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뇌전증과 싸운 그녀…6명에 새 삶 선물하고 영면[아살세]

백재연 2026. 7. 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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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 윤명애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초등학생 때부터 뇌전증을 앓으며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50대 여성이 마지막 순간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뇌전증 환자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생명나눔이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윤명애(54)씨가 지난 1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폐와 간, 양쪽 신장과 안구를 6명의 환자에게 기증했다고 23일 밝혔다. 윤씨는 인체조직 가운데 피부도 함께 기증했다.

윤씨는 지난달 27일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평소 아픈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렸던 윤씨의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윤씨의 맏언니는 “동생이 누군가의 몸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1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윤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발작 증상을 겪었다. 이후 뇌전증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약물치료를 이어왔다.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탓에 혼자 외출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기증자 윤명애씨가 직접 만들어 큰언니에게 선물한 가방.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윤씨가 꾸준히 즐긴 취미는 퀼트였다. 언니의 권유로 문화센터에서 처음 배운 뒤 직접 가방 등 여러 작품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오랜 투병 생활을 거친 윤씨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했고, 누군가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각별히 걱정했다.

어머니가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윤씨가 곁을 지켰다. 직장 생활로 간병이 어려웠던 형제들을 대신해 오랜 시간 어머니를 돌봤다.

맏언니는 동생이 또래처럼 평범한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떠난 것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밖으로 나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러다 자주 부딪치곤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먼저 떠난 아버지 곁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유족들은 뇌전증 환자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장기를 기증해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씨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나눔의 의미가 확산되고, 고인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자신도 오랜 시간 치료를 이어왔음에도 주변의 아픔을 살폈던 윤명애 님의 따뜻한 삶이 생명나눔으로 이어졌다”며 “힘든 이별의 순간에도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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