민들의 반대로 중단한 현장
ⓒ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1년 여 이상의 공사 중단 시간을 거쳐 제주도는 대중교통 이용자의 편리성과 인도 확보, 가로수 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섬식정류장과 양문형버스를 도입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발표에 따르면 공사를 시작하는 서광로 3.1km를 비롯해 동광로(광양사거리~국립제주박물관) 2.1㎞, 도령로(신제주 입구 교차로~노형오거리) 2.1㎞, 노형로(노형오거리~도로교통공단) 1.7㎞ 구간에 섬식정류장이 추진된다.
전국의 모든 버스 정류장은 상대식으로 상행버스와 하행버스의 정류장이 각각 별도로 설치된 형태이다. 반면 섬식 정류장은 상행버스와 하행버스가 하나의 정류장을 이용하게 되며 도로 한가운데 설치하게 된다. 따라서 섬식정류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버스가 지하철처럼 양문형이어야만 한다.
▲ 중앙버스차로제 2단계 사업 10월 10일 진행된 대중교통정책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발표된 계획 노선
ⓒ 김순애
공사 먼저 시작하고 토론회 통해 의견 수렴하겠다?

10일 토론회에서 김영길 제주특별자치도 대중교통과장은 "국무총리실 규제 심사를 거쳐서 국토부에서 오늘 양문형버스 제조를 위한 기술 기준을 고시했다. 이제 행정절차는 모두 끝났고 11월부터 버스가 들어와서 운영하게 된다"며 곧 양문형 버스가 도입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주도의 계획과 발맞춰 우진산전이 양문형 전기저상버스 '아폴로1100 양문형' 모델을 개발 완료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하지만 제주도의 야심찬 계획이 충분한 공론 과정을 거쳤는지 의구심이 든다. 제주의 인터넷신문사인 <제주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제주도는 지난 3월 12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중교통 중앙버스전용차로 기준마련 및 기본 실시설계용역'을 실시했다. 이와 같은 용역의 경우 중간보고, 최종보고를 거치며 사업에 대한 도민 의견도 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 용역에 대한 최종보고가 이뤄지기도 전인 지난 6월 '제주 BRT 섬식정류장 쉘터 설치사업(협상)_가격협상' 공고를 수의 계약으로 올렸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은 공사 시작 후 의견수렴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고 질의 응답 시간에도 이미 서광로에서 섬식정류장 공사를 시작하는 과정에 진행되는 토론회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 10월10일 진행된 대중교통정책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 .
ⓒ 김순애
이용자 배제한 대중교통정책토론회

제주에서 대중교통은 기후위기 대응 및 이동권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2021년 기준 제주의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 4327천톤CO2eq 중 도로 수송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1,448천톤CO2eq로 1/3을 차지한다. 인구 대비 자동차 등록 비율 역시 가장 높으며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제주도는 그야말로 자동차 중심도시이다. 하지만 대다수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은 말로만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외칠 뿐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날 한 발제자는 버스 이용자들을 '교통약자'라고 표현하면서 버스 이용자를 자동차 이용자들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로 간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때문에 버스 정책 전문가들조차 버스 이용자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버스 이용자들은 교통 혼잡을 유발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하는 이들이다. 또 버스 정책 토론회인데도 정책의 한 주체인 버스 이용자가 배제된 것은 유감이었다. 버스 이용자들 입장을 우선으로 고려해서 버스 정책이 세워질 때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최초 타이틀, 반갑지 않다

대중교통 전용차로 확대는 자동차 중심도시에서 탈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 중 하나이다. 하지만 9월 말 급작스럽게 개최해 실패한 '연북로 차 없는 거리' 정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취지가 정책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앞서 제주도는 온갖 정책들의 시험장이 되어 왔다. 하지만 제주도의 현실에 맞는지 구체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도민과의 소통도 없었던 일방적 정책들은 수많은 예산을 투여하고도 실패했다.

제주를 세계 스마트그리드 선도지역으로 만들겠다며 구좌읍에 93억을 들여 설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은 운영 중단 이후 수년 째 애물단지로 방치되어 왔다. 그린수소버스 역시 마찬가지다. 수소 연료 공급도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60억 원을 들여 11대의 버스를 도입했지만 현재 5대가 놀고 있다.

대중교통 정책에 있어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다소 느리더라도 도민들과 소통하며 제주의 현실에 맞추어 사업을 추진하며 성과를 내야 해야 한다.
▲ 2023년 10월 제주에서 진행된 수소버스 개통식 제주도는 개통식을 시작으로 60억 원을 투입해 총 11대의 수소버스를 도입했지만 현재 5대가 운행을 멈춘 상태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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