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돌 깎으며 산 저... 벼루가 제 삶을 바꿨습니다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는 우리 조상의 유·무형 전통예술문화를 유지·발전시키고 명인들이 쌓아온 가치를 사회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전국에 약 400명의 명인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중 충청지회 명인은 21인이다. 이 연재는 충청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명인 21인의 인터뷰다.
그들의 지난했던 삶을 조명함으로써 미래를 잇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개한다. 벼루제박 분야 김일환 명인을 지난 20일 만났다. <기자말>
[최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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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루 제작 분야 김일환 명인 |
| ⓒ 최차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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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환 명인 작품 '화초연 벼루' |
| ⓒ 김일환 |
품질이 우수한 백운석은 일제 시절 충남 보령의 광산을 전량 탈취하면서 맥이 끊긴 데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갱이 허물어져 더 이상 채굴을 하지 못했습니다.
석공이 전통 벼루제작에 들어서기까지
저는 돌이 유명한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달리 손재주가 좋아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돌을 만지는 석공 일을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중에는 남다른 석공 실력으로 5층 '호국연무석탑'을 세워 2군 사령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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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루를 제작하는 김일환 명인 |
| ⓒ 김일환 |
1983년도부터는 수시로 백운석과 화초연 벼루 등을 보자기에 싸 들고, 열차와 버스로 무형문화재 벼루장 고(故) 이창호 스승님을 찾아가 문헌고증을 토대로 벼루제작 방법, 돌 고르는 방법 등을 8년 동안 지도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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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하는 모습의 김일환 명인 |
| ⓒ 김일환 |
벼루장 중요무형문화재 94호 고(故) 구봉 이창호 선생님께 벼루를 제작할 수 있도록 사사 받아, 우리의 전통 문양을 활용해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잘 드러나게 조각을 덧붙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독창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벼루로 국전 공예부문 입선과, 88올림픽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입선하는 등 다양한 수상 실적을 쌓기도 했습니다.
또한 각종 전시회를 통해 발표했던 십장생벼루, 연잎벼루, 백제의 한 등 다양한 작품은 '깊고도 아름다운 정을 품고 있다' 하여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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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환 명인의 작품 '성주산 단엽' |
| ⓒ 김일환 |
제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신념은, 고(故) 구봉 이창호 선생님으로부터의 '돌을 깎는 기술보다 돌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라는 깨우침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석질을 알고 물을 참아낼 줄 알며, 먹을 곱게 갈아줄 수 있는 돌을 찾는 것이 벼루를 만드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다운 벼루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이 진가를 알 수 있는 벼루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백운석을 찾아 나선 것 역시 이러한 돌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유구의 기록을 나침반 삼아 수십 년 동안 성주산 일대를 탐석하는 과정에서, 1996년 마침내 벼루 연구가 한길수 씨와 강점기 석갱이 도굴되어 맥이 끊어진 백운석의 석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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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환 명인이 제작한 벼루 |
| ⓒ 김일환 |
기록과 문헌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좋은 벼루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먼저 벼루 바닥에 먹을 갈았을 때 부드럽고 곱게 갈려야 하며, 글씨가 부드럽게 써 내려져야 하고, 먹물의 색상이 검고 윤택해야 합니다. 또, 바닥 면이 너무 빨리 닳으면 안 되고, 닳더라도 먹을 가는 데 변함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먹물이 잘 마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포연은 수분 흡수율이 대체로 낮은 편이나 자석벼루보다는 높아 먹물을 소량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먹물이 쉽게 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단하면서 치밀하고 마모 강도가 높아 쉽게 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벼룻돌 자체가 암흑색이기 때문에 먹물의 색상이 짙은 흑색을 띱니다. 먹이 곱게 갈려 글씨가 부드럽게 써내려 집니다. 남포석 벼루에서 먹을 갈 때, 잘 갈리고 발묵이 좋은 것은 바닥 면의 봉망이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포석은 높은 강도를 지녀 가공하기는 어려우나 벼루가 갖추어야 할 발묵성, 흡수성, 내구성 등의 조건을 모두 갖추어 최상의 벼루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먹물의 발색과 발묵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먹이 중요한데, 먹 중에서도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먹이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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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주산 왕대나무화석 |
| ⓒ 김일환 |
서유구의 말대로 제일 좋은 벼루 원석은 금사문석입니다. 이는 검은색의 암석에 금색 광택을 보이는 미세한 입자의 돌로 원석을 떼어낼 때 보면 비석을 만드는 오석 검은색 돌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망치로 때려 보면 조개 모양으로 나가기 때문에 벼루 모양을 잡아 나가기가 매우 어려워, 벼루 한 점 만드는 데 수개월이나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은사문석은 광물의 일종인 흑운모로 은색 광택의 미세한 입자가 있는 돌로, 강도와 밀도와 봉망이 강하고 일정하며 차지고 단단합니다. 금사문석에 비해 이물질이 많을 뿐만 아니라, 벼루에 적합하지 않은 텅스텐, 철분, 구리 등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기가 꽃과 같아 원석 자체만으로도 탐나는 화초석은 검은색 혹은 짙은 회청색 돌에 눈이 날리는 듯한 노란색 무늬가 가득 박힌 돌입니다. 매화꽃이 핀 듯 하는가 하면, 댓잎처럼 생긴 무늬가 박혀 있는 것도 있고, 밤하늘에 은하수가 떠 있는 것처럼 무늬가 피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연마하였을 때 손에 오는 감촉이 젖살 오른 아기의 살결만큼이나 부드러워, 곁에 두고 오래오래 완상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흠이 있다면 석안(眼 돌의 눈, 벼루 바닥의 작고 껄끄러운 흠집)이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지렁이의 화석으로 이것이 연당(堂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에 있으면 먹을 갈 때 먹이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석안을 피해 연당을 제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제가 화초석뿐만 아니라, 금사연석, 은사연석까지 발견하여 벼루를 제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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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환 명인이 제작한 벼루 |
| ⓒ 김일환 |
세계로 뻗어 나가 질 좋은 벼루를 바라며, 단절되어가는 벼루업계에 전승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소명을 띄고 살아온 외길 인생.
까만 먼지 속 저의 손끝에서 탄생 된 연 모양의 벼루와 탈 모양의 벼루, 연잎 모양의 벼루, 매화와 꿈틀대는 용 모양의 벼루 등은 숱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과거 유명했던 벼루가 연필과 펜 등 필기구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서예가나 한국화 화가들은 여전히 벼루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벼루를 완상(玩賞)하기 위해 수집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벼루는 다른 공예품에 비해 재료의 중요성이 매우 큰바, 재료가 있는 곳을 알아서 채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 기계를 사용하여 만들면 시간이 절약되고 힘도 덜 들지만 저는 여전히 전통으로 내려온 기법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의 자존심이랄까, 아니면 벼루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 여전히 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벼루의 고장 보령 웅천에서 유일하게 문헌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백운석 벼루를 제작·계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투데이와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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