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가 구국 영웅이라고?
매년 이맘때면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에서는 과메기 말리기가 한창입니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쫀득하게 익어가는 과메기를 보면 해촌(海村)의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집니다. 보이는 것과 달리 과메기의 일대기는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과메기가 사실은 전란 속에서 한반도를 지킨 구국 영웅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고초 중 하나는 식량 조달이었습니다. 정치 싸움의 희생자가 된 이순신에게 조정은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난중일기’에는 그 절박함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군량이 없어 병사들이 굶주렸다’, ‘군들이 굶주려 원망이 일어난다’, ‘양식이 없으니 병사들이 싸울 마음을 내지 못한다’. 이 기록들은 당시의 상황을 선명하게 전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메기는 조선 수군을 지탱한 생존 자원이었습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수군은 해물 채취를 위한 포작선(鮑作船)을 띄워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남해와 동해 연안에서 흔한 청어를 잡아 말린 후 군량으로 활용했습니다. 1596년 1월 6일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수는 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은 칠백여든일곱 마리를 바쳤다. 하천수가 이를 받아 말렸다.’ 전쟁 한가운데서 생선을 말려 군량을 준비하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과메기는 병사들의 허기만 달래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한 군량이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아 적은 양으로도 군사들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비타민D·B군과 타우린도 풍부해 피로 회복과 면역력 증가에도 탁월했습니다. 건조식품으로 보존 기간도 길었습니다.

만약 과메기가 없었다면 기근을 이기지 못해 전쟁의 향방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과메기를 임진왜란의 숨은 구국 영웅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과메기의 활약은 임진왜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6·25전쟁 당시에도 과메기는 굶주린 피란민들을 살렸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을 피해 포항 일대까지 몰린 피란민들은 과메기를 먹으며 버텼습니다. 동해안 일대에선 “과메기가 사람들을 살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피란민뿐 아니라 군인들도 과메기를 보급받아 혹한의 겨울을 버티며 전선을 지켰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쟁 이후 과메기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습니다.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다는 계절적 한계도 있지만 반상 문화인 우리나라에서 밥과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탓에 밥상 대신 술상에만 간간이 올랐습니다.
과메기의 인기가 급상승한 데에는 2010년대 웰빙 바람의 영향이 컸습니다. DHA 및 EPA 등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는 점과 가공을 최소화한 자연 건조 방식의 전통 식품이라는 이미지가 결합되며 과메기는 겨울철 건강식으로 소비됐습니다.
술안주 넘어 밥상 주연이 될 수 있을까
과메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않은 방언으로 어원 역시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유력한 설 하나가 있습니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것을 ‘관목(貫目)’이라 했는데 구룡포 지역에서 ‘목’을 ‘메기’라 부르며 ‘관메기’가 됐고 이후 ‘ㄴ’이 탈락해 ‘과메기’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립국어원 역시 관목을 ‘말린 청어’로 정의합니다. 한편 말린 청어로 겨울 보릿고개를 넘겼다는 뜻에서 ‘과맥(過麥)’이 어원이라는 주장도 전해집니다.
과메기는 본래 청어로만 만들었으나 어획량이 줄면서 한동안 꽁치로 대체됐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청어가 늘면서 두 어종 모두 과메기로 쓰입니다. 청어 과메기는 기름져 첫입의 만족감이 크지만 쉽게 물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꽁치 과메기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살이 단단해 더 쫄깃한 식감을 냅니다.
오늘날 과메기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술안주’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초고추장에 찍어 미역이나 김에 싸 먹는 방식이 거의 유일하다 보니 대중화에 한계가 있습니다. 최근 가수 강민경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과메기 김밥’을 만들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강남·이상화 부부가 방송에서 선보인 ‘과메기 볶음 덮밥’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미식계보다 연예계가 과메기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속적이면서도 고소한 매력을 지닌 과메기입니다. 전란의 바다를 건너 오늘의 식탁까지 살아남은 이 음식이 언젠가 새로운 얼굴로 우리 밥상에 오르는 날을 기대해도 좋겠습니다.
채상우
먹는 게 좋아 미식을 좇는 일간지 기자.
‘헤럴드경제’에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