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저녁 사줬는데"라며 입막던 민주당, 국민의힘도 똑같다 [금태섭이 고발한다]

금태섭 2022. 9.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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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이동학 당 대표 예비후보 등이 민주당 혁신을 위한 공동 제안서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의원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부 총질' 문자는 국민의힘을 혼돈으로 몰아 넣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지난 2019년 1월 30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킹크랩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론조작을 한 이른바 드루킹 사건으로 법정 구속됐다. 문재인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패닉에 빠졌다. 호기롭게 잘 나가던 기세가 슬슬 꺾이기 시작하던 집권 3년 차였다.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미 한 해 전 성폭력으로 제명됐고, 당시 또 다른 범여권 유력 주자였던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런저런 구설에 올라 있었다. 그 와중에 친문 세력이 마음에 품고 있던 김경수 지사가 치명상을 입었으니 격한 반응이 나오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민주당 의원이었던 나는 당 지도부에서 전략을 담당하던 한 의원에게 전화했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게 감지됐기 때문이다.

판결 내용을 비판할 수는 있다. 판사도 사람인 이상 오판을 피할 수 없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원 판단과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건 얼마든지 허용된다. 문제는 판사 개인의 신상을 털거나 전력을 문제 삼는 일이다. 친문 세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한 판사들에 대한 대중의 비난과 폄훼는 이미 선을 한참 넘고 있었다. 온갖 음모론이 판을 쳤고, 판사들이 정치적 성향이나 출세욕 때문에 재판 결과를 왜곡한다는 근거 없는 공격이 줄을 이었다.

지난 2019년 2월 국회에서 열린 ‘김경수 지사 판결문 분석 간담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정 의원(왼쪽)과 박주민 의원. 뉴스1

나는 민주당이 이런 경향에 편승하거나 부추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도부에 건의했다. 판결을 비판하더라도 판사 개인을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더 나아가 재판부 신상을 털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친문 네티즌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1시간 이상 통화하면서 나중에는 하소연까지 했던 거 같다.

그 의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은 지지자 마음을 달래줄 때"라는 게 이유였다. 당의 공식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정 대변인은 유죄 판결을 한 재판장에 대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양승태 사법부의 비서실 판사이던, 그 재판장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라는 언급을 해서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의 물꼬를 텄다. 홍익표 수석대변인 역시 “사법 농단 세력의 사실상 보복성 재판”이라며 “인적 청산과 잘못된 사법 거래 관행, 사법부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 발언은 수위가 한 단계 더 높았다.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양승태 적폐사단이 조직적 저항을 벌였다”면서 “국민의 힘(집권여당 국민의힘이 아니다)으로 제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법부의 판결을 ‘제압’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첫 번째 단계라고 본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고 법원 판단을 존중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 중 하나다. 그런 원칙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앞다퉈 짓밟으면서 합리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막았으니 하는 얘기다.

당내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두 번째 단계는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은 물론 민심과도 거리가 먼 공수처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표결을 이틀 앞둔 저녁, 민주당 이해찬 당 대표와 저녁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공수처 얘기가 나왔고 나는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말씀드렸다. 제대로 된 수사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무능한 기관이 될 것이고(이게 현재 공수처의 모습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영향력이 커질 경우엔 국회의원이나 판·검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찰기관이 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이것은 언젠가 도래할 미래 공수처의 더 위험한 모습이다). 이해찬 대표도 나름 귀 기울여 듣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대표가 자리를 뜬 후 일어났다. 함께 동석했던, 대표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의원이 “대표님이 직접 불러 저녁까지 사주셨는데 금 의원도 꼭 법안에 찬성해야 해”라며 다짐을 받으려 들었다.

사람이 너무나 황당한 얘기를 들으면 반박을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때가 그랬다. 만약 그 자리에서 그 의원이 공수처 문제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면 나도 기쁘게 토론에 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 대표가 밥 한 끼 사줬으니 당연히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는 사람한테 "국회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표결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건 너무 기운 빠지는 일 아닌가.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결국 공수처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졌고, 몇 달 후 징계를 받았다. 아마 그 의원은 당 대표 뜻에 따르지 않은 나를 배은망덕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적 의리나 어른에 대한 예의에 앞서는 일이다. 그런 기초적인 부분부터 혼동하면서 민주당 안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법 국회 표결에서 기권을 한 금태섭 당시 의원의 이름(우측 상단) 앞에 노란색 등이 켜져 있다. 이 일은 금 전 의원 징계와 탈당으로 이어졌다. 중앙포토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민주당에서 시작된 원칙의 붕괴는 민주당의 실정을 바탕으로 새로 정권을 잡은 국민의힘으로 전파됐다. 공정이나 형평성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가 대표적 예다.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 중요한 문제에 있어 이 대표와 견해가 다르다. 젠더 이슈나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완전히 정반대 입장에 서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 이후 벌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과 관련해서 이 대표가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당에서 벌어지는 행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무거운 잘못을 저지른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는 확정판결 이전에 징계하지 않았던 전례와의 불균형, 윤리위원이 징계 확정 전에 당 대표와 제명 운운하는 문자를 주고받은 경솔함은 원칙에 대한 경시다. '내부총질'이라는 대통령의 문자, 그리고 “선거 기간 중 윤 대통령이 두 번이나 이 대표를 포용했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고 이 대표를 향해 공공연한 비난을 퍼붓는 국민의힘 인사들의 언동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강요에 다름 아니다. 과연 대통령 뜻이 아니었어도 당 대표에 대한 징계절차가 이렇게 급하게 진행됐을까. “당 대표가 저녁까지 사주셨는데”라는 말과 “대통령이 두 번이나 포용했는데”라는 말이 얼마나 다를까.

친윤 박수영 의원은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사찰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고 SNS에 올렸다. 박수영 의원 페이스북 캡처

민주당에서 자녀 입시 비리 문제로 국민을 두 동강 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거나 공수처에 반대했을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당을 떠나라"였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도 똑같이 그랬다. 그는 여당 의원은 누구나 ‘친윤’이 되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이준석 대표에게 “사찰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셔야지”라고 비아냥댔다. 정당 안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지면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친다. 원칙은 무너지고 윗분 뜻을 살피는 사람들만 모여든다. 합리적 대화나 건강한 토론은 점점 자취를 감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그 길을 걷고 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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