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시골선비' 풍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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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일단 정전 상태가 되었다.
3년 동안 전개된 전쟁으로 남북 쌍방에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부상자, 국토의 피폐화를 가져왔고, 남북에 이승만과 김일성의 독재정권이 강화되었으며 민족분단 체제가 더욱 굳혀졌다.
7월 9일(금).명랑하다.
등(燈)에 비친 모양 더욱이 연연하다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하얀 한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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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기자]
@IMG@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일단 정전 상태가 되었다. 3년 동안 전개된 전쟁으로 남북 쌍방에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부상자, 국토의 피폐화를 가져왔고, 남북에 이승만과 김일성의 독재정권이 강화되었으며 민족분단 체제가 더욱 굳혀졌다. 이후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분계선이 되었다.
가람은 서울대학 교수를 사임하고 전북대학 교수와 문과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학교 발전과 인재 양성에 진력했다. 그리고 국문학 연구와 시조의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가람은 전시연합대학에 이어 새로 생긴 전북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으로 전주에 눌러 있게 되었다. 가람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그 인간에 깊이 매료된 것은 오히려 그 때부터였다.
나는 예의 '소박한 시골 선비 같은 풍모'에 이끌려 자주 양사재(養士齋·전주 우거의 당호)를 찾았다. 처마가 나지막하기는 했으나 햇빛이 잘 들어, 가람이 기거하며 손님을 맞기도 하는 들머리방은 무척 밝았다.
뜰도 제법 있어 철 따라 섬돌 밑에서 쪽빛 붓꽃이 피기도 하고, 재래종 황국의 짙은 향기가 온 동네를 진동하기도 했다.
양사재에는 언제나 '제자'들이 득실거렸다. 가 보면 이미 여럿이 모여 있기도 했고, 가서 앉아 있노라면 꾸역꾸역 모여들어 방안이 가득해지기도 했다. (주석 1)
이 시기 전북대학에서 가람에게 직접 배웠던 제자의 기록이다.
이 때의 가람은 중절모자에 한복을 입고 지프로 출퇴근하였다. 교동의 사택으로 서울과 여산에 있던 책도 옮겨 오고, 다시 화초도 가꾸기 시작하였다. 난초도 건란·풍란을 비롯한 몇 종이 서재의 윗목에 놓이게 되었고, 여기에 청매(靑梅)의 화분도 곁들이게 되었다.
또 뜰에는 토관을 사다가 밑을 막고 진흙으로 한 자 반이나 채우고 그 위에는 해감 흙을 예닐곱 치 돋우고 백련(白蓮)을 심어 8월경엔 그 꽃을 보고 즐기기도 하였다.
매화꽃·난초꽃·연꽃이 피면 으레 친구분들과 운무를, 또 제자들을 불러 그 꽃 향기에 젖으며 술 마시기를 즐겼다. 이 사실은 이 무렵의 <가람일기>를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7월 9일(금).
명랑하다. 새벽에 일어나니 웅란(雄蘭) 향이 방렬·청상하다. 소공(素空)·석정(夕汀)을 오라고 하였다.
8월 28일(토).
아침부터 백련화가 만개, 인인(隣人) 최·홍 양씨와 완상(玩賞) 소작(小酌). (주석 2)
가람은 젊어서부터 난초·매화·국화·연꽃을 좋아하여 직접 기르고 시(조)를 지었다. 특히 난초를 아꼈다. 앞에서 소개한 바 있거니와 <난초(4)>의 뒷 부분이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주석 3)
이 대목은 자신의 청절한 모습 그대로이다. 풍진 세파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고결하게 살고자 한 자신의 형상이 아닐까 싶다. @IMG@
매화도 무척 좋아했다.
<매화 - 고목된 야매화를 수년 기르다 얼려 죽이고>이다.
매화
외로 더져 두어 미미히 숨을 지고
따뜻한 봄날 돌아오기 기다리고
음음한 눈얼음 속에 잠을 자던 그 매화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
곧고 급한 성결 그 애를 못 석이고
맺었던 봉오리 하나 피도 못한 그 매화
다가오는 추위 천지를 다 얼려도
찾아드는 볕은 방으로 하나 차다
어느 뉘(世) 다시 봉오리 자취 읽은 그 매화. (주석 4)
수선화도 그의 곁을 지키는 꽃이었다.
수선화
풍지(風紙)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 하나 무릎 앞에 놓아 두고
그 위엔 한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
투술한 전복껍질 발 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볕을 지고 누워 있는 해형수선(蟹形水仙)
서리고 잠드는 일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燈)에 비친 모양 더욱이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얀 한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주석 5)
주석
1> 장순하, 앞의 책, 27쪽.
2> 최승범, 앞의 책, 62쪽.
3> <가람 시조선>, 31쪽.
4> 앞의 책, 32쪽.
5> 앞의 책, 3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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