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건축주와의 만남과 ‘숲멍집’의 시작

건축가 이규빈의 미슐랭 3스타 공간 1

‘스테이’는 단순히 머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을 풍요롭게 느끼고 관계를 도모하는 공간이다. 많은 건축주가 좋은 땅에 주택보다 일부러 수익성을 고려한 스테이를 계획하는 경우도 예전보다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시기를 겪어오며 그 형태와 인식은 더욱 발전했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스테이 관련 짧은 연재를 기획하게 됐다. (편집자 주)

진행 남두진 기자 | 글 자료 이규빈(자이라건축사사무소 대표)

작년 말 큰 이슈를 부른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티저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뉴스룸)

지난 한 해 가장 많은 관심과 이슈를 불러일으킨 방송은 단연 ‘흑백요리사’였다. 방영 이후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열풍이 부는가 하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을 내세웠던 출연 셰프들 덕분에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미슐랭 가이드’는 본래 자동차 여행자를 위한 지침서였는데 별의 개수로 전 세계의 레스토랑을 평가한다. 별 1개는 ‘음식이 훌륭한 레스토랑’, 별 2개는 ‘가던 길을 바꿔서(detour)라도 가볼 만한 레스토랑’, 별 3개는 ‘오직 그곳을 방문하기 위한 여행(special journey)을 계획할 만한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소개부터 예약까지 스테이만을 모아 론칭한 앱 ‘스테이폴리오’

건축계의 미슐랭 3스타, 스테이
비록 흑백건축가 같은 방송은 아직 없지만 미슐랭 스타의 비유는 건축에서도 제법 잘 맞아떨어진다. 레스토랑을 ‘집’으로, 음식을 ‘하룻밤 머무르는 것’으로 바꾸면 말이다.
만약 당신이 여행 중 하룻밤 묵어갈 집을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마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처럼 준수한 호텔이나 콘도미니엄을 고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겠지만 2스타, 3스타처럼 오직 그 집을 찾아가기 위해 우회하거나 여행을 계획해도 될 정도인 곳이 있다면 어떨까.
요즘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테이(stay)’라는 유형의 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스테이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도 있지만 이미 고급 스테이만 모아 예약을 도와주는 전용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멋진 스테이를 많이 설계해서 유명세를 치른 건축가도 있을 정도다.
스테이란 한마디로 집주인이 단독주택을 이용해 숙박을 제공하는 유형의 숙소다. 펜션이나 민박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고급스럽거나 특별한 숙소라는 뜻으로 통용되며 외국에서 유래한 B&B(Bed and Breakfast) 개념에 더 가깝다. 단순한 숙박 서비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집주인의 취향과 개성, 그리고 지역성이 반영된 주택에서 머물러보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집을 뜻한다.
과거의 여행은 관광지나 도시를 먼저 정하고 그 주변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는 게 순서였다면 스테이의 시대에는 방문해 보고 싶은 공간이나 숙소를 찾아 그 도시나 지역으로 여행 가는 것을 계획해 보는 문화가 대세다. 마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찾아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테이에 관한 여러 메모가 적힌 건축주 사무실의 한쪽 벽면

아주 특별한 건축주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건축주가 강화도에 작은 스테이를 짓고 싶다고 찾아왔다. 인천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니 외국인들도 하룻밤 묵어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을 만큼 특별하고 멋진 공간을 설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요리로 치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과도 같았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지도에서 먼저 확인해 본 땅은 140평 정도로 자연녹지지역 건폐율 20%를 적용하면 건축면적이 채 3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설계비를 얼마 불러야 할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건축주와의 첫 미팅 날짜가 잡혔다.
미팅 장소는 에너지 관련 사업을 오래 하셨다는 건축주의 사무실이었다. 함박웃음으로 맞아주시는 환한 얼굴 뒤편으로 까만 글씨가 잔뜩 적힌 칠판이 보였다. 거기에는 설계에 반영하고 싶은 요청사항들이 잔뜩 적혀 있었는데 태양광, 지열, 관정, 풍력발전, ESS(Energy Storage System) 등 대부분이 에너지와 관련된 기술적 내용이었다.
건축주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업 분야와 관련한 내용으로 열변을 토하셨지만 나는 어쩐지 디자인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건물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디자인에서 많은 걸 포기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일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건축주 입에서 나온 한 단어가 내 귀에 꽂혔다. 바로 ‘강아지’였다.
알고 보니 건축주가 원하는 건 강아지를 위한 스테이였다. 벌써 8년째 집에서 푸들을 키우고 있으며 최근에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입양했다며 행복해하시는 표정이 좀 전과는 사뭇 달랐다. 평소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을 많이 다니며 소위 ‘애견펜션’이 불만족스러웠던 건축주는 강아지와 함께 올 수 있으면서도 고급스럽고 특별한 공간의 스테이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문득 나 역시 집에서 10년 넘게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함께 여행하며 경험했던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허름했던 숙소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이 프로젝트를 하겠노라 흔쾌히 대답했다.

주변에 주택 필지와 야트막한 숲이 인접하던 대지 전경
주변에 주택 필지와 야트막한 숲이 인접하던 대지 전경

진실은 늘 현장에 있다
이제 강아지라는 특별한 건축주까지 정해졌으니 남은 것은 땅의 이야기다. 대지는 강화도 초입의 정족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제법 평탄한 땅이었다. 건축주는 본래 밭이었던 곳을 형질 변경해 대여섯 채의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택지로 개발해 놓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유명 관광지인 전등사에서도 가깝고 옆으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 계속 달리면 낙조로 유명한 화도면으로 이어지는 접근성도 꽤 좋은 길목이었다. 다만, 풍경 좋은 곳이나 한적한 곳에 들어서는 게 일반적인 요즘 스테이에 비하면 건축주의 스테이가 들어설 땅은 둘 다 해당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주택 필지가 붙어 있고 주변 마을의 풍경도 다소 번잡스러워 영 마음에 걸렸다.
진실은 늘 현장에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땐 머리가 하얘지다가도 막상 땅에 찾아가 두 발을 딛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영감이 떠오르는 게 건축가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제일 먼저 대지 서쪽으로 면한 울창한 숲이 보였다. 우선 거기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스테이라는 것도 결국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나 혹은 우리 가족에게, 또는 강아지에게 오롯이 집중하기 위한 공간이다. 꼭 봐야 할 것만 같은 멋진 풍경이 있는 것보다는 오로지 숲과 강아지와 집만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화도 스테이 ‘숲멍집’의 시작이었다.

이규빈_자이라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자이라건축 대표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사무실 이로재에서 10년 간 수련하며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새들의 수도원’ 등 다수의 설계를 담당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스페인 마드리드건축학교에서 수학했고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젊은 건축가 펠로우십’을 받았다. 2021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해 설계를 가르치고 있으며 2022년 ‘김태수 크리틱 펠로우십’ 수여자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건축가의 도시>가 있다.
070-8065-4085 zaira@zair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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