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완충지대 사라진 한반도

한반도 안보 환경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이란의 대치 상황을 주시하며, ‘강대강’ 정면 돌파를 체제 생존의 유일한 길로 판단한 듯하다. 핵보유국 지위 확보와 함께 한국을 향해 노골적 핵 위협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동의 혼란을 틈타 한반도 내 긴장 수위를 높여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이며, 미국의 시선이 중동에 쏠린 틈을 타 전략적 도발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계산도 내포돼 있다.
이러한 김정은의 계산과 의도는 지난 2월의 노동당 9차 당대회 결정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상 당의 결정은 곧 국가의 결정이다. 김정은은 이번 당대회에서 완전한 친정 체제 구축과 ‘자력갱생’ 및 ‘핵보유국 지위의 불가역성’을 재확인했다. 이는 내부 결속과 동시에 외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재천명이다. 특히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염두에 둔 ‘남부 국경선 요새화’와 군 통제 구조의 재편을 통해 남북 관계를 국제법적 적대 국가 관계로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절연’도 선언했다.
이에 대한 헌법적 명문화 시도가 얼마 전에 끝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다. 아직 개정 조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아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평화통일’ ‘북반구’ ‘삼천리강산’ 등 남북 간 민족적 유대감의 상징 표현 삭제를 통해서 한국을 ‘타국’이자 ‘주적’으로 규정해 통일 논의 자체의 차단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을 무력으로 점령해야 할 ‘제1의 주적’으로 간주한 것이지만, 대남 정책의 유연성을 스스로 제거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내부 결속을 위한 사상적 방어막 구축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한국을 통한 정보 유입과 체제 흔들기를 원천 차단하여 내부의 동요를 막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미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 ‘청년 교양 보장법’ ‘평양 문화어 보호법’ 등 한류(韓流) 차단 3대 악법을 제정한 북한이 한국을 ‘가장 나쁜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남한에 대한 적대감 고취를 통해 체제 결속력을 다지려는 시도다. ‘통일’ 기대감 차단과 체제 수호가 초점이겠지만, 80년에 걸친 통일 담론의 종언이며 남북 관계의 기존 틀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으로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자의적 ‘해상 국경선’도 헌법에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서해 NLL 일대에서의 무력 충돌을 ‘헌법적 정당한 주권 행사’로 포장할 명분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향후 NLL 인근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민족 간 분쟁’이 아닌 ‘영토 침범에 대한 자위권 행사’라는 국제법적 명분으로 강도 높은 도발을 감행할 법적 토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대미 협상력 제고와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하는 핵 보복 능력을 다시 한번 정당화하면서 “헌법적 핵보유국이므로 향후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강경한 메시지도 던졌다.
결국 북한의 이러한 조치들은 지난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폐기한 ‘정치적 단절’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의 헌법 명문화 시도를 기반으로 남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어 체제 오염을 막고자 하는 의도다. 또 서해 NLL 분쟁화와 같은 국지적 도발을 통해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내부의 공포를 외부로 투사하려 할 것도 자명하다. 그 첫 번째 대상이 한국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민족’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진 한반도의 어려움은 더 가중될 것이다. 감성보다는 확고한 안보 태세 확립과 정교한 위기관리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전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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