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원격진료 시대
'CES 2025'는 나날이 발달하는 원격진료 기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미국 스타트업 온메드는 원격 의료 장치 ‘버추얼 케어스테이션’을 공개했다. 이 장치는 원격으로 의료 상담뿐 아니라 혈압과 체온,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의사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병원을 찾기 힘든 오지에서도 이 장치를 이용해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또 의사의 처방전을 가까운 약국에 전송하는 기능도 갖췄다. 따라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든 산간오지 주민이나 이동에 제약이 따르는 노인들에게 적합한 장치로 꼽힌다.
폴란드 스타트업 스테소미는 가슴에 갖다 대면 심장과 폐의 소리를 측정한 뒤 AI가 자동 분석해 감기와 천식 등 호흡기질환 여부를 파악하는 AI 청진기를 내놓았다. 이 청진기를 이용하면 병원에 가기 힘든 사람도 집에서 기초적인 호흡기질환 여부를 알 수 있다. 파벨 엘바노프스키 스테소미 대표는 이 기기를 “병원 방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보였다.
국내 스타트업 파인헬스케어는 화상, 욕창, 아토피 등의 상처를 AI가 평가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스키넥스’를 전시했다. 삼성서울병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스키넥스는 간호사가 환자의 환부를 사진 촬영하면 AI가 욕창을 총 6단계로 분류한다. 여기에 주변 피부 상태와 감염 여부 등 추가 항목을 입력하면 치료에 필요한 드레싱 제재를 AI가 추천해 준다.
메디코스바이오텍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찢어진 피부 등 손상된 부위를 촬영하면 상처 유형과 정도에 따라 AI가 진단을 내리는 ‘큐어 실크 앱’을 선보여 혁신상을 받았다. 이 기술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효과적으로 피부 손상을 치료할 수 있어 의료 소외계층에 도움이 될 기술로 꼽혔다.
문진 없이 우울증 진단도 가능해진다.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 하이는 AI를 통해 우울증을 진단하는 디지털 치료제 ‘마음첵’을 세계 최초로 'CES 2025'에서 공개했다. 이 서비스는 3년간 축적한 100만 데이터를 바탕으로 번거로운 문진을 하지 않아도 이용자 얼굴 영상 등 생체 데이터 분석만으로 40초 내에 스트레스, 우울, 불안을 진단한다.
참관객 사로잡은 이색기기 열전
'CES 2025'에서 선보인 이색 디지털 건강관리 제품으로는 일본 식품업체 기린홀딩스에서 선보인 소‘ 금 숟가락’이 돋보였다. 지난해 5월 출시된 소금 숟가락은 인공으로 짠맛이 나게 만들어 소금을 적게 섭취하도록 돕는다. 숟가락 손잡이에 부착된 버튼을 눌러 염분 농도를 선택한 뒤 숟가락을 입에 물면 짠맛이 난다. 비결은 숟가락에 흐르는 미세전류가 나트륨 이온을 자극해 혀가 평소보다 짠맛을 강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평소보다 소금 섭취량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업체 측의 주장이다. 건강관리를 위한 저염식을 돕는 이 기술은 'CES 2025'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진료 및 치료, 검사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기기도 화제였다. 대표적인 것이 네덜란드 스타트업 플로빔스가 출품한 바늘 없는 무통 주사기다. 이 주사기는 피부를 찌르는 바늘 대신 레이저를 사용해 약물을 피부에 주입한다. 레이저가 액체를 가열해 미세한 거품을 만들면서 강한 압력으로 주사액을 피부 속으로 밀어 넣는 방식이다. 이 과정이 워낙 빨리 이뤄져 이용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플로빔스의 설명이다.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바늘처럼 의료 폐기물을 만들지 않으며, 주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바늘 찔림 등 사고 위험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물론 환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주사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 엠비트로도 레이저를 이용한 무통 혈당 측정기 ‘오티브’로 'CES 2025'에 참가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은 오티브는 바늘 없이 레이저로 채혈해 혈당을 측정하므로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 기기는 레이저 광선의 출력을 화상 위험이 없도록 낮게 조정해 손가락 피부에 미세한 균열을 내 피를 뽑는다. 이 업체는 내년 1분기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나오는 대로 이 기기를 국내에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 스타트업 재뉴어리AI는 음식 사진을 촬영하면 AI가 해당 음식을 먹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혈당 변화를 예측해 보여주는 혈당 모니터링 솔루션을 선보였다. 이렇게 되면 혈당 측정을 위해 바늘로 찔러 피를 뽑는 채혈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사전에 혈당 변화를 알려줘 이용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 있게 만드는 예방 효과도 있다.
'CES 2025'가 주목한 펫 헬스케어
동물의 건강을 챙기는 이색 헬스케어 기술도 등장했다. 국내 스타트업 브레인유는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의 마취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혁신상을 수상한 ‘VET CAI’는 뇌파를 통해 반려동물의 마취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마취 심도 측정기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털이 많고 골격이 다양해 뇌파로 마취 심도를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동물병원에서 혈압, 심박수 등으로 마취 상태를 확인한다. VET CAI는 이런 한계를 뚫고 털을 깎지 않아도 반려동물의 마취 상태를 확인해 마취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기다. 따라서 중증질환을 앓는 노령의 반려동물을 수술할 때 그만큼 안전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새로운 기술, 제품화 가능할까
이처럼 'CES 2025'에서 선보인 다양한 디지털 건강관리 기술과 장치는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 어우러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기술과 제품 중 실제 생활에 파고들어 변화를 일으킬 것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모른다. 건강관리 기기의 특성상 의료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식약처 인증 등 해결해야 할 제도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제품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일부 대기업은 다양한 스마트 건강관리 기기와 서비스를 선보였으나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2월호
글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기자)
Copyright ©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당 콘텐츠뷰의 타임톡 서비스는
파트너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