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부부 클리닉은 없나요[탱고에 바나나]
지난 주말 남편과 탱고 대회에 나갔다. 나는 27살 때 취미로 배우던 탱고를 추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도 당시 회사 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탱고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지금도 그때도 변함없이 우리 둘은 취미로 탱고를 추고 있지만, 지난 6년 동안 크고 작은 탱고 대회에도 출전하고, 발표회도 하고, 공연도 했다. 이렇게 지냈는데도 다른 탱고 커플들에 비하면 우리 둘의 열정은 여전히 너무도 작아 보인다.
부부끼리 탱고를 추다 보면 생각보다 다툴 일이 많다. 우리 부부는 평상시에는 거의 싸울 일이 없는데, 이상하게 탱고만 추면 눈을 흘기고 난리가 난다. 남편은 눈 흘기는 내가 이제 익숙해진 건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남편이 얄밉다. 어쩐지 피드백이라는 명분으로 선생님처럼 굴기 때문이다. 남편은 피드백도 못하면 그게 파트너십이냐고 항변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방식보다 배우고 싶은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 선생님의 방식을 통해 자기 춤을 수정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것 같다.
처음부터 남편의 피드백을 안 들었던 건 아니다. 남편은 *피봇(pivot) 동작을 할 땐 ‘바닥을 꾸욱 눌러서 힘있게’ 돌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는데,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댄서 가스톤과 그의 파트너가 왔을 땐 피봇 동작을 할 때면 ‘발에 힘을 빼고 가볍게’ 돌아야 한다고 했다. 히로(giro) 동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히로는 남자가 중심에 있고, 여자가 남자 주변을 원형 모양으로 도는 동작이다. 이때도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의 팔을 여자가 힘있게 돌려줘야 한다는 거였는데, 이것도 선생님들마다 이야기하는 바가 달라서 결국 모두 스타일의 차이였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제안이 남편의 스타일에 맞추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탱고가 워낙 디테일도 다양하고, 어려운 춤이기도 해서 탱고를 배우는 과정이 모두 각자의 신체에 맞는, 자기만의 춤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은데 어째서 남편 말을 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파트너십이라는 게 같이 맞춰 가는 과정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항상 일리가 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불이 나버린다. 한두 번 다투는 일이 반복되니 평화주의자 남편은 이렇게 다툴 바에는 탱고 연습을 안 하는 게 우리 둘의 관계를 위해 훨씬 더 좋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안타깝게도 탱고 연습리스 부부가 되고 말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대회를 나가네 마네, 다른 파트너를 구하네 마네 하다가 신청 마감 몇 시간 전에 선수 등록을 했다. 대회 열흘 전에 내린 결정이니 수업을 들었을 리가 만무하다. 연습도 총 3번밖에 하지 못했다. 남편은 종종 나를 보케이노(보배+볼케이노)라고 부르곤 하는데, 보케이노의 마그마가 이글거리기 시작하면 남편은 가차 없이 연습을 중단했다. 덕분에 우린 탱고 연습을 하면서 싸울 일이 없다. 동시에 실력이 늘 일도 없다. 도대체 탱고판에 수많은 댄서 커플들은 어떻게 그렇게 싸우면서도 연습하는 걸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커플들의 후기만 보더라도 ‘이제 좀 그만 싸우려나’, ‘아무래도 파트너의 잔소리는 참기가 어렵다’, ‘뒤에서 파트너의 샤우팅이 들렸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 위로가 되면서도, 도대체 이렇게까지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게 탱고라면, 왜 탱고판에는 부부 클리닉 혹은 파트너 클리닉 같은 게 없는 걸까 싶은 것이다. 훌륭한 탱고 선생님들도 우리처럼 자주 다툴까 궁금하다가 예전에 세계 챔피온 부부가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화산 폭발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연습을 하거나 혹은 안 싸우는 대신 연습도 같이 포기해 탱고 부진아가 되는 방법. 정말 이렇게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 걸까 고개가 갸우뚱한다.
