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내 대소변 받아줘서 결혼 결심했다.." 모든 재산이 아내 명의인 이유 밝힌 톱배우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남자, 그리고 곁을 지킨 한 사람

1970년대 후반,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던 배우 이덕화는 당시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 불릴 만큼 자유롭고 매력적인 청춘스타였다.

그러나 1977년 4월, 한밤중 귀가하던 길에 만원 버스와 충돌하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버스 아래에 끼인 채 70미터를 끌려간 대형 사고. 청바지는 허리띠만 남았고, 가죽점퍼는 목만 남았다. 그의 몸은 말 그대로 으깨졌다.

14일간의 혼수 상태, 53번의 대수술, 3년간의 병원 생활. 많은 이들이 "이젠 끝났다"고 말할 때, 한 사람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약혼도 아닌 연인 사이

당시 이덕화와 김보옥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연인 사이였지만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덕화는 “나한테 시집오지 마라, 딴 데 가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자유롭고, 결혼에 관심도 없었던 그는 자신의 인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웠을 때, 김보옥 씨는 아무 말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병상을 지켰다. 식사도, 재활도, 심지어 대소변 수발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25세의 꽃다운 나이. 아무런 약속 없이도, 그녀는 3년을 그렇게 보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다, 이제 아내가 만든 인생이다"

이덕화는 3년의 병상 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일어섰다. 몸무게 42kg, 걷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다시 걸었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했고, 지금까지 40년 넘게 함께하고 있다.

이덕화는 방송에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내 명의로 된 재산은 없다. 모든 게 아내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난 낚시 미끼값만 부탁한다. 그게 내 인생의 진짜 행복이다.”

사람들은 그가 간절한 사랑을 지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간절한 헌신에 응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후유증 속에서도 계속된 감사

그 사고로 이덕화는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2009년에도 후유증으로 13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을 받았고, 대중목욕탕은 흉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늘 말한다.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들, 그리고 아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다.”

지금의 이덕화를 있게 한 사람. 아내 김보옥은 단지 ‘배우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킨 진짜 동반자였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