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삶이 더 의미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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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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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광장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으로, 내가 살던 집에서도 10분정도의 거리였다. |
| ⓒ 길은영 |
이 문장을 실감하게 된 건, 피아노가 아닌 부엌에서였다.
2013년, 나는 유럽 에스토니아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 1년은 에스토니아인, 러시아인, 독일인과 함께 4명이 생활하는 투룸 구조의 공간에서 지냈다. 부엌은 있었지만 요리를 해 먹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나 또한 요리에 대해선 무지했다. 냄비밥은 종종 죽이 되었고, 요리 대신 오이나 당근을 생으로 잘라 먹었다. 말 그대로 '생존형 생식'이었다.
하지만 1년 후 학교 근처의 빌라로 이사하면서 요리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한국의 친구에게 영상통화로 조언을 받아 애호박볶음을 만들어 먹던 날이 기억난다. 새우젓이 없으니 소금으로 대신했고, 지금은 금방 만드는 그 반찬이 그땐 30분이나 걸렸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마트에 자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에스토니아어 식재료 명칭도 익혀졌다. 요리를 배우면서 언어도 배우고, 자립심도 자랐다.
사실 내가 요리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피자, 파스타, 감자요리는 며칠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밥이, 국이, 겉절이가 그리워졌다. 그건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먹고 싶은 걸 누가 해줄 수 없으니, 결국 내가 해야 했다. 그렇게 한 숟가락씩, 나는 내 삶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2015년쯤이었나. 당시 한국에서는 tvN <집밥 백선생>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매주 하나의 재료로 다양한 집밥 요리를 보여주는 형식이었는데, 요리를 거의 해본 적 없던 나 같은 사람에겐 정말 유용한 입문서였다. 방송 다음 날이면 마트에 재료가 동날 정도로 인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외국에 있었기에 필요한 재료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매주 새로운 요리를 따라 하며 점점 자신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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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토니아 자취생의 집밥 실험실 유학 시절, 그리운 한국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김치부터 순대볶음까지, 이제 못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다. |
| ⓒ 길은 |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성인 대상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을 만나면서, 나는 또 한 번 성장 중이다. 처음엔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운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운영해보니 '생기초반'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피아노를 배운 지 20년이 넘은 나에게, 왕초보자를 가르친다는 건 꽤 큰 도전이었다.
"손목 힘을 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음표를 기억한다는 게 이렇게 낯설 수 있구나." 수강생들의 질문은 늘 새롭고, 나는 그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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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성장하는 시간 처음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다던 수강생들이, 차근차근 건반에 익숙해지고 있다. 나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더 깊이 가르치는 법을 배워간다. |
| ⓒ 길은영 |
만약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요리를 배우기보단 시켜먹는 데 더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수강생이 처음부터 잘했다면, 나는 가르치는 방법을 지금처럼 터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편함과 서툶을 동력삼아, 오늘도 나는 성장한다.
덧붙이는 글 | 요리를 시작한 건 생존 때문이었고, 가르치기 시작한 건 생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작점에서 ‘부족함’은 늘 저를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결핍은 불편하지만, 더 나은 나로 가는 에너지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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