돌이켜 보면, 남편과 내가 사귀기 전에 파트너로 같이 발표회를 준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도 싸우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말도 예쁘게 하고 성실한 이 남자가 내 영혼의 파트너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남편은 우리 둘이 연습하는 모습을 성심성의껏 영상으로 남긴 뒤, 우리가 본따서 배우고 싶은 댄서들의 춤과 비교해서 코멘트를 길게 메모해서 노트 파일을 넘겨줬다. ‘보폭이 몇 센티가 부족하며, 몸을 돌리는 각도가 몇 도 부족하다’처럼 구체적인 수치와 방향을 분석해서 말이다. 그 스마트함에 반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눈에 보이는 정리본 덕분에 나보다 탱고 경력이 짧은 그의 말을 그대로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심 축이 삐뚤다, 코어 힘이 부족하다, 저 댄서는 꾸밈 동작이 화려하고 예쁜데’ 등으로 말하니까 수긍도 안 되고 기분만 상한다. 예전처럼 ‘중심 축이 15센티 벗어났다, 플랭크 10분 할 정도로 코어 힘을 길러라, 잘게 쪼개는 박자가 나올 때 꾸밈 동작을 넣어줘라‘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면 좋겠다. 그것도 구두로 전달하면 나도 모르게 다시 보케이노로 변신하니까, 예전처럼 예쁘고 성실한 글로 적어서 주면 좋겠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 남편도 코어 힘이 부족하니까 이왕이면 자기가 집에서 매일 플랭크든 요가든 하면서 나를 감화시켜 주었으면 좋겠는 것이다.
아무래도 탱고 파트너십에서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 ‘서로의 춤을 충분히 믿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각자 추구하는 춤의 모양새를 정확하게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감정적으로 변한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유가 탱고 파트너십을 깊은 어둠의 땅속까지 끌고 갈 수 있겠지만 우선 이 정도를 해결하면, 갈등의 빈도를 훨씬 줄일 수 있을 듯하다.
사실 남편과 나는 지난 주말에 있었던 탱고 대회 KTC(Korea Tango Championship)보다 더 큰 대회인 PTC(Pacific Tango Championship)에 나갈 예정이다. 그러니까 다시 탱고 대회에서 부진아가 되지 않으려면 연습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먼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연습을 할 수 없을 테고, 탱고 대회를 나가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연습할 계기를 만드는 것에 있으니 말이다. 혼자 고민해 본 바는 이렇다.
우선, 서로의 춤을 존중한다.
내가 나의 신체에 맞는 춤을 밀롱가에서 춰왔던 것처럼 상대도 그 자신에 맞는 방식으로 춤을 추고 있을 테니 이 순간만큼은 낯선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오랜 연인으로 지낸 경우,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 같기도 하다. 연인 관계에서도 5+1의 비율, 즉 긍정적인 피드백 5개에 부정적인 언어 1개 정도의 비율이 적당하다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 1개의 부정 피드백을 주려면, 5개의 칭찬을 해보자. 예를 들면, "보배는 유연하고 날쌔서 좋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메트로놈 켜놓고 박자 연습 좀 해보자"처럼 말이다.
그리고, 각자 추구하는 춤의 모양새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우선 자기가 추구하는 춤의 방향을 명확하게 아는 게 선행되어야 할 듯하다. 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도 같으니 좋아하는 댄서들의 영상을 그때그때 공유하고 좋아하는 점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는 게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댄서들이 즐겨 하는 운동을 똑같이 시도해보는 것도 좋고 말이다. 세계적인 댄서들 중에는 요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발레리나도 많다. 같이 요가도 하고, 발레도 배우면서 탱고 수다를 실컷 떠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소통의 방식이다.
내가 가장 잘 못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피드백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우선 ‘환대’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도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가 결국에는 자기 주체성을 만드는 방식이 된다고 했다. 나는 환대는커녕 시도 때도 없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남편을 노려보니까 될 것도 안 되는 것 같다. 내 세계가 넓어지려면 다른 세계의 이야기도 수용해야 하니까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헤겔도 정반합을 말하지 않았나. 새삼 철학자들이 탱고 췄으면 탱고판의 파트너십 클리닉을 담당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공공연하게 탱고 반성문을 쓴 것 같아 부끄럽지만 할 수 없다. 대회가 끝나고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 이것뿐이라 그렇다. 이렇게 폭풍 같은 갈등이 있는데, 왜 부부가 같이 탱고 대회를 나가느냐고 물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무언가를 해나가고, 배워 나가는 과정이 좋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밀롱가에 가서 평소처럼 춤을 추고, 소셜 댄스를 즐기는 방식도 있지만, 대회 참여는 탱고의 또 다른 색깔을 경험하는 것이니 말이다.
예술 영역에 심사 기준을 만들어 점수를 매기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안다. 하지만 나로서는 무지개 같은 탱고의 여러 색깔을 이맛저맛 볼 수 있는 것 같아 대회에 참여하는 게 참 좋다. 내가 만난 탱고에는 빨주노초파남보처럼 ‘예술, 인생, 스포츠, 사랑’ 등의 층위가 있는데, 또 다른 색감의 탱고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도전해보고 싶다.
* 피봇(pivot): 발볼로 바닥을 비비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동작
* 글쓴이 - 보배
탱고 베이비에서 탱린이로 변신 중. 10년 정도 추면 튜토리얼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sele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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