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건지고 어머니가 무친 내 고향 '미역' 이야기

임지화 2026. 2. 23. 11: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빠른 물살에 자란 맛 좋은 손도 미역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임지화 기자]

▲ 울집 베란다에서 물미역 말리기 물미역으로 먹고 많이 남아서 빨래대에다 널어 말리고 있다. 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미역 말리는 풍경을 상상하는 시간이었다.
ⓒ 임지화
우리 집에서 해마다 이른 봄이면 해 먹는 미역 요리가 있다. 미역서채. 어머니의 '물미역 나물' 레시피다. 그 맛은 부드럽고 상큼하면서 바다 향이 난다.

호기심에 어머니의 레시피 '미역서채'를 검색해 봤다. 미역요리로 국, 오이냉국, 쌈, 초무침, 간장(액젓) 양념 나물, 미역조갯살나물 등이 나온다. 하지만 '미역서채'는 없다. 내가 기억하는 '미역서채'는 바다 근처 마을 향토 음식인 듯 했다. 다시 고향 또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물었다. 중학교에서 가정 과목을 가르쳤던 친구는 '서채'가 아니고 '선채'로 알고 있었다. 부재료도 더 다양하고 경상도, 전라도 섬 지역에서 해 먹는 요리로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에도 나온다고 했다.

*내가 아는 우리 어머니의 미역서채 요리 순서

1. 생미역을 3~4번 빡빡 문질러 씻고 헹궈 물기를 뺀다.
2. 국간장, 마늘, 파,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무쳐 놓는다.
3. 조개, 홍합, 굴을 선택해 물을 자작자작 부어 살짝 익을 정도만 끓인다.
4. 무쳐 놓은 생미역 나물과 끓인 조개(홍합,굴)국물과 섞는다.
▲ 미역홍합서채 2022년 4월7일 본인이 직접 만든 요리다. 보시기에도 미역국은 분명히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홍합알이 튼실해서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 임지화
어머니의 레시피는 국물을 조금 넣어 국이라기보다 나물에 가깝다. 요리 이름도 어머니께 들어서 기억하지만, 옳은 표기인지도 모른다. 내 판단으로 '섞어채'를 '서채'로 구전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지방 토속 음식 연구서라도 봐야 해결될 것 같다. 내친김에 미역요리법 이외 여러 정보를 알아봤다. 양식 미역은 1~2월부터 어린 미역을 채취해 겨울 요리로 오인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산은 유채꽃이 피는 3월 중순부터 채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자연산 '미역서채'는 봄나물 요리다.

여기서 잠깐, 자연산과 양식의 외관상 구분법을 알려 드릴까 한다. 포장 형태나 상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연산은 남해, 기장 등 지역명으로 표기되어 있고, 포장이 되어 있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규격 포장이 어려운 크기다. 양식 미역은 공장에서 미역귀, 줄기, 잎을 분리 가공한다. 미역의 완전한 형태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역 요리 전 손질이 용이하다. 바쁜 도시민에게 선택받을 이유가 될 것이다.

미역을 말리던 풍경
▲ 손도로 불리는 지족리 바다 풍경 자세히 보면 죽방림도 보이며, 오른 쪽 위 부분 창선교를 건너면 남해군 삼동면이다. 스무해 넘도록 이 바다를 집 앞마당에서, 등교길, 출근길에서 보며 지냈다.
ⓒ 임지화
내 기억에는 자연산 채취 시기와 건조하던 마을 풍경이 선하다. 그때가 보리 이삭 패는 시기였다. 논밭에는 푸른 보리, 길 건너 바닷가에는 누르스름한 빛깔과 녹색이 섞인 미역 말리는 모습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나는 스무 해 넘게 남해안 섬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바다에 물이 빠지면 조개도 캐고, 굴도 까고, 모자반 등도 채취했다. 우리 아버지 직업은 농부와 어부 겸직이었다. 농사철엔 논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사철 내내 바다로 나갔다. 아버지는 노 젓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봄이면 도다리와 노래미를 낚고, 미역도 채취했다. 미역은 깊은 바다에서 건졌다. 조개 캐는 사람도 물이 먼 데까지 빠지면,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미역을 채취하는 때가 있었다.

