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당일치기 정상 찍고 온 후기.jpg
나리타 -> 도쿄 -> 신후지 -> 후지 -> 후지노미야 역 이동
이달초에 외국인 대상 후지산 입산료 늘린다고 호들갑 떨었는데
입산 루트 4개 중 가장 인기와 방문객이 많은 야마나시현의 요시다 루트만 가격이 올랐고
시즈오카현 루트 3개는 아직 동결임
조만간 올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후딱 갔다오는 게 좋을 듯
인구 13만의 상당히 조용한 동네
한국에서 인구수가 10만 내외인 곳은 제천 영주 논산 정읍쯤 된다고 한다
원래 이날 후지노미야의 관광지와 식당을 둘러보려고 했으나
하필 화요일에 대부분의 식당과 관광지가 문을 닫음
거기다 날씨마저 흐려지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근처의 센겐 신사만 후딱 둘러보고 쇼핑몰로 감
커알못도 눈돌아가는 원목 감성 디자인의 칼디
과연 진짜 한국산일까
인터넷으로 봤던 칼디의 시그니처 매대, 원두 정모 현장
애니메이트와 가챠샵에서 본 여러 굿즈들
씹덕에 조예가 없어서 ㅋㅋㅎㅎㅈㅅ
제대로 본 게 던전밥 밖에 없음
블루아카이브도 보이네
한국에서도 좋았쓰, 좆소냥이로 나름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
그 외 몰의 여러 상가들 이것저것 둘러보고
사전조사했던 야끼소바집 죄다 휴일이라
구글 지도 수소문 끝에 찾은 식당
노부부가 운영하는데 필사의 생존기 '니혼고 데키마세' 시전하니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심
일본어 알못이라 GPT로 사진 찍어서 번역 돌린걸로 주문함
다른 손님들은 직접 굽고 볶아가며 먹던데 우린 외국인이랍시고 주인장 할머니가 직접 볶아가며 시범 보여주심
파파고 딥엘 이미지 인식보다 훨씬 성능 좋음
특이점은 이미 왔다
사장님이 귀엽고 댕댕이가 친절한 토키와 게스트하우스
내일 후지산 간다고 하니 출발지점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도 브리핑해주시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버스 정류장까지 직접 데려다주신다며 호의도 베풀어주심
후지노미야역 부근에서 한시간 정도 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진입
여기서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 정도 걸려 6시 50분에 5합목(절반 지점, 시작점)에 도착
해발 0미터부터 오르는 미친 용자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 목표는 당일치기여서 대략 절반지점인 5합목에서 등반을 시작함
이때가 대략 오전 7시쯤
예상 등반이 5시간, 하산이 3시간이었음
기온은 17도, 해발 2400미터면 한라산 정상을 훨씬 넘긴 높이에서 시작한 셈
아
시발
5년 넘게 신고 쳐박아뒀던 등산화가 시작부터 밑창이 다 뜯어져나감
근데 여기까지 왔는데 뭐 어쩌겠음? 마 함해보입시더
하는 마음가짐으로 끈을 살짝 풀어서 밑창까지 묶고 올라감
중간중간 산장에서 휴식, 식사, 용변이 가능함
물론 다 돈 줘야되고 위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져서
화장실 이용에 3천원, 생수병 하나에 5천원, 산소캔 3만원까지 파는 것도 봄
1박2일로 숙박도 가능한데 이 경우엔 예약 필수고 아무리 위급해도 예약 없으면 당일에 재워주지 않는게 원칙이라고 함
6합목부터, 신7, 구7, 8, 9, 9.5, 10까지 총 7개의 산장이 있고
10 위로도 정상이 따로 있음
보통 한 산장 당 10분 정도 쉬었던 거 같음
출발지점부터 식생한계선 위라서
올라가면서 보이는 풍경은 자갈, 적토, 이끼랑 풀 조금 밖에 없음
대신 뒤돌아보면 구름 위로 구름이 있고 맑은 하늘이 눈 앞에 펼쳐지며 내가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줌
