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아들 방에 CCTV라도 달아야 하나... 저만 이럴까요?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경기 가평,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원미영 기자]
등교 준비를 하고 방에서 나온 아이의 옷매무새에 나도 모르게 잔소리 폭격이 시작된다.
"바지가 왜 그렇게 돌아가 있어? 가운데로 오게 잘 만져봐. 티셔츠는 밖으로 좀 빼고."
어릴 때야 어려서 그렇다지만 내일모레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무신경함에 한숨이 나왔다. 바람막이 잠바의 안팎을 뒤집어 입거나, 한쪽 바짓단이 양말에 들어가 있는 모양새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리 입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끝내 말을 아끼지 못했다.
"아, 알았~어요."
그만하라는 뉘앙스의 짜증 섞인 대답과 불량한 눈빛에 배꼽 아래에서부터 화가 치밀었다. 말투에 반항기가 뚝뚝 묻어나는 아드님이시다.
아들이 달라졌다
벌써 갱년기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또한 부쩍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진 요즘이다. 갱년기와 사춘기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승자는 갱년기라 하지 않았던가(앞으로 조심해라, 아들!).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옷을 매만져주었다.
그러다 하루하루가 다른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찹쌀떡처럼 뽀얗던 아기 피부에 번드르르 기름이 돌고, 이마엔 좁쌀 같은 여드름이 하나둘 올라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본인 주장이 확고해진 아이는 지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맞은 듯하다.
▲ 방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아들. 문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른다. |
ⓒ Pixabay |
반년 만에 키가 8cm나 자라고, 몸무게는 10kg 늘어난 아들의 폭풍 성장을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름 내내 마르고 닳도록 신던 크록스를 벗고 꺼내 신은 운동화엔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급격히 자라나는 몸에 걸맞게 2차 성징도 나타났다. 코밑 솜털이 거뭇거뭇해지고, 변성기가 온 목소리는 동굴에 들어간 듯 웅웅거려 알아듣기가 힘들다. 못 알아들어 몇 번 더 물었다가 짜증 섞인 대답을 듣기 일쑤이다.
툭하면 방에 들어가는 아들이 뭘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몰래 CCTV라도 달아볼까 그릇된 마음을 먹기도 했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며칠 전엔 아무 생각 없이 아이의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엄마, 앞으로 노크 좀 하고 들어오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 그래.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인정과 수용, 포용의 말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필수 덕목이라 알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먼저 자녀의 사춘기를 겪었거나, 그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자녀가 성인이 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한 지인은 아이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기 위해 퇴근 후 운동에 몰두하여 의도치 않은 몸짱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중학생 자녀를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이 당시의 목표였다고 웃지 못할 사연을 읊었다. 이쯤 되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사춘기가 아닌가.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들의 변신은 부모에게 적잖은 충격이자 스트레스이다.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은 사춘기를 겪는 당사자일 것이다.
▲ <인사이드 아웃2> 스틸컷, 내가 바로 불안이다! |
ⓒ Disney/Pixar |
떠올랐다.
라일리의 감정 본부에는 전편의 주요 감정들 외에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불안과 따분, 부럽, 당황이는 폭풍 같은 사춘기의 한중간에 있는 열세 살 라일리의 심리를 더욱 디테일하게 나타냈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았을까.
다양한 감정들의 고군분투 속에 라일리가 정체성을 찾고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대견스러웠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고,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여정임을 알기에 라일리의 혼란이 더욱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질풍노도의 시기로 접어들기 일보 직전인 아들의 감정 본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불안이가 거침없이 폭주하고, 따분이가 하루를 점령할 때도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필수 불가결한 감정들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간에 아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좋은 자아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되뇐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온전한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 과정에는 늘 데미안이 있었고, 데미안을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데미안과 같은 인물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아이가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좋고 나쁜 경험, 성공과 실패, 그 모든 것이 데미안일 수 있다.
아이가 내면을 헤매며 지독한 성장통을 겪더라도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당연하게 부모가 정해준 길을 걸으며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아들이 무거운 장바구니를 번쩍 들어주었다. 어느새 엄마보다 커진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두툼하고 단단해진 손이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이전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세상을 만날 아이의 투쟁을 응원한다.
어서 와. 반갑다!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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