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덮친 유기견보호소… 맨발로 불길 뛰어든 사람들 [개st하우스]
“산 중턱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뛰어 올라갔더니 보호소 한 채가 통째로 불타고 있는 거예요. 소장님은 맨발로 불구덩이 속을 헤집으면서 견사 문을 하나하나 열고 계셨고요. 옆구리에 개들을 끼고 나르다가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서 소장님과 함께 보호소를 빠져나왔는데 글쎄, 몇 초 있다가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렸어요. 남아 있던 스무 마리는 타 죽었어요. 내가,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 몇 마리 더 살았을 텐데. 내가 미안해(울음).”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
녹아내린 비닐하우스 잔해와 검게 변한 흙바닥, 누렇게 그을린 나뭇잎. 지난달 25일 방문한 경기도 남양주의 유기견보호소는 멀리서부터 탄내가 진동했습니다. 사흘 전 화재가 남긴 흔적입니다. 갑작스러운 불로 보호소의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2개 동 가운데 1개 동은 완전히 불탔습니다. 다행히 불난 견사에 있던 유기견 30여 마리 중 10마리 정도는 목숨을 건졌어요. 보호소장이 불길에 뛰어들어 견사 문을 일일이 열어준 덕분이죠.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20여 마리는 불길에 생명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 남은 게 잿더미만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도움의 손길도 도착해 있었습니다. 화재 소식에 달려온 봉사자들입니다. 수년째 보호소를 찾아와 봉사활동을 이어온 시민 20여 명은 보호소 입구에서 창고까지 20m 길이의 인간 띠를 만들어 챙겨온 생수와 사료 같은 구호물품을 날랐습니다. 기업은행 봉사동아리 ‘행복하개’의 동료 10여 명과 함께 현장 복구를 돕던 이주홍(25)씨는 “지난 3년간 매주 방문한 보호소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며 “이번 화재로 얼굴도 이름도 알던 녀석들이 목숨을 잃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 시흥에서 찾아온 이제선(28)씨는 “보호소 소장님이 화상 치료도 받지 못하고 생존한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전했습니다.
제선씨가 말한 ‘소장님’은 보호소를 15년간 운영한 임정애(70) 소장입니다. 현장에서 임 소장은 철골만 남은 보호소를 돌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물품들을 잿더미에서 건져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화재로 보호소는 재건하기 어려운 수준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임 소장은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남은 생명을 돌봐야 한다”며 “남은 녀석들을 책임져줄 단체를 찾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소장은 인적이 드문 남양주 산골에서 지난 15년간 이곳 사설 보호소를 운영했습니다. 그동안 구조해 입양 보낸 유기견은 500여 마리. 소음 민원을 피해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외딴곳에 비닐하우스와 스티로폼 가벽으로 꾸린 열악한 보호소이지만 안락사 위기의 생명을 구한다는 보호소 취지에 공감한 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건 지난달 22일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불은 견사 배전판 부근에서 전기 과부화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전기료를 아끼느라 본인 방에도 냉방시설을 가동하지 않던 임 소장은 이날만큼은 견사 에어컨을 풀가동했습니다. 35도 넘는 폭염에 유기견들 건강이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불이 난 곳은 예비 입양 견사였습니다. 건강하고 성격이 좋아 입양 상담을 받던 개 30여 마리가 지내던 곳입니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입양을 앞뒀던 유기견들이 꼼짝없이 타죽을 위기였습니다.
임 소장은 직원 휴게공간에 있다가 불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화재 신고를 마치자마자 맨발로 견사를 향해 달렸죠. 불타는 보호소 안으로 뛰어들어 개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견사 잠금쇠를 하나하나 열었습니다. 때마침 봉사차 보호소를 방문한 시민단체 동물구조119의 임영기 대표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임 소장 곁에서 개들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견사 문이 열려도 개들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산책줄을 채워야 외출하던 모범견들은 “제발 나가라”고 애원해도 연기 가득한 견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결국 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개들을 옆구리에 끼고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커진 불길이 보호소를 덮치고 시설이 무너져내린 건 그로부터 불과 10여초 뒤. 두 사람의 분투 덕분에 10마리는 목숨을 건지고, 일부는 동물병원에서 화상 치료 중입니다. 하지만 건물에 남은 20여 마리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임 대표는 “내가 꺼내지 못한 20여 마리가 눈앞에서 타죽었다”며 “그 미안함으로 지금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울먹였습니다. 소동의 와중에 사라진 개들도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이 나서 포획하고 있지만 전부 찾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화재는 소방대원들이 출동하고 2시간여 만에 진화됐습니다. 하지만 보호소는 2개 동 가운데 한 곳이 전소하며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개st하우스는 지난달 25일과 29일 남양주 화재 현장을 방문해 복구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임 소장은 현장에 상주하며 보호소 폐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 소장은 “병원 진료도 받지 못하고 일주일째 사고 수습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염치없지만 살아남은 개들을 수용할 동물단체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존한 개들은 대부분 입양 문의가 없는 9살 이상 노령견으로, 수용 단체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사설보호소 화재는 매년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2018년 안성 평강공주보호소에서 큰 불이 나서 유기동물 260여 마리이 불에 타 죽었고, 2021년에는 포천 사설보호소 화재로 100마리 넘는 유기동물이 대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포천 보호소는 배우 이용녀씨가 운영하는 시설입니다. 두 사건 모두 냉난방기를 가동하던 중 발생한 전기 합선 혹은 과열로 인해 벌어진 화재였습니다. 사용 전력에 맞춰 전선을 보강하고 차단기를 설치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입니다.
하지만 사설보호소 대다수는 이런 안전관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게 현실입니다.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는 지난 3년간 매년 사설보호소 한 곳을 선정해 화재 예방 비용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용 전력에 맞춰 전기 설비와 차단기를 보강 설치하는 비용입니다. 팅커벨 황동열 대표는 “아픈 동물의 치료비도 버거운 사설보호소들에는 300만원도 큰 돈”이라고 지적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민간동물보호시설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국 140곳에 이르는 사설보호소 가운데 절반은 보호소장이 홀로 관리하고, 60%는 후원금이 부족해 운영비의 41%를 개인 채무로 메우며 어렵게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화재 예방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겁니다.
현장 관계자들은 사설보호소 화재 예방을 위해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연간 10만 마리 이상 쏟아지는 유기동물을 공공보호소 대신 감당하는 사설보호소를 지원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거죠.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사설보호소가 유기동물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지만 열악한 형편으로 인해 화재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성훈 최수진 전병준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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