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불산 넘던 청년이 불러낸 생생한 민중의 역사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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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포곡마을 풍경. 송기숙 생가 터가 마늘밭과 어우러져 있다. |
| ⓒ 이돈삼 |
"저녁을 먹은 자랏골 사람들은 한 사람씩 정자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살랑거리고부터 좀 한산했던 정자나무 밑이 오늘 저녁은 장터처럼 술렁거렸다. 양문이 묏등에서 한쪽으로 조금 비껴 동각(洞閣)이 앉았고, 그 동각 마당의 축대 밑으로 예사 집 마당 서너 개 넓이에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여러 그루…"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悲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설은 묏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랏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문이 묏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부패한 권력에 빌붙은 양문이 일가와 대립하는 마을 사람들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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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포곡마을 전경. 마을 뒷산이 억불산 자락이다. 마을 입구에서 본 풍경이다. |
|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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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곡마을 회관과 동각. 동각 앞에 송기숙과 소설 이야기가 안내판으로 서 있다. |
| ⓒ 이돈삼 |
포곡마을이 소설가 송기숙의 태 자리(태어난 곳)다. 그의 삶과 문학이 시작된 곳이다.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마을에 아름드리 정자나무와 동각이 있다. 송기숙이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소재로 삼은 나무다. 애당초 정자나무 두 그루였지만, 지금은 한 그루만 있다. 태풍으로 쓰러지고, 밑동만 남아 있다.
정자나무 아래에 서니, 금세 자랏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 것 같다. 소설 속에 나온 들돌도 동각 아래에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통하게 구색이 맞았다는 그 들돌이다.
"야, 이리 비켜봐라" 평식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들돌 위에 앉아있는 문길이를 비켜서게 했다. 들돌을 한바탕 들어보겠다는 기세였다. 모두 호기심에 찬 눈으로 평식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들돌은 단순한 운동기구가 아니었다. 작은 들돌을 들어 허리를 폈다 하면 그때부터 어른 취급을 받아 무슨 품일을 나가도 그것을 한몫으로 쳐주었다. -소설 <자랏골의 비가> 중에서.
강단있는 삶이 녹아든 그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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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안내판으로 만나는 송기숙. 포곡마을회관 앞 정자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다. |
| ⓒ 이돈삼 |
소설 주인공은 지배 계급에 억압 받고 소외된 민중이다. 민중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되지만,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소외를 비판하며 개선하려고 애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이고, 민중의 나은 삶을 위해선 정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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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송기숙이 다닌 옛 계산초등학교. 지금은 폐교됐다. |
|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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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동학혁명기념관.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이 모태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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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숙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자랏골의 비가>는 그의 초기 소설이다. 1970년대 초 목포교육대학을 거쳐 전남대 교수로 근무했다. 1978년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우리교육 지표'를 발표했다. 우리교육 지표는 유신체제의 '국민교육헌장'에 맞선 교육 민주화 요구였다.
송기숙은 서야 할 자리, 말해야 할 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파면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긴급조치 위반, 5.18 수습대책위원 활동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1980년대 중반 전남대 교수로 복직한 뒤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가 기록한 광주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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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학교 인문대 앞에 세워져 있는 '우리교육 지표' 조형물. 송기숙 등 전남대 교수들의 '우리교육지표'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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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기숙의 묘.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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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포곡마을 뒤태. 한적한 산골마을 풍경 그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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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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