미역을 채취하기 위해, 아버지는 대나무로 장대를 만들었다. 잔가지를 거칠게 다듬은 대나무를 몇 개씩 지그재그 형태로 얼기설기 묶었다. 바닷물 속에 넣어 춤추듯 나풀거리는 긴 미역을 빙빙 돌려 휘감아 끌어 올렸다. 자연산은 바다 깊은 곳에 바위나 돌에 붙어 자라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채취한 미역은 바닷물에 떠돌던 포자가 저절로 자란 것이다. 미역 최적 성장 수온은 10~20도, 포자 발아온도는 17~20도, 생육 한계는 23도 이상이면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이 오기 전에 채취해야 부드러운 미역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 당시에는 양식은 개념조차 없어서 모두 자연산이었다.

바다에서 채취한 생미역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대부분은 말렸다. 바닷가 모래와 자갈밭에서 일정한 크기로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말렸는데, 모양 만들기를 미역을 붙인다고 했다. 네모 모양 10장을 한 뭇이라고 한다. 아버지 미역을 지인한테 소개하고 판 경험도 있다. 지금도 남해산 손도 미역은 맛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이유는 바다 물살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너비가 좁음), 도(길)의 뜻으로, 남해 지족 바닷길을 '손도'라고 한다. 거기에서 채취한 미역을 '손도 미역'이라고 부른다. 우리 아버지 미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손도 미역'이었다. 손도 미역은 잎이 넓고 얇아 부드럽고, 국을 끓였을 때 풀어지지 않으며 부재료와 어우러져 감칠맛이 깊어 국거리용으로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역' 하면 마른 미역 요리, 특히 미역국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생미역 맛과 마른미역 맛을 구분할 수 있다. 생미역은 바다 향이 강하다. 내 기준으로 미역 맛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면, 생미역은 강한 맛, 데친 미역은 중간 맛, 건조 미역은 순한 맛이다. 생미역은 향과 짠맛이 강하고 억세서 세서, 손에 힘을 주어 빨래 빨듯 주물러 씻어야 한다. 씻기가 데치는 것보다 힘이 든다. 참고로 생미역을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씻으면 빨리 부드럽게 돼 손질이 쉽다.

내가 생미역을 좋아하고 많이 먹었던 이유는 단지 섬,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영양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역의 성분을 따져볼 필요를 느낀다. 나이가 듦에 따라 알고 먹는 게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봤다. 미역에는 풍부한 미네랄, 요오드, 칼슘, 철분이 있어서 산모의 혈액 정화와 조혈 작용을 돕는다고 한다. 특히 알긴산(수용성 식이섬유) 성분은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고 혈액 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봄의 미각을 깨우다
▲ '22년 4월 6일 고향친구가 보내준 자연산 미역. 딱 봐도 부드럽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사 속에 나오는 시기와 얼추 비슷한 시기에 채취한 것이다.
ⓒ 임지화
반면 과다 섭취를 유의해야할 경우도 있다. 갑상선 기능이 지나치게 활발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또한 신장 질환자에게도 칼륨 배출이 어려울 수 있고,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은 소화 불량을 동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적정량 섭취는 기본이고, 손질 때 충분히 물에 담가 요오드와 염분이 빠져나가게 한 뒤 조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미역국에 파를 넣으면 인 성분이 미역의 칼슘 흡수를 방해하고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어머니의 레시피만 떠올리면 군침이 도는 이유는 뭘까 따져보니 원재료가 싱싱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내 동생도 어머니 '미역서채' 레시피를 재현해 보려고 남해 현지에 갔지만 당시와 같은 종류 살조개 등 싱싱한 재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동생이 종류가 다른 조개를 대체했더니 어머니 레시피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동생은 남해에 가면 생미역을 꼭 사 올 거라고 했다. 동생은 나이 육십이 넘었지만 고향에서 먹던 맛을 유난히 고집하는 편이다. 나도 버금간다. 서울 오기 전까지 육고기보다 생선을 훨씬 많이 먹었고, 땅 채소만큼 해초를 많이 먹고 살았다. 어머니 레시피 맛은 아니더라도, 봄의 미각을 깨우는 '미역서채'로 봄의 나른함을 이겨 볼 참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