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을 인출할 때 알아야 할 3가지 리스크는?


네. 정년퇴직을 앞두고 송수정 씨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길고 긴 인생에서 어떻게 보면 은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소중히 모은 노후자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인출할 것인지가 은퇴자의 남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은퇴자금 관리에 적용하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산관리를 할 때 큰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자산관리도 중요하지만, 가난해지지 않는 자산관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후자금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돈은 떨어지고 나만 남으면 그야말로 ‘무전장수(無錢長壽)’를 하게 됩니다. 이만한 낭패가 있을까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돈의 수명을 늘려야 합니다.

즉, ‘자신의 수명’과
‘자산의 수명’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수명과 자산의 수명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3가지 리스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노후자산을 관리할 때 주의해야 할 이 3가지 리스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어릴 때 <3년 고개>라는 동화를 읽었던 기억이 나시나요?

할머니가 고갯길을 넘다 넘어집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 고개에서 넘어진 사람은 3년밖에 못 산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손자에게 “이제 자기는 3년밖에 못 산다”라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손자는 할머니에게 “3년마다 한 번씩 그 고갯길에서 넘어지면 평생을 살 수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3년 고개>가 그저 동화 속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요즘 과학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특이점이 온다’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구글의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수명탈출속도’가 그것입니다. 커즈와일은 과학이 해마다 수명을 1년 이상 연장할 수 있는 시점을 ‘수명탈출속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경지에 이르면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커즈와일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균수명보다는 훨씬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할까”라고
고민하기 보다는
“오래 살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몇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평균의 함정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장군이 참모에게 물어야 했던 것은 ‘평균 수심’이 아니었습니다. 장군은 “가장 깊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야 했습니다. 장군은 ‘평균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겁니다. 평균 수심 정보를 알려줬더니, 강바닥이 모두 평균 수심만큼만 깊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람들이 수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균수명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도 그맘때 사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균은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이고, 각자 개인들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리스크는 평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에서 벗어나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라, “생각보다 오래 살아도 내 삶은 평안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죠.

종신형 연금에 가입하면 가입자는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수명과 자산의 수명을 일치시키는데 이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겁니다.

투자 수익률을 높이면 은퇴자산의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태생적으로 또 다른 리스크를 갖고 있는데요. 먼저, 종신형 연금에 가입한 은퇴자는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시나브로’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바로 이렇게 은퇴자에게 다가옵니다.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서 은퇴자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적립 단계보다 은퇴 후 인출 단계에서 체감하는 인플레이션은 훨씬 위협적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대체로 물가가 오르면 임금도 따라 오릅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습니다. 그리고 소득이 늘어난 만큼 노후대비 저축도 늘려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물가 상승에 맞춰 연금액을 인상해 줍니다. 하지만 공적연금을 제외한 대다수 연금 상품은 물가와 무관하게 연금을 지급합니다.

따라서 물가가 오르더라도
연금수령액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은퇴자는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죠.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물가 변동과 무관하게 매달 100만 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는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고 해보겠습니다. 매년 물가가 2.5%씩 상승하면 30년 뒤 연금의 구매력은 48만 원으로 떨어집니다.

따라서 은퇴자금을 모두 털어서 종신형 연금을 가입하면 죽기 전에 노후자금이 완전히 고갈되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연금의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 수준을 낮춰야 하는 또 다른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투자를 하면서 생활비를 인출하게 되면 은퇴 기간 동안 물가 상승으로 인해 노후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에 대비할 수 있겠죠.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투자를 하면서 은퇴자산의 수명을 늘리려면 투자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퇴생활기간 내내 인출률보다 높은 수익을 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투자 수익률에는 등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수익률 순서에 따라서 은퇴자산의
수명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은퇴 이후 투자수익률 순서에 따라 노후자금이 고갈되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는 위험을 ‘수익률 순서 리스크(Sequence of return risk)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은퇴 초반에는 손실을 보다가 후반에 수익률이 좋은 <불운한 은퇴자>와, 반대로 은퇴 초반에는 수익률이 좋다가 후반에 손실을 보는 <행운의 은퇴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동일하게 은퇴생활기간은 25년, 은퇴생활을 시작할 때 노후자금은 5억 원이고, 매년 연초에 생활비로 3,600만 원을 인출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수익률 순서입니다.

(<불운한 은퇴자>와 <행운의 은퇴자> 모두 은퇴 기간 동안 얻은 산술평균 수익률(6.7%), 기하평균 수익률(6.0%), 표준편차(12.8%)는 동일함)

그러면 이 둘은 모두 은퇴 기간 동안 별문제 없이 생활비를 인출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 표를 통해 수익률 순서가 두 사람의 노후자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은퇴 초반에 수익이 높지 않았던 <불운한 은퇴자>는 은퇴생활을 시작하고 12년 만에 은퇴자금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은퇴 초반에 수익이 높았던 <행운의 은퇴자>는 25년이 지난 뒤에 오히려 잔액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표준편차입니다. 흔히 투자자들이 투자에서 위험을 변동성으로 정의하고, 변동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편차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불운한 은퇴자>와 <행운의 은퇴자>가 25년 은퇴생활을 하는 동안 보여준 표준편차는 동일합니다. 그런데도 <불운한 은퇴자>의 노후자금이 훨씬 빨리 고갈되었습니다.

즉, 포트폴리오의 수명에는 변동성보다 수익률 순서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은퇴생활기간 초반에 수익이 높아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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