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이 '애칭?' 이강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윤효용 기자 2023. 5. 25. 19:49
음성재생 설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강인(왼쪽), 구보 다케후사.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윤효용 기자= 스페인 라리가가 비니시우스 주니어(레알마드리드) 인종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그동안 발생했던 인종차별 사건에 비해 이번 경우에는 파장이 크다. 라리가 뿐만 아니라 스페인축구협회가 직접 나설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비니시우스 인종차별 사건은 지난 22일(한국시간) 발렌시아 홈 구장 메스타야에서 열린 발렌시아와 레알마드리드의 라리가 35라운드에서 일어났다. 당시 발렌시아 홈팬들은 경기 전부터 레알 에이스 비니시우스를 향해 "비니시우스, 넌 원숭이야"라는 노래를 부르며 멘탈을 흔들었다. 이런 행위는 경기장 안에서도 이어졌고 비니시우스가 관중들과 설전을 벌이는 상황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관중들은 원숭이 소리나 흉내를 내는 등 비니시우스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경기 후 비니시우스는 "라리가에서는 인종차별이 일상이다. 이번이 처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니다"라며 "그렇지 않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스페인이 인종차별 국가로 알려져 있다"며 스페인 축구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 감독마저 "용납할 수 없다. 경기장 전체가 인종차별성 발언을 외쳤다. 오늘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라리가는 문제있다. 이런 인종차별 문제가 있을 때는 경기를 중단해야 한다. 경기장 전체가 선수를 모욕했다"며 분노했다. 


비니시우스의 말대로 라리가 내 인종차별은 내내 있었다. 지난 2021년 발렌시아 수비수 무크타르 디아카비가 카디스전에서 상대 수비수 후안 칼라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경기를 중단하고 걸어나갔다. 2004년 11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잉글랜듸 국가 대항전에서 잉글랜드의 흑인 선수였던 션 라이트 필립스, 애슐리 콜이 원숭이 소리를 들은 바 있다.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똑같은 행위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운데, 레알마드리드).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종차별은 흑인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아시아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도 여전하다. 현재 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구보 다케후사와 이강인도 아무렇지 않게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 구보는 지난 2020년 마요르카 임대 시절 소속팀 코치 다니 파스토르에게 '눈찢기' 인종차별을 당했다. 이강인은 소속팀에서 '엘 치노(중국인)'로 불리고 있다. 멕시코 출신인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은 훈련 도중 이강인에게 "뭐 해, 중국인! 뭐 해!"라고 외쳤고, 동료들도 이강인에게 '치노'라고 부르는 게 영상에 담겼다. 


물론 이강인의 경우, 아기레 감독나 동료들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있진 않다. 이강인도 '치노'라는 단어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정도로 무뎌진 모습이다. 스페인어권 내 국가들 내에서 중국인이라는 말은 그저 아시아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아시아인을 향한 별명 정도로 여겨진다. 눈을 찢는 행위도 그렇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멕시코가 어부지리로 16강행에 성공하자, 멕시코 내에서 한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눈을 찢는 사진들을 찍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차별 의미를 담고 있다. '치노'나 '눈찢기'는 아시아인의 작은 눈이나 비슷하게 생긴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다. 단순히 별명이나 애칭으로 쓰이기에는 부적절하다. 따라서 애칭으로 이강인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일도 반복돼선 안된다. 이강인은 한국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어떠한 차별도 용납이 되지 않는 사회다. 무지는 핑계일 뿐이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이런 행위들이 인종차별인 걸 알 수 있다. 구보가 '눈찢기'를 당했을 때스페인 언론 '안테나3'은 해당 사항을 "매우 인종차별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콜롬비아 출신 리카르도 토렌츠 기자 역시 "인종차별이다. 에드윈 카르도나가 한국에 행했던 것과 같다.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계속 반복하는 건 인종차별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스페인 내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다. 스페인축구협회(RFEF)가 나서 '인종차별, 축구 밖으로' 캠페인을 진행한다. 공식적인 대응은 그렇다. 그러나 충분히 적극적인지는 의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종차별자를 향한 무관용 처벌, 인종차별 교육 등 다양한 대책으로 축구팬, 국민들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과정은 단호하게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선수가 등장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지지가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현지 적응, 친분 등의 이유로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확실히 인종차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


라리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한다. 라리가 내 흑인, 아시아 선수들은 점점 늘고 있다.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브라질의 어린 스타들을 일찌감치 데려와 키우고 있다. 심지어 순혈주의로 유명한 애슬레틱빌바오조차 가나 혈통인 윌리엄스 형제를 바스크인으로 인정한다. 구보, 이강인 아시아 선수 두 명이 라리가 팀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 중이다.


라리가는 북미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시아를 주목하는 만큼 인종차별 근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위선적인 리그가 될 뿐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