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의 청순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아린이 선택한 첫 장르물 <S라인> 사람들 사이의 욕망이 연결된 ‘붉은 선(S라인)’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현흡’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 작품이다. “다크하고 아픔도 있는 인물이라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라는 아린의 말처럼, 그는 숏컷에 무표정한 얼굴로 한없이 어두운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서울 여의도 웨이브 본사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현흡이를 보내는 게 아쉬울 만큼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웹툰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잖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했고요. 외적인 부분도 디테일하게 의견을 주셨어요. 짧은 머리도, 내추럴한 스타일도 다 감독님의 제안이었죠. 처음엔 과연 나한테 어울릴까 걱정도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니 ‘현흡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아린은 데뷔 후 가장 짧은 머리로 파격 변신했다. 멤버들과 팬들의 반응은 “숏컷도 찰떡”이라는 찬사였다. 하지만 겉모습의 변화보다 더 큰 도전은 ‘감정의 결’을 만드는 일이었다. 현흡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들끼리 연결된 욕망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극 초반엔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 친구는 무언가를 겪기 전까지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한밤중에 선글라스를 끼고 밖에 나갈 정도로요. 그런데 친구 선하(이은샘)를 구하면서 자신의 능력으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죠” 처음으로 현흡이 웃음을 보인 장면에 대해서는 “수영장 장면에서 준선(이광희)이 확 밀었을 때 처음 웃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건 진심이었어요. 정말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냥 너무 순수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던 거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조심스럽게 고민했다. “처음엔 목소리 톤부터 표정까지 기존 제 모습과는 다르게 하려고 했어요. 힘을 빼고, 조금은 무표정하게. 대신 미세한 변화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죠”

<S라인>의 이야기 구조도 아린에게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웹툰과는 흐름이 좀 다르잖아요. 원작은 시작부터 모두가 S라인을 보게 되지만, 드라마는 마지막에야 그렇게 되죠. 그래서 엔딩이 오히려 웹툰의 프리퀄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즌2에 대한 기대를 묻자 그는 웃으며 “저를 불러주신다면, 무조건 가고 싶다”고 답했다.
칸국제시리즈페스티벌에 초청됐던 경험은 아린에게 또 다른 의미의 자극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 처음엔 꿈같았고, 가서도 현지 분들에게 <S라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죠.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달까요”

촬영장에서는 동료들과의 호흡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학교 장면이 많다 보니 또래 배우들과 진짜 교실처럼 재미있게 찍었어요. 특히 은샘이랑은 나이는 같지만 선배이기도 해서 많이 배웠고, 수현 선배님, 다희 선배님도 항상 조언해주시고 배려해 주셨어요”

몸으로 부딪친 장면도 많았다. 와이어 액션과 수중 촬영이 대표적이다. “옥상에서 뒤로 넘어가는 장면은 무서웠지만, 감독님 시안을 보고 ‘이건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수중 신은 미리 수영 연습도 하고, 촬영 때는 모든 스태프가 물에 들어가서 함께해 주셔서 감동이었어요”

앞 동에 이사 온 희원(박예니)이 준 복숭아와 황도 캔이 놓인 식탁에 앉아 복숭아를 베어 문 장면에 대해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따뜻한 감정을 받게 돼요. 그래서 한 입 먹고 눈물이 핑 돌았죠. 평생을 단절 속에서 살았던 현흡이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어느덧 데뷔 10년 차. 오마이걸 멤버로서도, 배우로서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스케줄이 겹치면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무대도, 연기도 정말 좋아해서요. 두 가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의 말처럼 <S라인>은 아린에게 ‘도전의 즐거움’을 알려준 작품이었다. “액션도 해보고 싶고, 형사나 판사 같은 강단 있는 캐릭터도 연기해 보고 싶어요. 현실적인 로맨스도 끌리고요. 새로운 걸 계속하고 싶어요”
팬들의 반응에도 귀를 기울인다. 특히 베드신 같은 도전적인 장면에 대해서는 걱정도 있었지만, “작품상 필요한 장면이었고, 감독님께서도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팬분들이 현흡이로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라며 진심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수식어를 갖고 싶은지 묻자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장르와 캐릭터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 <S라인>의 현흡을 통해 그 변화의 첫발을 디딘 아린은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걸어가고 있다.
글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
사진 · ATR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