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젊은 대학 도시, 2008년 이후 민주당에 첫 승리 안겨주나

글,임성수 2024. 10. 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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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주 르포 2. 노스캐롤라이나주
대학도시들, 해리스 지지 여론
트럼프 지지농촌, 경제가 최대 이슈
허리케인 ‘헐린’ 피해는 돌발 변수
미국 대선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오렌지카운티 카보로의 한 도로에 28일(현지시간)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팻말이 꽂혀있다.

“공화당 주지사 후보에 대해 알아봤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 덕분에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가 이기게 될 것 같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 캠퍼스에서 만난 엘리엇 데이헌(77)은 기자에게 이렇게 물으면서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는 34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와 모든 정신 나간 사람들을 (공직에서)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공화당 주지사 후보는 마크 로빈슨(현 노스캐롤라이나 부지사)이다. 로빈슨은 과거 자신을 ‘블랙 나치’라고 칭하며 노예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선 후보 트럼프의 대권 가도에도 찬물을 끼얹는 중이다. 데이헌은 “로빈슨 탓에 트럼프는 노스캐롤라이나를 잃게 될 것으로 본다”며 “이 지역에는 IBM이 있다. 또 애플 등 점점 더 많은 기업이 들어오기로 하면서 유권자층도 변하고 있다”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전통적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민주당은 1980년 이후 대선에서 2008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2008년에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지만,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0.4%포인트차로 겨우 이겼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오렌지카운티 주택가에 28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팻말이 꽂혀 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 바람’이 불고 있다. ‘제2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esearch Triangle Park·RTP)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당 성향이 짙은 고학력·젊은 유권자들이 늘면서 공화당의 압도적 우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초박빙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선 레이스에서 로빈슨의 발언마저 확산하면서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트럼프가 지난 25일과 21일 연거푸 노스캐롤라이나를 찾은 것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UNC에서 만난 젊은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의 투표 기준으로 여성의 재생산권 등 인권 문제, 트럼프에 대한 반감 등을 주로 언급했다. 생애 첫 투표를 하는 리암(18)은 “여성의 재생산 등 개인의 자유와 권리 측면에서 해리스에게 더 마음이 기울고 있다”며 “젊은 유권자들은 여성 인권문제, 팔레스타인 전쟁 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트럼프에게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공화당엔 어차피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크 로빈슨의 발언은 무당층이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여성 대학생은 낙태권 등을 언급하며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을 좋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며 “솔직히 트럼프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삼각형 모양의 RTP를 중심으로 UNC가 있는 오렌지카운티, 듀크대가 있는 더럼카운티 등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은 노스캐롤라이나를 트럼프에게 내줬지만, 이 지역에서만큼은 각각 74.8%, 80.4%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냈다. 이 지역에서는 갑작스럽게 후보가 된 해리스를 향해서도 기대가 컸다.

UNC 인근에서 만난 데이비드 앤드루스(48)는 “해리스는 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안정을 상징하지만 트럼프는 불안정한 사람”이라며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대법원에 합리적인 판사들이 임명될 것이다. 기업의 이윤보다 개인의 권리를 더 보호하는 이들이 법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등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인기가 없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인플레이션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물가가 올랐다는 것을 알고 있고, 높은 물가로 고통받는 이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퍼슨카운티 록스보로의 공화당 사무실에 28일(현지시간)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상품들이 놓여 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인 대학도시들은 공화당 우위인 농촌 지역에 포위된 ‘섬’과 같다. 대학도시들과 주도인 롤리, 샬럿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노스캐롤라이나 대부분 지역에서 트럼프 지지가 압도적이다. 2020년 대선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부분 농촌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5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을 기록했다.

대학 도시들을 조금만 벗어나자 여론도 확연히 달라졌다. 시골에서는 무엇보다 경제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렌지카운티와 경계를 맞댄 퍼슨카운티의 록스보로에서 만난 알렉스(40)는 해리스를 겨냥해 “3년 반 동안 자기가 망친 것을 이제서야 고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제가 제일 문제다. 휘발유 가격이 지붕을 뚫었다. 갤런당 1.9달러 하던 것이 거의 4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며 “휘발유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전략 비축유를 고갈시키고 있는데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에게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가 어떻게 돼 왔는지만 살펴본다면, 상식적으로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록스보로에서 만난 또 다른 백인 남성도 “경제가 최우선 순위다. 지난 4년간 모든 것이 미친 듯 가격이 올랐다”며 “바이든 시절 내내 경제는 끔찍했다. 나는 건설 관련 회사를 운영 중인데 지난 3년간 단 한 푼도 모으질 못했다”고 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퍼슨카운티 록스보로에 있는 공화당 사무실에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이 놓여 있다.


선거가 초박빙으로 흘러가자 공화당원들도 조기 투표를 독려하며 텃밭 사수에 나섰다. 공화당 퍼슨카운티 지부의 책임자인 피제이 젠트리는 “공화당원들은 전통적으로 사전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며 “투표에 참여하고 싶지만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기 싫은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법으로 투표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선거는 국가에 관한 문제”라며 “트럼프는 경제적으로나 세계 무대에서나 우리를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올려놓은 실적이 있다”고 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마크 로빈슨의 설화와 관련해서도 “언론이 지금 와서 터트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트럼프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트럼프가 로빈슨에 대해 “마틴 루터 킹보다 낫다”고 말하며 지지하는 영상을 담은 새 TV광고를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에 내보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를 강타한 허리케인 ‘헐린’의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돌발 변수다. 헐린의 직격탄을 맞은 노스캐롤라이나 서부 지역은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트럼프는 허리케인 피해가 큰 노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소속 로이 쿠퍼 주지사가 공화당 우세 지역을 돕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근거 없이 내놓으며 선거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피해 복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를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대학도시의 지지를 발판으로 대역전을 노리는 해리스, 농촌의 힘으로 텃밭을 지키려는 트럼프의 대결로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현지에서는 “결국 지난 4년간 유권자 인구구조의 변화가 판세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채플힐(노스캐롤라이나)=글 ·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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