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개성 있는 가게네요" 이 교토식 화법을 해석해 보시오
[장세희 기자]
일본에 오래 살다보면 '아,이 사람은 관서 사람이구나! 확실히 다르네'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사는 동경은 관동 지역이다. 이곳에서 24년을 살다 보니 나도 관동 사람이 다 된 건지, 관서 지역 사람을 만나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충청도식 화법에 대한 글과 쇼츠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으면 아, 이분 충청도 분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누구나 아, 이분 관서 쪽 분이시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다름'이 있다.
일본의 지역 차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축이 바로 관동(関東)과 관서(関西) 이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오사카·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리적으로는 몇 시간 거리지만 많은 면에서 꽤 다르다.
1. 말투부터 공기가 다르다
관동, 특히 도쿄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부드럽다. 정중하고, 애매하고, 끝이 흐려진다. 특히 뭔가 거절을 할 경우 더욱 그렇다.
"조금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이 말들은 대부분 '지금은 안 된다' 혹은 '안 된다'는 거절의 뜻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관서, 특히 오사카에서는 말이 다르다.
"그건 안 돼."
"난 못해."
직설적이고, 처음 들으면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사카 사람들은 이걸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함을 예의라고 여긴다.
2. 국물 한 그릇에 드러나는 지역성
관동과 관서의 차이는 국물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관동의 소바나 우동 국물은 색이 진하다. 간장 베이스, 짜고 달큰하고 향이 강하다. 에도시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에도시대란, 1603년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아 에도, 현재의 도쿄 를 수도로 삼고 통치했던 시대).
에도시대의 에도에는 대다수의 서민이 짐꾼, 목수, 장인, 항구나 시장의 노동자였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고 빠르게 먹고 다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음식은 짜고 자극적이게 되었다. 더군다나 식수로 사용된 물이 강물, 운하 중심이여서 미네랄과 불순물이 많았기에 진간장을 사용해 더 진한 국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관서의 우동 국물은 맑다. 다시마와 가쓰오부시의 감칠맛이 중심이다. 간장은 연간장으로 소량만 들어간다. 교토는 옛 일본의 수도 였고 오랜시간 수도로써 자리하며 귀족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오사카는 홋카이도를 오가는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인의 접대 문화가 있었다. 강한 자극적인 맛 보다는 깊이가 있고 품위 있는 국물을 선호했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이사 간 사람이 우동집에서 주문한 우동이 나오자 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물이 안 나왔어요."
|
|
| ▲ 관서지역 우동 맑고 깔끔한 국물에 부드러운 우동면이 특징 |
| ⓒ 본인 |
|
|
| ▲ 관동지역 우동 짭짤하고 달큰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이 특징 |
| ⓒ 본인 |
관동의 음식점은 조용하다. 손님도, 직원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매뉴얼이 잘 정리되어 있고, 서비스 품질이 고르게 유지된다. 관서의 음식점은 다르다. 주인이 손님에게 말을 건다.
"맛있지?"
"이건 서비스야."
대신 서비스의 편차가 있다. 주인은 자기 마음 가는대로 서비스를 주기도, 안 주기도 한다. 오사카의 타코야키 가게에서 실제로 들을 수 있는 말, "이거 맛 없으면 돈 안 받아." 이 말에는 자신감과 농담, 장사꾼의 감각이 섞여 있다.
4. 웃음에 대한 태도
일본의 개그맨 대부분이 관서 출신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관서에서는 웃기는 게 생활 기술에 가깝다. 대화 중에 침묵이 흐르면, 누군가는 반드시 농담을 던진다. 재미없으면 바로 지적당한다.
"아, 재미없어."
관동에서 농담을 했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건 거의 이지매 수준이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속으로 상처를 받고 그 모임에 다신 안 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서 사람들은 "아, 재미없어.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이런 식의 말을 들으면 "아,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아니면 "그럼 네가 웃겨봐" 하며 받아친다.
5. 돈과 장사에 대한 감각
관동에서는 가격이 곧 신뢰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가격은 대부분 정찰제이고, 명시되어있는 가격에서 깎으려 하지 않는다.
관서에서는 가격은 협상의 시작점이다. "싸고 좋은 게 최고"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오사카에서 "비싸다"는 말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거의 감정 표현에 가깝다.
주인은 기분 좋으면 깎아주고 기분이 나쁘면 안 깎아준다. 손님도 기분 좋으면 가격대로 지불 하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이 가격이면 안 사지! 하며 감정을 드러낸다.
6. 교토라는 특별한 예외
관서를 이야기할 때 교토를 빼놓을 수 없다. 같은 관서라도 교토는 또 다르다. 교토 사람의 말은 해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충청도처럼 말이다.
"참 개성 있는 가게네요."
이 말은 칭찬일 수도 있고, '줘도 안 쓸 이런 물건을 팔고 있냐'라는 뜻일 수도 있다. 교토는 한국으로 치면 전통이 깊은 양반 고을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천년의 수도라는 높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교토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교토가 일본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3대 이상 교토에서 살아야 그제서야 '교토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관서 지역인데도 교토 사람은 오사카 사람과 같은 관서인 취급을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관서 지방 사람이냐고 물으면 교토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7. 결국, 누가 더 낫다기보다는
관동과 관서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관동은 시스템이 강한 사회, 관서는 사람이 강한 사회. 도쿄는 편리하지만 거리감이 있고 오사카는 시끄럽지만 정이 넘친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지도보다 국물 맛, 통계보다 말투, 정책보다 식당 분위기를 보는 편이 빠르다. 관동과 관서의 차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단일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지역이 문화를 만든다는 아주 좋은 사례다. (*물론, 이러한 차이점도 내 경험담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동산 전쟁' 시작한 이 대통령...'내부의 적'은 누구인가
- '부자 2400명 탈한국' 오보, 대한상의와 언론 합작품
- 현대·기아차 하청업체 갑질 사건에 드리워진 '김앤장의 그림자'
- 유출된 대외비 문건... 갈등 키우는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란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도사보다 판사
- [이충재 칼럼] '이재명 정부 심판론', 먹히겠나
- 'YS 아들' 김현철 "국힘 수구 변질, 아버지 사진 내리라"
- 한나라당 의원 출신 경기교육감 "16세 선거권 반대"
- "이 대통령 국정 잘한다" 58%... 긍·부정평가 사유 '부동산' 언급 증가
- "정당한 생활지도" 교육감 의견서 내도... '아동학대 신고' 교사 고통 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