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정조준] 지배구조 이어 대출 시장 흔든다…은행 '곤혹'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한상민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연일 '금융 계급제 해소'를 화두로 던지면서 은행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실장의 주문이 "상환 능력에 따라 금리를 매긴다"로 요약되는 신용 시장의 기본 원칙을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이러한 내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의도 파악에 골몰하고 있다.
은행들은 일단 기존 신용평가체계와 금리 책정 방식에 발상의 전환을 해보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상태다.정부가 금융권의 지배구조에 이어 사업 기반인 대출까지 흔들기 시작했다는 뒷말도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 실장은 최근 개인 SNS에 잇달아 올린 글에서 시중은행들이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쉬운 이자 장사를 해왔다고 일갈했다. 은행권이 위험 회피를 위해 고신용자 중심 영업에 집중, 취약 차주의 금융 소외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시장 경제를 무시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김 실장은 5일 재차 글을 올려 '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은행은 국가의 면허 위에서 예금자 보호라는 공적 안전망을 등에 업고 위기 때면 구제금융을 받는 준공공기관"이라며 "그 특권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계약의 이행"이라고 반박했다.
김 실장의 메시지는 은행들이 중·저신용자에게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은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요약된다. 취약 차주의 금융 시스템 접근성을 높이는 단순 포용금융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출 구조 자체를 손보라는 압박이다.
이는 은행권이 고금리 환경과 예대금리차 확대 등에 힘입어 이자 장사로 역대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는 프레임과 무관치 않다. 금융을 시장의 원리로 보지 않고 정치 문법을 가미해 구조적 불공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은행들은 김 실장의 공개 저격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정확한 의도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단 금융당국이 태스크포스(TF) 출범 등 신용평가체계 개편에 돌입할 예정인 만큼 구체적인 방향성이 제시되면 적극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리 산정 체계와 대출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차주의 상환 능력을 고려해 금리를 다르게 적용하는 건 불공정이 아닌 '리스크 관리'라는 이유다.
특히 지금처럼 가계대출을 타이트하게 조이고 있는 상황에선 취약 차주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리를 최대한 낮추고 여러 대안 항목을 고려해 대출해주는 등 포용금융을 확대할 것"이라면서도 "이게 과연 금리 역전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김 실장의 주문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당장의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이 각종 지표나 규제 비율 등을 먼저 움직여줘야 은행들이 후행적으로 따라갈 수 있다"며 "정책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신용도가 낮은 차주들은 통계적으로 부도율이 높아 은행 입장에서는 손실에 대비해 더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부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를 무시하고 금리를 낮추면 은행의 건전성이 위협받고, 이는 곧 예금자 보호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며 중·저신용자 대출과 중금리대출 활성화 등 포용금융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포용금융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재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재무 데이터 중심의 신용평가 방식에도 변화를 시도한다. 이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개인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사업 전망과 미래 경쟁력 등 비재무 지표를 반영한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지만, 이를 더욱 세분화하고 일반 개인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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