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랏돈이 '달러'로 바뀐다면…벼랑끝 아르헨티나
아르헨 국민, 이미 자국 화폐 신뢰 잃어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현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대표 공약인 '달러 도입'이 주목받고 있다. 가치 폭락을 거듭하는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폐기하고 달러를 국가 공식 통화로 삼겠다는 정책이다.
한 나라의 통화를 갑자기 달러로 대체할 수 있을까? 또, 아르헨티나에서 페소 대신 달러를 사용하면 국가 경제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달러화(Dollarization), 아르헨에 '짧은 안정' 가져다줄 수도
아르헨티나가 페소화를 폐기하고 달러화를 공식 화폐로 쓰면, 다음 수순은 중앙은행의 폐지가 될 것이다. 화폐 발행 및 통화량 조정이라는 중앙은행의 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전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로화라는 통합 화폐를 도입한 유로존 각 회원국도 기존 중앙은행의 역할은 유럽중앙은행(ECB)에 흡수된 상태다.
또 달러화(Dollarization, 미국 외 국가에서 달러로 통화 대체를 하는 현상)는 아르헨티나의 거시 경제에 단기적인 안정성을 줄 가능성도 있다. 페소는 최근 가치를 95% 이상 상실했고, 이에 따른 수입 물가 폭등으로 아르헨티나는 누적 138%의 인플레이션을 기록 중이다. 반면 달러의 가치는 훨씬 안정적이다.
달러 도입 시 아르헨티나가 받게 될 가장 명확한 혜택은 금리일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달러화 지지자인 경제학자 니콜라스 카차노스키가 최근 강연에서 설명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 은행 시스템의 모든 예금이 달러화되면, 아르헨티나의 금리는 달러 시장 금리에 따라 좌우된다. 반면 현재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133%다. 금리가 세 자릿수대에서 한 자릿수대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만으로도 아르헨티나의 은행 시스템은 지금보다 훨씬 안정화될 수 있다.
그 대가는 사상 초유의 통화 주권 포기
그러나 달러화가 반드시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사실상 100% 통화 대체를 하게 되는 만큼, 아르헨티나는 앞으로 자국 거시 경제 정책을 스스로 설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통화 정책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국가가 된다는 뜻이다.
미 연방준비기금(Fed)의 통화 정책은 어디까지나 미국, 그리고 미국의 거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선진국과 연계해 결정된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남미의 아르헨티나를 고려해 미국 기준금리를 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아르헨티나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를 겪게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최근 영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의 달러화 계획에 대해 "중앙은행이 페소화와 함께 사라지면 사실상 최후 대출 기관(Lender of last resort)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디폴트 과정을 훨씬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달러화, 정치인의 선택 아닌 '실패의 결과'
다만, 아르헨티나의 달러화는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현지 통계청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외국 은행 계좌, 안전 금고, 미신고된 현금 등의 형태로 보유한 달러는 2460억달러(약 316조원)로, 2021년 기준 국가총생산(GDP)인 4870억달러(약 625조원)의 50%를 넘는다.
즉 거듭된 페소화의 폭락 때문에 자국 화폐에 신뢰를 잃은 시민들이 스스로 달러를 '비공식적 화폐'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통화 위기를 겪는 국가들에서 자주 보이며, '달러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베네수엘라, 북한도 달러화를 겪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자국 화폐를 사용하는 대신 암시장에서 달러와 교환한다. 북한에서도 주민들은 북한 원화가 아닌 달러를 훨씬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밀레이 당선자가 페소를 달러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미 아르헨티나의 암시장에선 달러 거래가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또 아르헨티나의 '비공식적 달러 사용국화(化)'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달러화는 국가의 선택이 아닌,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이 실패하면서 나타나는 결과에 더 가깝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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