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딸은 피해자 될까, 아들은 가해자 될까 두려운 엄마입니다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도 가평,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임은희 기자]
이상할 만큼 너무 조용하다
최근 벌어진 딥페이크에 관한 기사를 보고 서둘러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검색해봤다. 인근에 피해 추정 학교가 있었다.
▲ JTBC 뉴스에 보도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 사이트' 관련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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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제 어떤 아이가 자기 학교도 있다면서, 자기 학교 학생회 친구들이 퍼트리는 것 같다고 조사해 달라는 글을 봤어요. 댓글이라 사실인지 판단이 어렵긴 한데, 상황이 진짜 심각한 데 반해서 너무 조용하네요. ㅠ.ㅠ" (초3 남학생의 부모)
반면 고학년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많은 단톡방에는 적막이 흘렀다. 관련 피드로 뜨거운 SNS나 인터넷 뉴스 댓글창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 서울경찰청과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긴급 스쿨벨 24-2호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과 신고 및 예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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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범죄는 단기간에 드러나는 형태의 신체적, 금전적 피해를 남기진 않았지만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혼자 자기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건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어느 정치인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관련 기사: "예술작품"? 딥페이크 망언 의원 5인방, 지금은... https://omn.kr/2a0lv ).
그렇게 법망을 빠져나간 '성착취물을 즐기던 이들'은 이후엔 무엇을 즐겼을지 모를 일이다. 2015년 소라넷, 2018년 웹하드 카르텔, 2020년의 N번방... 그리고 2024년에는 이게 '딥페이크 합성'이 돼 돌아왔다.
그 결과 수많은 여성, 그것도 청소년들이 주로 고통받는 게 현실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처벌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어쩐지 딥페이크 성범죄가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딥페이크를 즐겼던 사람들은 앞으로 또 무엇을 즐길까 싶어 두렵다.
아들과 딸을 키우는 엄마는 불안하다
2013년에 태어난 딸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4년 뒤엔 중학교 3학년이 된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그때는 또 어떤 기술이 발달해 어떤 형태의 성범죄가 나타날지 두렵기만 하다. 4년 후에도 어떤 사람들은 올바른 이성 교제를 하는 대신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성범죄를 즐기지 않을까 싶어 불안하다.
성범죄의 형태는 이렇듯 빠르게 진화하는데, 익명 온라인 유저들은 노골적으로 피해자를 탓한다.
'옷차림, 여자들이 레깅스를 입은 게 문제다.'
'그러게 누가 그러래? 자기 사진을 함부로 SNS에 올린 여자들이 문제다.'
도심에서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도 짧고 착 달라붙는 레깅스를 착용하지만 모두 성범죄 피해자가 되진 않는다. 더구나, 손가락질은 애초에 범죄자를 향해야 맞지 않나.
▲ '성평등 퇴행시킨 정부가 공범이다', 지난 6일 오후 보신각 앞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아웃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집회에 참여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
ⓒ 연합뉴스 |
지난 6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방송됐듯,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어 놓고도 '저희 애 수능 시험을 봐야 한다'던 가해자 아버지, 피해자는 안중에 없는 부모 모습이 무섭다. 딥페이크 범죄를 그저 남의 일인 양 여기는 무관심이 속상하다. 딸은 피해자가 될까 두렵고, 아들은 가해자가 될까 두려운 게 요즘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 가정통신문 내용으로 온 내용 화면 캡처. 딥페이크 범죄 피해를 예방하고 주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 화면갈무리 |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이대로라면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SNS를 보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탈을 쓴 채 남을 비난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해에 공모하거나 침묵하는 자가 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학교는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에 힘을 써야 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디지털 윤리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인성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의 얼굴을 마음대로 촬영하지 말라든가 여성들이 피해를 조심하라(대체 어떻게 조심할 수 있는가?)는 단편적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본다. '나는 이 기술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22만 명에 달한다는 딥페이크 음란물 시청자들은, 어딘가 있는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면 옆집 청년일지 모르겠다. 처벌에만 집중하면 이들은 조용히 숨어버렸다가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누가 가해자인지 몰라 불안에 떠는 사회가 아닌,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가해할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시민 교육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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