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 과학실'에 1120억 투입, 과학교사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송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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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 |
| ⓒ 연합뉴스 |
과학 교사의 입장에서 과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 자체는 분명 반갑다. 과학은 교과서로만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면서 이해하고 체득하는 교과목이다. 실험 환경과 탐구 여건이 갖춰질수록 수업의 밀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노후한 과학실을 사용하는 학교에서는 이런 지원이 체감도 높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미 5903개 학교에 구축된 사업, 무엇이 달라졌나
그런데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면,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지능형 과학실 사업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정책이다. 2016년 모델 개발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본격 구축이 이루어졌고, 2025년 기준 5903개 학교에 이미 설치가 완료된 상태다. 이 정도면 시범사업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확산되어 정착된 사업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디지털 기반 과학수업이 확대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교과서 실험이 바뀌고, 디지털 센서와 스마트 기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탐구가 강조되고 있다. 시도교육청 차원에서도 MBL(마이크로컴퓨터 기반 실험) 자료나 연수 등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라는 이름을 붙이고 112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방향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AI 기반 탐구, 데이터 중심 실험, 온·오프라인 연계 수업. 모두 기존 사업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온 내용이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얼마나 다른지는 조금 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업의 총 예산은 약 1120억 원이다. 단일 교육사업으로도 상당한 규모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정 투입이 이루어질 경우, 단순한 만족도 수준을 넘어 보다 정교한 효과 검증이 필요하다. 교육부 지원계획 주요 성과에 따르면 지능형 과학실에 대한 만족도는 교사 97.4점, 학생 91.2점으로 나타났고, 과학 긍정 경험 지수 역시 상승한 것으로 보고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사업처럼 보인다.
다만 여기서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족도는 정책에 대한 호감도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 수업의 실제 변화를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장비가 얼마나 자주 활용되는지, 교사의 수업 방식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바뀌었는지, 학생들이 탐구를 통해 무엇을 새롭게 경험했는지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교육적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장비 중심 투자 구조, 수업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가
예산 구조를 보면 이 사업이 어디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도 드러난다. 신규 구축의 경우 시설비, 비품구입비, 기타자산취득비, 교육운영비를 합쳐 총 예산의 80% 이상을 편성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는 사업이 구조적으로 '구축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구조상 '구축'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의 변화는 훨씬 더 느리고,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그래서 조금 다르다. 새로운 장비가 들어왔지만 활용 방법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교사의 준비 부담만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부 장비는 생각보다 자주 쓰이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갖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다. 과학수업의 변화는 공간이 아니라 수업 설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과학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센서를 활용한 실험은 기기 연결과 설정, 데이터 처리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고, 장비 관리와 안전 문제도 뒤따른다. 예를 들어 무선 온도 센서를 활용한 간단한 실험도 여러 학급을 반복하다 보면 충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압력 센서를 활용한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조작 미숙으로 장비가 물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30명 가까운 학생들이 동시에 기기를 다루는 상황에서는 작은 실수가 곧 장비 손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교사는 점점 장비 활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활용 자체에 소극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일정 규모의 예산으로 장비를 구축하고도 일부 기자재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채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많은 교사들의 설명이다. 교사는 활용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이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실 운영을 지원할 인력이나 수업 연구를 위한 시간, 행정 부담 완화 없이 장비만 추가되는 구조에서는 교사의 부담만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향은 학술적으로도 이미 제시된 바 있다. 홍옥수 외(2022)는 지능형 과학실을 "지능정보기술을 적용한 온·오프라인 연계 과학수업 공간으로서,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 참여 중심의 탐구가 이루어지는 환경"으로 정의한다. 즉, 지능형 과학실의 핵심은 공간이나 장비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탐구와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이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책은 이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학교가 원하는 지원인가, 정책이 설계한 방향인가
또한 현장에서 혼란을 키우는 요인은 지원 규모의 변화다. 지능형 과학실은 구축 시기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다르게 책정되어 왔다. 2022년, 2023년, 2024년으로 이어지면서 학교별 지원 규모가 점차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되었고,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은 연구회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학교의 시설을 직접 보고 장비를 비교하며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간다. 어떤 장비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수업에 적용할 의지도 함께 쌓인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지원 금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준비와 기대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지원 규모의 차이는 단순한 금액 문제가 아니라, 학교 간 구축 수준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지능형 과학실'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조건이 형성되면서, 현장에서는 기준의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별 과학실 환경 구축 차이가 남아있는 가운데 추가로 '지능형 과학실+' 사업이 등장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구조가 학교 간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능형 과학실+'가 학교별 신청을 통해 운영되는 방식이라면, 사업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나 교사의 준비 여건, 학교의 관심도에 따라 참여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미 구축 경험과 운영 역량을 갖춘 학교는 추가적인 지원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갖추게 되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결국 이는 단순한 시설 차이를 넘어, 학생들이 경험하는 과학수업의 질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교육과정 안에서도 학교에 따라 전혀 다른 학습 경험이 제공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이제는 '얼마를 썼는가'보다 '무엇이 바뀌었는가'에 주목을
지역에 따라 체감의 차이도 적지 않다. 학교별 지원 규모와 방식이 다르다 보니, 현장에서는 예산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신규 학교는 일정 기간 지원을 받지만, 이후 유지와 운영은 학교 몫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
과학실은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장비는 유지되어야 하고, 수업은 계속 바뀌어야 한다. 연수와 수업 설계 지원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잘 만들어진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신규 학교는 일정 기간 지원을 받지만 이후 유지·운영 부담이 학교로 넘어가는 구조 역시 여전하다.
이제는 '얼마를 썼는가'보다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봐야 한다. 그 공간에서 수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첨단장비를 얼마나 들여왔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장비로 학생들이 어떤 탐구를 경험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만족도 수치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교실 안에서 학습의 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다.
과학교육은 결국 교실에서 완성된다. 이름에 '+'를 붙인다고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변화는 수업 안에서 증명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공간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과학실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은 수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과학교사로서 지능형 과학실 구축과 운영을 직접 경험한 현장의 시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는 2024년 해당 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충남융합과학연구회 회원 교사들과 함께 2022년부터 관련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습니다. 정책의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교실에서의 작동 방식과 수업 변화의 측면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인용한 논문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옥수, 김경미, 이재영, & 김율. (2022). 지능형 과학실의 개념과 특징. 한국과학교육학회지, 17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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