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鄕愿 德之賊也(향원 덕지적야)
2025. 10. 30. 00:13

글자대로라면 향원(鄕愿)의 원뜻은 ‘시골에서 삼가며 소박하게 사는 사람’이지만, 국어사전은 ‘수령을 속이고 양민을 괴롭히던 촌락의 토호. 선량한 척하면서 환곡이나 공물을 중간에서 가로채곤 했다’라는 풀이를 해 놓았다. 향원은 공자 때부터 원뜻과 달리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는 나쁜 의미로 쓰여 온 것이다.

텃세라는 말이 있다. ‘텃세(貰)’는 ‘터(땅)를 빌린 임차료’라는 뜻이고, ‘텃세(勢)’는 ‘먼저 터(자리)를 잡은 사람이 뒷사람을 업신여기며 위세를 떠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악질 텃세를 부리는 토박이 아전이 곧 향원인 것이다. 수령들이 오히려 향원들의 텃세에 당한 경우도 많았다.
언론에 지자체의 비리가 자주 오르는 것을 보면 요즘의 일부 지자체 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향원을 겸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지역의 정체성’이란 말에 함몰되어 외부와의 소통을 외면하는 지방의 문화 토호세력들이 부리는 꽉 막힌 고집은 더더욱 향원을 연상하게 한다. 이 시대의 향원들은 느껴야 하리라. 깨어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무식을 당할 유식은 없다’며 손가락질하고 있음을. 정직한 행정과 활발한 소통만이 지방을 살리는 길이고, ‘덕의 도적’을 면하는 길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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