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먹은 인생 햄버거, 메뉴판 보고 놀란 이유

김종섭 2026. 5. 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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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여행기] 지성의 전당 '클레멘티움'부터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맛집까지

[김종섭 기자]

지난 8일 프라하 여행 4일 차, 시차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프라하의 하루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된 기분이다.

숙소가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는 도보로 15분 내외면 닿는다. 이날은 조금 특별한 곳을 목적지로 정했다. 카를교의 북적임과는 대조 되는 엄숙한 지성의 공간, 체코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예수회 복합 건물인 클레멘티움이다. 관람 예약을 위해 오전 8시 30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티켓을 사려는 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프라하에서 기다림은 여행의 기본 덕목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기다림 끝에 손에 쥔 클레멘티움 입장권
ⓒ 김종섭
클레멘티움은 완공까지 무려 170년이 걸린 거대한 건축물로, 프라하의 지성과 역사가 묵묵히 숨 쉬는 곳이다. 9시가 되어 예매가 시작될 즈음, 우리 부부는 다행히 줄의 앞 부분인 용의 머리 쪽에 서 있었다. 사실 1인당 2만 5천 원이 넘는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미리 현장에 나와 줄까지 서야 하나 싶은 의구심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전날 아내의 말에 호기심으로 그 지루한 기다림을 대신했다.

운 좋게 몇 좌석 남지 않은 오전 10시 관람 티켓을 손에 넣었다. 날씨가 추운 탓에 두꺼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숙소에 들렸다가 10시 5분 전에 관람장 입구로 갔다. 가이드를 따라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 2층 도서관 홀에 도착했다. 약 20명의 관람객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드디어 도서관 문이 열리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압도적인 경외감을 느끼다

▲ 바로크 양식의 정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홀의 전경] ⓒ 김종섭

천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프레스코화는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냈고, 벽면을 메운 2만 7500여 권의 고서들은 압도적인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홀 중앙의 고풍스러운 지구본들과 천문 시계들은 과거 학자들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려 했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5층 자오선 홀(Meridian Hall)은 프라하의 표준시를 결정하던 시간의 심장부였다. 어두운 방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이 바닥의 자오선에 닿을 때, 비로소 프라하의 정오가 선포되었다고 한다. 라디오도 없던 시절, 온 도시의 시간을 책임졌을 이 아날로그적인 공간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6층 열람실에는 과거 관측에 사용되었던 나침반과 습도계 등 빛바랜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어 과학사의 성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 다시 좁은 나무 계단을 타고 천문탑 꼭대기에 올랐다. 그곳에는 프라하 시내를 360도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천문탑에서 바라본 프라하의 360도 파노라마 뷰 ⓒ 김종섭

관람을 마치고 도보로 10분 내외에 위치한 댄싱 집(Dancing House)으로 향했다. 프라하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물 중 하나로, 1996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건물이 마치 춤추는 남녀처럼 보여서 댄싱 하우스라는 별명이 붙여졌는데,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루프탑 전망이 좋아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조금 전 클레멘티움에서 느낀 감흥 때문인지 큰 동요는 없었다. 건물 전체의 느낌을 눈에 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요기할 빵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시차 적응이 아직은 무리인 듯 잠시 눕는다는 것이 오후 4시를 훌쩍 넘겼다.
 유리와 콘크리트가 기하학적으로 뒤섞여 마치 춤을 추듯 곡선을 그리는 댄싱 하우스 건물
ⓒ 김종섭
오후 6시경, 외출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프라하의 맛집이라 불리는 햄버거집 투어를 나섰다. 구시가지 근처의 유명한 정육점 겸 햄버거 맛집 나쉐마소(Nase maso)를 찾았다. 간판 이름은 체코어로 '우리 고기'라는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집의 특징은 신선한 소고기를 직접 손질하는 정육점 스타일 치즈버거와 체코식 소시지가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매장 안은 오픈 키친이라 고기 굽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신선함이 눈으로 먼저 전해졌다.

맛집이라는 이름답게 내부 좌석은 협소했으나 다행히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어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부 좌석은 많지 않아 서서 먹거나 포장하는 사람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사실 주방에는 내부보다 주방 시설이 더 장소가 넓었고 주방 인원도 생각보다 상당수가 일을 하고 있었다.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 치즈버거 3개와 캔 콜라 하나에 맥주 두 잔을 시켰다. 물보다 싼 맥주가 일상인 이곳에서 햄버거와 맥주의 조합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맛은 유명 맛집이라는 명성에 맞게 난생 처음 경험하는 깊은 풍미였다. 한국 돈으로 약 10만 원 정도의 비싼 가격을 지불했지만, 입안에 남는 여운은 그 가격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붉은 선홍빛의 신선한 소고기 패티가 두툼하게 들어간 나쉐마소의 시그니처 치즈버거
ⓒ 김종섭
특히 놀라웠던 것은 매장 밖 안내문에 한국어가 제일 위에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홀레쇼비체 시장에서도 제대로 고기를 썹니다!"라는 문구부터 새로운 매장 위치 정보까지 모두 한국어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증거일 것이다. 몇 자리 안 되는 좌석임에도 옆자리에 한국인 관광객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드디어 프라하의 명물 뜨르델릭(Trdelnik)을 맛봤다. 겉은 설탕과 시나몬으로 달콤하고 속은 쫄깃한 이 빵은 프라하 길거리 여행의 완성이다. 여행 4일차 만에 처음 마주한 '굴뚝빵'은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했다.

숙소로 향하던 행선지를 다른 곳으로 급선회했다. 해 질 녘, 프라하의 밤을 마주하기 위해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밤 9시가 가까워진 시간임에도 기대했던 화려한 불빛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불 꺼진 창들이 자아내는 고요함 속에서 조용히 숨 쉬는 프라하의 진면목을 보았다. 프라하 성의 가파른 길을 내려오며 그 정취를 온전히 느꼈다. 비록 전날처럼 3만 7000보를 넘기는 강행군은 아니었으나, 분주한 움직임 대신 정적인 풍경 속에서 하루를 만족스럽게 갈무리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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