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하이 템플러처럼 번개로 불러 기생식물을 죽이는 희한한 나무가 발견됐다. 식물학의 상식을 뒤엎는 발견에 학계가 주목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캐리생태연구소(Cary Institute of Ecosystem Studies, CIES)는 8일 낸 조사 보고서에서 낙뢰를 불러 가지에 들러붙은 기생식물이나 주변의 경쟁 수목을 죽이는 나무 딥테릭스 올리페라(Dipteryx oleifera)를 소개했다.
낙뢰는 나무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위협이다. 번개에 맞으면 가지가 불타거나 심한 경우 쓰러져 버린다. 다만 CIES가 파나마 열대우림에서 발견한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전도성 줄기를 가져 낙뢰의 영향을 덜 받는다.
통카 빈(Tonka Bean) 또는 알멘드로(Almendro, 스페인어로 아몬드)라고도 하는 이 나무의 독특한 생태는 CIES 생태학자 에반 고라 연구원이 2015년 발견했다. 딥테릭스 올리페라가 심한 낙뢰로부터 거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챈 연구원은 장기간 조사를 통해 놀라운 능력을 알아냈다.
낙뢰가 빈발하는 미국 콜로라도 자연공원의 딥테릭스 올리페라 9그루와 일반 나무 84그루를 지정한 연구원은 대략 100건의 낙뢰가 지나간 뒤 수목의 생존률과 수관 및 줄기의 상태, 덩굴식물 같은 기생식물의 수, 벼락을 맞은 나무 근처 수목의 고사율을 알아봤다.
그 결과 일반 나무는 거듭된 낙뢰에 가지와 잎이 평균 40% 파괴되고 2년 안에 64%나 고사했다. 이와 달리 낙뢰를 맞은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9그루 모두 잎이 약간 떨어진 것 외에 멀쩡했다.
에반 고라 연구원은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벼락을 견딘 것뿐만 아니라 가지에 얽힌 기생식물이나 근처에 자라는 경쟁 나무를 공격하려 낙뢰를 유도했다"며 "벼락이 떨어져 발생한 전기는 딥테릭스 올리페라 가지를 타고 흘러 기생 덩굴의 78%를 태웠고 인근 나무도 평균 9.2그루가 1년 내에 고사했다"고 말했다.
수관 3D 모델을 작성한 연구원은 딥테릭스 올리페라가 인근 나무보다 약 4m나 높이 자라는 등 건강한 사실도 알아냈다. 에반 고라 연구원은 "태양열과 양분을 경쟁하던 주변 나무가 사라지면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더 잘 자라났다"며 "번개를 맞은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씨앗도 무려 14배나 많았다"고 전했다.
CIES는 딥테릭스 올리페라의 독특한 능력을 물리적 구조에서 찾았다.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수관이 아주 커 일반 나무보다 낙뢰에 맞을 가능성이 68%나 높다. 딥테릭스 올리페라는 평균 56년에 한 번 번개에 직격되고 1000년 이상 수명 동안 적어도 5회 낙뢰에 맞았다. 불과 5년간 2회 낙뢰가 떨어진 딥테릭스 올리페라도 있다.
에반 고라 연구원은 "전도성이 높은 이 독특한 나무는 낙뢰를 끌어들이면서 자기는 절연체로 보호된 전선처럼 살아남는다"며 "이번 연구는 낙뢰의 혜택을 받는 식물이 있다는 것을 실증한 첫 연구로 큰 가치가 있다"고 자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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