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고 분해 미치겠다"…화성 아리셀 화재 유족, 첫 재판 공전에 오열
박순관 변호인 "공소장 외 검찰서 혐의 입증 위해 확보한 증거기록 아직 확인 못 해"
유족 측 변호인 "아무 실질적 논의 안 이뤄지고 재판 끝나…신속하게 진행되길 촉구"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진 일차전지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첫 재판이 16분 만에 종료됐다. 사고 이후 4개월 만에 진행된 첫 재판이 공전되자 피해자 유족 측은 "억울하고 분하다"며 울분를 토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박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 사건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은 "검찰과 합의한 바에 따르면 열람실 사정으로 10월 30일부터 증거기록 등사가 가능하다고 하다"며 공소장 외 검찰이 혐의 입증을 위해 확보한 증거기록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약 3만5천쪽에 달한다고 했다.
통상 첫 공판에서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인정 또는 부인)과 검찰의 증거기록을 재판부가 채택해도 될지 동의 여부를 밝힌다.
이후 증인신문 등 재판절차가 진행되는데, 지난 달 24일 기소된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증거기록 복사조차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장은 "검찰에 요청한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도 열람 등사를 시작하기까지 거의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상식적이지 않다"며 "1심에서 구속 기한이 6개월인데, 한 달 정도가 날아가 버린다. 수원지검에서 물적, 인적 지원을 확보해서 이를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 측은 "열람 등사에 협조해 최대한 일찍 드리겠다"고 답했다.
이날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대해 "수사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평가, 판단을 구하는 부분, 다투는 부분도 있다"고 말을 아꼈다.
공판준비기일은 일반 공판 기일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박순관 대표 등 8명은 이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 달 25일 오전 10시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이날 첫 재판은 양측의 재판 준비 상황을 확인한 뒤 16분만에 종료됐다.
재판이 끝난 뒤 유족 측이 연 기자회견에서 하태승 변호사는 "검찰의 실무적인 사정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재판이 끝났다"며 "피고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길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오늘 출석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최악의 참사를 야기한 점에 대해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유족들에게 사과했어야 한다"며 "다음 공판에서는 적어도 피고인 측 대리인들이 23명 고인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중 1명인 고(故) 엄정정 씨 어머니 이순희 씨는 "진짜 억울하고 분하고 미치겠다"며 "벌써 4개월, 120일이 지났는데 여태 재판 준비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우린 하루하루가 피 마르고, 눈물 없으면 살지도 못 하고 있다"며 "희생자가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 나오겠느냐. 판사고 변호사고 진짜 밉다"고 오열했다.
박 대표는 올해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께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 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그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방해,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며, 다른 임직원 등 6명과 아리셀을 포함한 4개 법인도 각 불구속 기소 됐다.
검찰은 아리셀이 2020년 5월 사업 시작 후 매년 적자가 발생하자 매출 증대를 위해 기술력 없이 불법 파견받은 비숙련 노동력을 투입해 무리한 생산을 감행하다가 사고를 야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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