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쇼윈도 부부 아니냐"는 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이혜란 기자]
우리 부부는 결혼 11년차 40대 부부다. 연애할 때부터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던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서로를 크게 터치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했다. 내향적이지만 외적 활동이 많은 남편과 내향적이면서 내적 활동이 많은 나. 우리 둘의 차이는 에너지의 활동 범위만 다를 뿐 각자의 몰입의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항상 비슷했다. 이러한 성향이 관계의 피곤을 낮춰준 탓인지 우리는 6년이라는 긴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우리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철인 3종 동호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철인 운동에 빠져들었고 나는 나대로 나의 자기 계발에 몰두하던 때라 우리는 직장과 취미를 양립하며 '따로 또 같이'를 즐겼다.
우리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고 느끼며 사는 와중에, 그런 우리를 두고 '쇼윈도 부부 아니냐'라고 농담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해에 최소 5번 이상은 전국의 철인대회에 참가하는 남편은 1박 2일 혹은 2박 3일 동안 집을 떠난다. 남편이 집을 비운다는 것을 외박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해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나에게 그 시간은 '각자의 시간'이지 '소외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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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인 3종경기를 하는 남편 일주일에 주 4회 이상 철인3종 운동을 한다 |
| ⓒ 이혜란 |
원래도 운동을 좋아한 남편이었지만, 이토록 오래 철인 3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영, 달리기, 자전거 3종을 모두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남편은 일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머지 시간을 운동에 쏟는다. 주 4회 이상을 운동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이 드는 루틴을 십 년째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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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길동행 남은 평생을 조용하게 동행하고 싶다 |
| ⓒ 이혜란 |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문외한이다. 연애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사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각자 독립적인 영역을 그 자체로 인정해 줬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각자가 자신의 시간에 집중하느라 상대에게 관심이 덜하다고 할까. 남편이 이번 철인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이뤘는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듯, 내가 하는 글쓰기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일을 할 때 상대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면서 몰입하고 가슴뛰는 일을 찾은 상대를 응원해주는 것. 그리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지켜주는 것. 이것이 내향인인 우리 부부에게 관심보다 존중이 더 중요한 이유다.
'함께여서' 따뜻한 시간
이토록 개인적인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아이가 있다. 남편과 내가 각자 독립적인 섬 같다면, 아이는 두 섬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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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하는 시간 남편이 아이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있다 |
| ⓒ 이혜란 |
전시나 공연장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시작한 것은 나의 방식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채워주고 싶은 나의 바람에 아이는 나를 따라 전국의 어린이 미술관을 다녔다. 여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전시나 공연 관람은 힘이 든다.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경험의 기억을 위해 나는 함께라는 시간을 반드시 끼워 넣는다. 최근에는 거금을 들여 가족 셋이 함께 볼 위키드 뮤지컬 내한 공연 R석을 예매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걷는 조용한 동행
얼마 전 결혼 20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즈음이 되면 서로 정치 토론을 하면서도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결혼 10년 차인 우리 부부가 앞으로 10년을 더 살아내면 우리도 20년 차 부부가 된다. 10살인 아이가 성인이 되는 그날이 되면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처음처럼 각자의 섬으로 돌아가 있을까.
타고난 기질을 생각하면 다정하고 애틋한 부부는 아니겠지만, 나는 바란다. 아이가 독립하고 난 후 삶의 여백 속에서도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여전히 꾸려가고 있기를. 취미를 함께하진 않아도 서로의 열정을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거리, 그만큼의 존중이 유지되기를.
최근에 나는 달리기에 빠져 격일로 트레이드밀에서 3km를 달린다. 야외에선 두 배를 뛴다. 10km 마라톤 대회에도 두 번 나갔다. 언젠가는 한 시간 안에 완주해 보겠다는 꿈도 생겼다. 신기하게도, 이건 10년간 달리기를 해온 남편이 한 번도 권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느새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남편이 알려준 정보로 늦지 않게 뮤지컬 위키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실시간 정보에 약한 나를 대신해, 그는 종종 내게 전시나 공연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좋아할 것들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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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일, 그게 결혼. |
| ⓒ priscilladupreez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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