등반로도 체감상 60도 이상 험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음
7합목부턴 찬바람이 거세져서 얇은 바람막이를 입음
해발 3천미터 당일치기 등산시 고산병 증세 발병 확률이 약 40%라는데
60% 믿고 베팅했다가 실패함
8~9 지점에서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자세가 무너지려하는 등 고산병 저산소 증세가 보여 2천엔을 주고 산소캔을 구입함
막상 들이마셔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은 없는 대신 더이상의 어지럼증은 없었음
지인은 고산병에 효과있으니 비아그라 챙겨가라던데 풀발기 산행이라는 귀한 경험까진 하고 싶지 않았음
우여곡절 끝에 10합목 도착
먹고 마시고 쉬느라 정신 없어서 막상 산장 내부를 못 둘러본 게 아쉬움
여긴 기온이 대략 4도 였고, 구름이 껴 햇빛이 없으니 상당히 찬바람으로 느껴졌음
10합목이 끝이 아니라 20분 정도 더 올라가야 정상임
10합목 뒤로 펼쳐진 분화구
사진으론 작아보이지만 사람이 미끄러져 내려가면 2분은 족히 내려갈 깊이였음
분화구를 오른쪽에 두고 미끄러운 흙길을 쭉 올라가면
정상 기상관측소와
정상임을 알리는 비석
지상에서 가져왔더니 기압차로 빵빵레후가 된 비닐
7시 출발 13시 도착으로 대략 6시간 소요됨
올라갈수록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움직임이 느려지고 사람들도 휴식하는 시간이 길어졌음
이후 같은 경로로 내리막
등산로가 흙과 자갈뿐이고 따로 지반 공사를 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미끄러지기가 매우 쉬웠음
특히 등산화도 밑창이 씹창이 되어 말그대로 '거지발싸개'꼴을 하고 다니다보니
저산소로 오르기 힘든 만큼이나 내려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됨
내려가니까 오후 5시더라 씨발
등산 하산 예상 시간보다 각 1시간을 더 소요한 셈
하산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질 않나 안개가 껴서 가시거리가 5미터로 줄어들지 않나
로그라이크 게임도 아니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요소도 재미를 가중시켰음
5합목 도착후 6시 버스를 타고 후지노미야역으로 복귀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늦어, 숙소로 가 정리할 틈도 없이
바로 근처의 중식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음
냉수마찰 시원하게 조지고 물 3리터 정도 마신 뒤에 꿀잠
등산에 가져간 물품들
물 두병 (400ml), 이온음료 한병 (200ml), 얇은 바람막이, 두꺼운 외투(한국의 초겨울 옷), 빵 2개, 초코칩 과자, 등산스틱, 우의, 땀닦을 수건, 선크림
내려올때쯤 상당한 갈증이 느껴졌으니 물을 더 넉넉하게 가져가던지 산장에서 추가로 구입하는 걸 추천
땀 배출이 많아서 그런가 용변은 따로 볼 필요 없었음
Q. 갈만한가요?
갈만함
Q. 경치는 어떤가요?
산은 별 거 없는 민둥바위산이지만 뒤돌아봤을때 펼쳐지는 광활한 스카이라인이 장관임
Q. 두 번 갈만한가요?
아니
Q. 덥지 않나요?
위에 써둔대로 선선함 -> 쌀쌀함 -> 추위 순으로 빡세짐
Q. 한국 산이랑 비교하면?
등산의 재미는 한국이 압승, 근데 한국 산 지금 가면 더워뒤짐
그리고 후지산 등반루트엔 식생이 없어 귀찮게 달라붙는 벌레가 없는 게 좋았음
Q. 굳이 올라가야 됨?
아니
Q. 돈은 얼마 들었음?
총무는 다른 친구가 해서 모르겠는데 공항에서 부터 순수 왕복 비용 생각하면
나리타익스, 신칸센, 지역철도, 5합목행 버스까지
꽤 많이 깨졌을듯
그리고 다음날 도쿄로 넘어와 2박 일정을 보냈는데
시발
존나게 덥더라
후지산보다 긴자 신주쿠 도쿄역 돌아다니는 게 더 힘들었음
여름 일본 대만 태국 등지는 여행지로 피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